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 중국 쓰촨 대지진 1년

입력 2009.05.10 (09:01)

<앵커 멘트>

중국 쓰촨 대지진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돼갑니다만 무려 8만 6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흔적은 곳곳에 여전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구와 재건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이재민들도 이제 좌절감을 떨치고 미래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재앙의 상처가 점차 아물어 가는 쓰촨성 현지를 정인성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쓰촨성 베이촨 현 주민 3분의 2가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입니다. 지진이 덮친 참상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생생합니다.

지진 때 여동생과 남자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꾸이멍씨, 이제 생존에 대한 희망은 거의 접었지만 그래도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 봅니다.

<녹취>꾸이멍(베이촨현 주민) : “시신을 아직도 못 찾았어요. 어디에 묻혀 있는 지도 몰라요”

주민 8천6백명의 혼이 묻혀 있는 이곳 베이촨은 30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평야 지대인 안창지역으로 통째로 옮겨집니다. 대신 이 곳엔 지진의 유적과 자료가 보관되는 지진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베이촨 주민들은 주변에 임시로 건설된 이재민촌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황후닝씨 가족은 정부에서 만들어준 간이 숙소에서 일년 째 생활하고 있습니다

올초부터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근근히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녹취>황후닝(베이촨현 주민) : “집 한 채가 있고 밥만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바랄게 없어요. 문제는 살 집이 없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은 황씨의 또다른 근심거리입니다

<녹취>황후닝(베이촨현 주민) : “딸아이가 지진 때문에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을 꺼내지 않아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수업 도중 친구들과 함께 건물더미에 깔렸던 양처 학생, 극적으로 구조되긴 했지만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탁구와 배구를 잘하는, 체육 교사가 되고 싶어했던 꿈많은 소녀였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뛰노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녹취>양처(베이촨 고등학교 2학년) : “공허감이 들어요. 나도 경기에 참가하고 싶거든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수리시설과 수려한 경치 때문에 쓰촨성의 대표적인 관광 명승지로 이름 높았던 두장옌시, 지진이 휩쓸고간 이후 모두 과거의 추억이 됐습니다

한 해 백만명에 달했던 관광객은 벌써 일년 째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최근 성 정부에선 관광지 무료 입장권을 나눠주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지진 피해 지역이란 이미지를 되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들은 지진이 몰고온 한파에 하루하루가 힘겹습니다

<녹취>두장옌(관광지 식당 주인) : “지진 이후에 장사가 되지 않아요. 일요일에는 그나마 조금 있지만 대부분 별로 없어요”

시내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년전과 비교해 거리는 활기를 되찾았지만 한 발자국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조만간 철거될 건물 1층에서 신발 가게를 하고 있는 탄더서우씨. 지진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집도 사라졌습니다. 지진에 대한 공포보다는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절박함이 더 크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열고 있습니다

<녹취>탄더서우(두장옌 시민) : “판매액이 얼마 되지는 않아요.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이죠.”

오후 2시가 지나서야 오늘의 첫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한 켤레라도 팔아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손님의 신통치 않은 반응에 급기야 언성이 높아집니다

<녹취> "이 가격이면 괜찮지 않아요? 한 켤례만 사줘요"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떠나는 손님,순간 탄씨의 눈에는 원망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책정된 4조 위안 가운데 1조 위안을 지진 피해 복구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곳곳에서 복구와 재건 작업이 한창입니다

복구는 우선 도로와 통신 등 사회간접 자본과 학교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학생 4백여명이 매몰됐던 쥐위안전 중고등학교는 기존의 터 대신 1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재건되고 있습니다

이미 70% 정도의 공정이 끝나 올해 안에 준공될 예정입니다

두장옌 교외에는 신도시 개발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녹취>장지아(청두시 건설부문 주임) : “농촌의 경우 주택 33만 채에 대한 보수를 끝냈고 새로 14만 채를 건설해 주민들을 이주시킬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재민 숫자에 비해 공급되는 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점, 일정액은 이재민 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점 등 문제점들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전교생 2천8백여명 가운에 절반을 잃은 베이촨 중고등학교의 운동회 날, 직접 경기에 참가한 학생들이나 응원하는 학생들 모두 이날 만큼은 지진의 기억에서 자유로와 보입니다

<녹취>징롱(베이촨 고교 1학년) : “즐거워요. 시험도 방금 끝났고 이렇게 운동회에 참가해서 평소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까요”

반 친구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이 학생은 친구들 삶까지 자신이 짊어지고 있다고 매일 되뇌인다고 합니다

<녹취>리징(베이촨 고교 1학년) : “내 자신보다는 숨진 친구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 거에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힘껏 살 겁니다”

대지진 때 배우자를 잃은 피해자들간의 합동 결혼식이 베이촨에서 열렸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주민과 친지들의 축복 속에 혼인 서약을 했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녹취>결혼식 당사자 : “우리는 과거를 잊고 새로 시작할 예정입니다.”“베이촨 주민들은 새 출발 하는 걸 보여줄 겁니다”

일년이란 시간은 대지진의 참상을 되돌리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도시와 농촌 곳곳에 폐허가 된 건물이 여전히 있고 이재민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구, 재건의 현장과 웃음과 활력을 되찾은 사람들의 모습은 1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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