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복귀…약속은?

입력 2010.03.29 (07:15)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업무에 전격 복귀했습니다. 2년 전 퇴진 당시 이 회장과 삼성은 국민 앞에 몇 가지 약속을 내놨는데요, 이 회장은 약속을 모두 지키고 복귀한 걸까요? 취재파일이 점검해봤습니다.

지난 24일, 이인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요청했습니다.

<녹취> 이인용 : “오늘자로 이건희 회장께서 삼성 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합니다.”

갑작스런 발표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녹취> “이제 제가 충분히 말씀드린 것 같죠?”

이 부사장은 서너 개의 질문만 받은 뒤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기자 회견에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이 간단한 브리핑으로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공식화됐습니다.

삼성은 도요타 사태에 충격을 받은 사장단이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이 회장의 복귀를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이건희 회장의 경륜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재계는 일제히 환영 성명을,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비판 성명을 내는 등 이회장의 복귀를 둘러싼 논란은 뜨겁습니다.

2년 전 이건희 회장이 사퇴로까지 내몰린 것은 삼성의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때문이었습니다.

-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자금.정관계 로비 폭로

- 2008년 1월/ 삼성 특검팀 발족, 삼성 본관 압수수색

- 2008년 2월/ 이학수 부회장. 이재용 전무 소환 조사

-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 홍라희 관장 소환

- 2008년 4월 17일/ 특검 수사결과 발표

특검은 수사를 통해 삼성이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닷새 뒤 삼성측에서는 이건희 회장 퇴진을 포함한 경영 쇄신안이 나왔습니다.

<녹취> 이건희 :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은데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을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경영쇄신안은 모두 10가지, 핵심 내용은 총수 일가의 퇴진과 전략 기획실 해체, 사재 출연 등이었습니다.

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의 약속 그 뒤 2년이 지났습니다.

<이건희 회장 업무 퇴진했나?>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의 한 가정집에서 삼성전자의 냉장고가 폭발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원인이 불명확하다며 보상을 미뤘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난지 20일 가까이 지나서 해당 제품에 대한 전면적인 리콜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언론들은 갑작스런 리콜 배경에 이건희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화를 내자 삼성전자 경영진이 갑자기 방침을 바꿨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삼성 전자의 대주주일 뿐 공식 직함도 명령 권한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삼성측은 이에 대해 당시 언론 보도가 과장됐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회장의 말 한마디로 당장 몇 백억 원이 소요되는 리콜 결정이 내려질 순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삼성의 현직 임원은 리콜 결정의 배경에 이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털어 놨습니다.

<인터뷰> 삼성전자 임원 :“대외적인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는 것, 예를 들어 냉장고 리콜 사건 터진 것도 마찬가지지. 이회장은 무지하게 싫어한다고. 근데 그렇게 오너가 난리를 쳐야지 바들바들 떨지, 안 그러면...”

퇴진 이후에도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여전히 이건희 회장이 해왔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삼성전자 임원 :(그룹 인사에도 이건희 회장이 개입했을까요?)“그런 건 당연히 하지.큰 그림을 그리는 거. 누구를 빼고 누구로 통일하고, 그 사장으로 하여금 JY(이재용)를 보필하게 하고. 그런 그림은 당연히 결정하지”

<전략기획실 해체했나?>

삼성은 이른바 ‘황제 경영’의 중심축이었던 전략 기획실을 해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녹취> 이학수 :“사회적으로도 그룹 경영 체제에 대한 일부 이견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전략 기획실을 해체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전략기획실이란 이름의 조직은 해체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조직이 같은 일을 했다는 게 삼성 현직 임원의 말입니다.

<인터뷰> 삼성 현직 임원 :"거기는 무소불위에요, 거기서 결정하면 우리는 따르는 거요.
(그러면 과거에 전략기획실이 있을 때 하고 지금하고 차이가 뭡니까?)차이 별로 없지, 무슨 차이가 있어. 이름만 바꿨지."

이에 대해 삼성측은 전략기획실을 대체하는 특별 조직은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 회장의 복귀와 함께 전략기획실에 상응하는 조직을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재 출연 이뤄졌나?>

<녹취> 이학수:“누락된 세금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특검이 밝혀낸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모두 4조 5천억 원입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이 가운데 삼성생명 주식과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말했습니다.

4조 5천억 원 가운데 삼성생명 주식 2조 3천억 원 어치와 세금 1조원을 제외하면 1조 2천억 원 가량이 남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 회장과 삼성 측은 이 돈을 어디에 쓸 지 여전히 검토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버랜드 등 주주 피해 갚았나?>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7월 법원에 삼성 에버랜드에 970억 원, 삼성 SDS에 1,540억 원을 줬다는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에버랜드 등 두 회사의 주식을 헐값에 사서 주주에게 끼친 손해를 다시 돌려줬다는 겁니다.

법적인 책임과는 별개로 도의적인 차원에서 갚아준 만큼 형량을 정할 때 감안해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돈을 갚았다는 2008년 두 회사의 회계감사 보고서를 확인해 보니, 이 돈이 들어온 기록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묻자 삼성 측은, 회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적정하게 회계처리 했다는 단 한 줄의 입장을 밝혔을 뿐 이 돈이 어떤 식으로 처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최근 두 회사를 감리한 한국 공인회계사 협회 역시 회계상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돈이 들어왔다면 왜 기록이 없는지를 묻자 입을 다물었습니다.

<녹취> 한국 공인회계사 협회 :"법에 의해서요, 저희가 감리하면서 지득한 사실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정에 의해 회계처리가 지연됐다면, 이 회장이 갚았다는 2천 5백억 원의 행방은
두 회사의 지난해 회계 감사 보고서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약속들은?>

당시 삼성측은 계열사 사이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과제라고 해명했습니다.

이재용 전무는 사임한 뒤 열악한 해외 사업장을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전무는 1년 8개월 동안 해외 사업장을 챙기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복귀했습니다.

당시 전략기획실의 실세였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이회장과 함께 사임할 것을 약속했고 실제로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물러났다는 이학주 전 부회장은 최근 이 회장의 공식 행보마다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보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습니다.

이에 따라 옛 실세들이 부활할 거라는 예측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상조 교수(한성대) : "그나마 열 개 항목에 담았던 쇄신안 내용조차도 알맹이가 없거나 또는 진행되는, 없던 일로 과거로 되돌아가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결국 삼성그룹의 경영 쇄신안은 결과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삼성이 약속한 10가지 경영 쇄신안 가운데 제대로 지켜졌다고 평가되는 것은
홍라희 전 리움 미술관장의 퇴진과 사외 이사제도 개선,그리고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것 정도입니다.

지난 달 열린 고 이병철 회장의 100주년 기념식,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이건희 회장에게 선친의 유훈 가운데 현재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녹취>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

거짓말 없는 세상, 이 회장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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