‘지리산 항일 투쟁 운동’ 재조명

입력 2008.08.16 (08:42)

<앵커 멘트>

구한말, 일제에 맞서 전국에서 무장투쟁이 있었지만, 만주 등 해외 무장투쟁과 비교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향토사학자의 노력으로 국내 항일무장투쟁의 마지막 무대였던 지리산의 역사가 100년이 지난 지금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박상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하동의 평화로운 들녘입니다.

하지만, 100년 전 이곳에선 항일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악양천을 사이에 두고 사흘 밤낮으로 벌어진 전투로 의병만 7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인터뷰>박만우(92살/하동군 악양면) : "(의병들은) 무기도 열악하고 (습격을 받아) 어디서 공격하는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더라고."

악양천 전투처럼 지리산 지역에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은 그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장투쟁은 만주 등 해외의 역사가 중심인데다 오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공식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의 항일 무장투쟁이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한 향토사학자의 노력 덕분입니다.

하동 항일독립투쟁사 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당시 일제 경찰의 첩보 문서 등을 뒤져 잊혔던 역사를 살려냈습니다.

<인터뷰>정재상(하동 항일독립투쟁사 소장) : "전국 각지에서 항일 의병들이 격렬하게 일어났지만 그분들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 지리산입니다."

현재 발굴된 인원만 500여 명, 정소장은 이 가운데 150여 명에 대해 서훈을 신청해 의병장을 지냈던 이차봉·소봉 형제 등 40여 명이 훈장을 받았습니다.

KBS 뉴스 박상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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