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리포트] 외롭지 않은 ‘마지막 길’

입력 2009.05.29 (21:14)

<앵커 멘트>

정치인 노무현의 삶은 고독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밤을 꼬박 새서라도, 생업을 제치고라도 고인이 떠나는 길을 지킨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벽 5시.

밤잠을 설친 듯 일찌감치 거리로 나왔습니다.

<인터뷰> 박아영 : "(새벽같이 나오신 이유가 있으세요?) 잠이 안 와서요. 미안하고 그래서."

담요에, 깔고 앉는 자리까지… 두 자녀와 함께 작정하고 나왔습니다.

<인터뷰> 이희국 : "어제 저녁에 왔습니다. 분향하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마지막 인사.

고인의 모습을 이렇게라도 붙잡고 싶습니다.

아침 7시, 서울광장 주변에도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광장을 에워싼 경찰버스, 방패를 든 전경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서울광장의 문이 열리고… 쉴새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광장은 벌써 만원입니다.

<인터뷰> 서재심(경남 남해군) : "남해에요. (남해?) 남해에서 새벽 1시에 왔어요."

<인터뷰> 최봉님(전남 함평군) : "광주에서 왔어요. 돌아가신 날 서울 와서 이튿날 여기서 조문하고 또 왔어요."

첫 차를 잡아타고 서울로 올라온 조문객들이 역 한복판을 가득 메웠습니다.

오늘만큼은 먼 거리도 그저 한 걸음에 불과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힘든 조문 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의 휴가, 안되면 반나절이라도 휴가를 내 달려온 직장인들.

<인터뷰> 김화정(충남 천안시) : "역사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참석하고 싶어서 수업 교체하고 학교에 연가를 내고 왔습니다."

자녀 셋을 데리고 무작정 올라온 주부.

이렇게라도 꼭 보고만 싶습니다.

<인터뷰> 정영수(충남 아산시) : 거짓말 같아서 확인하러 왔어요. 영결식 보러."

영결식이 시작된 11시.

인근 경복궁에서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는 이 시각, 일터를 떠날 수 없는 남대문 시장 상인들은 착잡한 마음으로 TV를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도 잊었습니다.

<인터뷰> 김연자(식당 주인) : "12시 되면 갈 거예요. 갈 거예요. (제일 바쁜 시간일텐데?) 예, 가야죠.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인데."

급한 걸음도 멈췄습니다.

<인터뷰> 퀵서비스 기사 : "우리 직업상 줄을 서야 되잖아요. 분향자들이 많아서. 대기자들이 많아서. 물건 싣고 우린 배달 가야 되는데, 줄을 서지도 못하고, 그런 게 되게 많이 안타까웠죠."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홀로 눈물을 삼키기도 합니다.

<인터뷰> 남대문시장 상인 : "실감이 안 나죠. 너무 안타깝고."

경복궁에서 거리로 나온 운구행렬.

한발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고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곁을 지킨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은 그래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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