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포커스] 수렁에 빠진 아프간 전

입력 2009.10.11 (10:13)

<앵커 멘트>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지 지난 수요일로 만 8년이 됐습니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를 분쇄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전쟁이었습니다만 해가 갈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데요.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은 이 달 안에 추가 파병 여부 등 아프간 전쟁의 새로운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탈레반의 완강한 저항 속에서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숩니다. 이재강 기자가 심층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 화요일... 전사한 미군의 시신 네 구가 고국으로 실려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입니다. 전사한 미군의 귀환은 지난 8년 간 도버 공군기지에서는 낯익은 광경이 됐습니다. 그 하루 뒤 아프간 전쟁 8주년 당일...워싱턴DC 거리에 학생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의 요구는 단 하나... '미군 철수' 입니다.

<녹취> "정의가 없다. 평화가 없다. 중동에서 철수하라."

하루가 멀다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미군들...갈수록 높아지는 반전 여론... 금방 종지부를 찍을 것 같던 아프간 전쟁은 어느덧 만 8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채 한 달이 안 돼 당시 부시 정부는 전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을 포함한 알 카에다 지도자들을 미국에 넘기고 모든 테러 훈련 캠프를 폐쇄하라는 등의 요구를 탈레반 정권이 거부한 직후였습니다. 두 달이 채 안 돼 미군은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 주요 도시에서 축출하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인터뷰>조지 부시(당시 미 대통령): "테러분자를 감싸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탈레반의 패퇴는 전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외국 군대에 대한 아프간인의 정서적 거부감, 미국이 내세운 카르자이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발판으로, 탈레반은 게릴라전을 펴며 미군을 비롯한 나토군에 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탈레반 전사: "성전에 나설 수 밖에 없는 뚜렷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은 의무입니다."

연합군의 잇단 민간인 오폭 사건은, 아프간인의 정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00여 명의 민간인이 오폭으로 사망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쿤두즈 지역에서 나토군 전투기가 탈레반에 빼앗긴 유조차를 폭격해, 주변에 있던 민간인 수 십명을 숨지게 했습니다.

<인터뷰>모함마드 파리드(쿤두즈 주민): "30년간 전쟁으로 고초를 겪었는데 이제는 정말 평화를 원합니다."

아프간인의 민심이 돌아서면서 현재 아프간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는 지역은 국토의 3분의 1 정도, 나머지는 이미 탈레반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8일 카불에 있는 인도 대사관 근처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등, 수도 카불 역시 탈레반이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지역이 됐습니다.

<인터뷰>모함마드 라힘(폭탄테러 목격자): "일하고 있는데 폭발 소리가 들리면서 유리창과 자동차가 부서졌습니다. 급히 몸을 피했죠."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만 여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했지만 상황이 호전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은 6만 여명, 미군과 나토군을 지휘하고 있는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미군 4만 명을 더 파병해달라고 본국에 요청했습니다.

<인터뷰>스탠리 맥크리스탈(아프간 주둔군 사령관): "군사적으로 판단컨대 상황이 여러 측면에서 악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승산 없는 소모전을 계속할 수도 없지만, 병력을 추가 파병해 10만 대군을 주둔시킨다 해서,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확신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안에 추가파병 여부를 비롯해 아프간 전쟁의 새 전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버락 오바마(미 대통령): "우리의 전략과 전술이 무엇인지, 군대가 무슨 일을 할 지 정확히 알기 전에는 추가 파병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있는 전황은, 연합군 사망자 추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05년에 백 명을 넘어선 전사자 수는, 2007년에 2백명을 넘어섰고, 올들어서는 지금까지 401명이 사망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개전 이후 총 사망자는 1446명, 이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869명이 미군입니다.

지난달 카불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자국 병사 6명을 한꺼번에 잃은 이탈리아... 이제는 대놓고 조기 철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대선을 위해 추가 파병했던 5백 명을, 올 성탄절 전까지 전원 철수시키기로 한 데 이어, 나머지 2천8백 명의 주둔 여부도 신중히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총리): "모두 아프간을 떠나는 게 좋다고 확신합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한 회의는, 개전 8년을 전후해 미국에서도 전례 없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최근 실시된 미국내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아프간 전쟁을 지지하는 여론은 반대하는 여론에 눌렸습니다. 의회에서도 아프간 전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존 케리(미 상원 외교위원장): "지금은 향후의 전략을 다시 평가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입니다."

아프간 전쟁 8년. 미국은 당초 내걸었던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건재하며, 알 카에다는 약화됐을지언정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한 때 사멸하는 듯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파키스탄에까지 이른바 '탈레반 벨트'를 구축했습니다. 미군의 작전명 "영구적 자유"는 지금 아프간 땅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간 전쟁에서 베트남전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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