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국악과 근대 미술에 매료돼 관련 자료 수집에 수십년을 바친 사람이 있습니다. 변변한 지원도 없이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개인 박물관까지 내게 된 이들을 정홍규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에..."
아는 음악이라고는 팝송과 록음악이 전부였던 고등학생을 국악의 길로 이끈 건 이 한장의 음반이었습니다.
<인터뷰> 노재명(국악음반 박물관장):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를 접하고 난 뒤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악이라는 게 있었지 왜 이것을 몰랐을까, 왜 사회에서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그때부터 국악 관련 자료를 하루에 5개씩 모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국인이 녹음한 최초의 상업 음반인 경기 명창 한인호의 음반, 두 장밖에 남지 않은 조선 말 최대 명창 이동백의 새타령 음반 등 이제는 돈으로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80년대 말부터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가던 전국의 명창 6백여 명을 전국 각지를 돌며, 직접 찾아가 만났습니다.
<인터뷰> 노재명: "국악이 너무 천대받다 보니까 국악을 작파하시고 집안에 은둔하던 분이 많아서 제가 악수라도 한번 해보자..."
손수 채록한 육성 테이프만 천여 개, 이렇게 발품을 팔아 모은 4만3천여 점의 자료로 국내 최대 규모의 국악 음반 박물관까지 열게 됐습니다.
오늘도 김달진 씨에게 미술 자료를 든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일제 시대 한 화가의 개인전 팸플릿을 기증한 것입니다.
<인터뷰> 조무하(미술 애호가): "나는 그렇게 많이 있지도 않고, 김 관장님한테 가야 더 빛을 발할 것 같아..."
30여 년 간 미술 자료 수집의 외길을 걸어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모은 18톤 분량의 자료는 최근 박물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신문기사와 사진 등 고등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근현대 화가 280여 명의 자료 파일은 김 씨의 성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터뷰> 김달진(미술자료 박물관장): "연구자들이 이중섭에 대한 자료를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가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데 이 자료를 봄으로써 이중섭에 대한 기초자료를 한곳에..."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한 일.
이들의 작업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김달진: "이런 것들을 제대로 해놔야 오늘의 중요한 자료들이 벌써 내일이면 하나의 역사가 되는 것이죠."
<인터뷰> 노재명: "정말 당당하게 수출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을 음반화 해서 세계에 가지고 나가보자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KBS 뉴스 정홍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