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황 속 고시원 사람들

입력 2009.03.26 (20:51)

<앵커 멘트>

불황이 깊어지면서 요즘 고시원에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부터 가족과 떨어져 대리운전을 하며 사는 사람까지.

불황 속, 고시원 풍경을 황현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년 전부터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38살 민 모 씨.

일본 유학파이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아직 일자리가 없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을 때까지 당장 고시원에서 생활해야 할 형편입니다.

<녹취> 민○○(38살, 음성변조) : "막상 돌아와서 보니까 말이 좋아서 해외 유학파이지, 취업이 전혀 안 되는 겁니다. 학벌이 좋으면 좋을 수록 더 취직이 안 되는 거예요."

민 씨의 목표는 9급 공무원.

창문도 없는 좁디 좁은 방에서 책과 하루종일 씨름하는 게 일상입니다.

<녹취> 민○○(음성변조) : "가슴이 답답하다든가, 숨이 가쁘다든가. 튼튼한 사람 만이 여기서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을 매일 해줘야 합니다."

어둑어둑 해가 저무는 시간, 남들은 귀가를 서두를 때 김 씨 할아버지는 출근을 준비합니다.

예순을 넘겨 손자, 손녀 재롱을 볼 나이이지만, 밤마다 대리운전에 나섭니다.

살림살이라곤 옷가지 몇 개. 방 안에 놓인 기타는 유일한 말벗입니다.

<녹취> 김○○(음성변조) : "(가족분들하고는 왜 헤어지셨어요?) 아, 그런 거 묻지 마세요. 그렇고 그러니까 이렇게 생활하는 거예요."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월 20만 원 안팎의 고시원은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서울 시내 고시원은 3천4백여 곳. 전체 이용자 11만 명 가운데 60% 가량이 고시원을 숙박용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숙박시설이 아니지만, 경기침체에 최소한의 돈으로 잠을 청할 수 있는 살림집이 된 겁니다.

<녹취> "버섯하고, 생선하고, 그리고 태국 야채가 들어가요. (태국 야채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고시원은 생존의 보금자리입니다.

태국 전통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이 20대 여성도 고시원 생활 2년째입니다.

<녹취>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도 살아야 되는데, 그런데 집 같은 거 없잖아요. 그러니까 (고시원) 같은 데 들어와야 하잖아요."

하루하루 힘들게 번 돈은 부모님과 동생들을 위해 모으고 있습니다.

<녹취> "집에 가서... 집에 가야죠. 돈 많이 벌어서 집에 가서 태국에서 살아야죠."

하지만 깊어진 경기 침체는 고시원 탈출을 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두례(프랜차이즈 고시원 원장) : "나가서 살아보겠다고 나갔는데요. 요즘에 물가도 너무 올랐고, 관리비, 월세 자기가 감당을 못해서 두달 만에 다시 들어왔어요."

고시생 없는 고시원. 우리 시대 팍팍한 세상살이를 보여줍니다.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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