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패자서 감독상으로 ‘비상’

입력 2010.12.20 (16:27)

수정 2010.12.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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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지도자였던 박경훈(49)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 프로축구 K-리그 사령탑으로 새 출발 하자마자 올해의 감독으로 뽑히면서 깨끗하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한국 프로축구판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제주를 단번에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박 감독은 20일 오후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0 쏘나타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 때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던 박 감독이 지도자로서 재기를 알린 의미 있는 상이었다.

화가가 꿈이었던 박 감독은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고교(대구 청구고)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3년 만인 한양대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혀 10년 동안 맹활약하는 등 축구공과 함께 한 시간에는 늘 정상에만 서 있었다.

하지만 17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치른 2007년 FIFA U-17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통과조차 못 하고 쓴맛을 단단히 봤다. 2년 가까이 대표팀에 공을 들였던 터라 박 감독의 지도력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 박 감독은 제주 사령탑에 오르기 전까지 전주대 체육학부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축구를 다시 공부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쳤던 박 감독은 올해 제주를 맡아 그라운드로 돌아와서는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말라. 실패를 만회한 팀이 승리한다"고 강조해 왔다. 박 감독은 바람처럼 빠른 축구, 돌처럼 단단한 조직력의 축구, 그리고 아름다운 축구 등 `삼다(三多) 축구'를 보여주려 했다.

만년 하위권에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제주 선수들의 눈빛은 금세 달라졌다.

2006년 제주로 연고를 옮긴 뒤로 13위-11위-10위에 이어 지난해 15개 팀 중 14위에 그쳤던 제주는 결국 올해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공 시절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1989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박 감독은 올해의 감독을 뽑는 기자단 투표에서 113표 중 87표를 쓸어담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4위의 성적을 일군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23표)을 압도적 표 차로 제쳤다.

FC서울의 시즌 2관왕을 지휘하고도 재계약에 실패한 넬로 빙가다(포르투갈) 감독은 고작 3표를 받는데 그쳐 박 감독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박 감독은 상을 받고 나서 "실패한 감독을 받아준 제주 사장께 감사드린다. 또 서울 구단이 빙가다 감독과 계약을 안 해 주셔서 제가 이 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해 장내 웃음꽃이 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그동안 우승팀이 아닌 준우승팀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뿐이었다.

게다가 포철에서 선수로 뛰던 1988년 MVP로 뽑혔던 박 감독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1986년 MVP, 2009년 감독상)에 이어 두 번째로 K-리그 MVP와 감독상을 모두 받은 지도자 대열에 합류했다.

지도자로서 K-리그에 데뷔하자마자 덜컥 최고 감독의 자리에까지 오른 박 감독은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작년 최강희 감독이 수상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나도 저 자리에 서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너무 빨리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초보 감독이 상을 받아서 선배 감독들께 미안한 마음도 있다"면서 "나는 복받은 감독이고 행운이 있는 감독"이라며 선수와 코치진, 지원 스태프 등에게 공을 돌렸다.

박 감독은 또 "내년에도 감동이 있는 축구,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선 K-리그 6강 및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새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올해 K-리그에서 6강 목표를 뛰어넘어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내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년 역시 목표는 일단 6강이다. 그렇지만 매경기 최선을 다해 우리 플레이를 하다보면 우승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이 목표다. 이 또한 열심히 또 하다 보면 전북이나 성남처럼 아시아의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새롭게 도전할 것이다. 내년 한 해가 굉장히 기다려진다"며 올해보다 더 멋진 새해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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