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시간강사 “교수님? 보따리 장수일 따름”

입력 2010.05.28 (16:42)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를 듣지만 실제로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보따리장수'일 따름입니다. 대학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우리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대학과 정부가 함께 책임질 문제입니다."

영남권 모 사립대에서 17년째 인문학 분야 교양강의를 담당하는 시간강사 박모(47)씨는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고급인력들을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임강사의 20% 정도에 불과한 저임금으로 부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20년 전 학부과정을 마치고 모교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지금까지 10여군데 대학의 교수채용 공개모집에서 고배를 마시고 시간강사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자'는 여유를 가져보기도 했지만,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됐다.

박씨는 "석사과정에 들어가 학부생 대상의 강의를 배정받아 지금까지 대학에서 가르쳐 왔지만, 별도의 연구실을 배정받지 못하고 강사 대기실을 전전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도 시간강사를 벗어날 희망이 안 보인다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전공 학회지 등에 논문을 게재하고 나름대로 학문적인 인정을 받았으나 교수자리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광주지역 모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임용 탈락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나도 재단형편이 어려운 대학에서 기부금을 요구받은 일도 있으나 그렇게까지 해서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또 "예전에는 교수들이 퇴임하면서 교수직을 본교 출신에 많이 물려줬는데 2000년대 들어서는 서울지역 소재 대학 출신 유학파들이 지방대 교수로 부임하는 사례가 늘어 국내파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고 한탄했다.

교수 채용 과정을 보면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특정 응모자를 배척하거나 발탁하는 등 투명성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다.

박씨는 "심지어 어떤 대학에서는 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확정적으로 얘기해 맡고 있던 임시직 자리까지 포기했는데 임용 며칠 전 갑자기 탈락시켜 황당한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라고 고백했다.

그가 이 대학에서 한 학기당 9시간 강의를 배정받아 받는 1년 수입은 900여만원에 불과하다.

이 수입으로는 전공 분야 서적을 마음껏 사보기조차 어려운 것은 물론, 지은 지 10년 넘은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등 3식구가 함께 살기에도 힘에 부친다.

이 때문에 강사료를 더 받아볼 욕심으로 다른 지역 대학 2곳에 출강하느라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강의 준비하고 매일같이 학교에 나가 3시간 연속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나마 방학 때는 수입이 없어 아이 학원비를 체납하기가 일쑤이고 보다 못한 아내는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는 형편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3개교를 돌면서 강의를 하다 보면 지칠뿐더러, 더 문제는 전공분야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주말에는 딸리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종일 침대에 누워 잠을 자야 해 아들과 놀아주기도 힘들다.

박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학원강의는 물론 원서번역, 중ㆍ고생 과외까지 안해 본 일이 없다"며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집도 아직 전세를 면치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매 학기 강의시간표를 통보하기까지는 재계약되는지 해고당하는지 알 수 없어 불안에 떤 적도 많다"며 "순수학문을 하려는 고급인력들을 정부가 언제까지 방치하려는지 걱정스럽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장원 비정규직 교수노조 위원장은 "박씨의 사례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 내 사각지대에 놓인 시간강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전문인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당한 예우를 해야만 대학의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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