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슬픈 성탄절…반지하방의 비극

입력 2010.12.28 (09:09)

수정 2010.12.28 (09:16)

<앵커 멘트>



지난 주말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 보낸 분들 많으실 텐데요.



그런데 이 성탄절, 한 가족에게 갑작스런 화마가 찾아왔습니다.



반지하방에서 불이 나 젊은 어머니가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인데요.



이민우 기자. 사연이 참 안타까운데, 전기장판이 과열돼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요?



네, 어려운 살림살이었습니다.



반지하방 45제곱미터. 13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습니다.



성탄절 한파가 매서웠죠.



감기에 걸린 두 아들을 위해 스물 여섯살 엄마는 전기장판을 켰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젊은 엄마가 줄 수 있는 제일 따뜻한 온기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화마가 찾아왔습니다.



엄마는 끝내 목숨을 잃었고, 중태에 빠진 두 아이를 바라보며 남은 가족들은 오열하고 있습니다.



<리포트>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이 다급하게 달려간 곳은 서울 면목동의 밀집된 주택가.



반지하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가 온 동네를 뒤덮었습니다.



잠시 뒤,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에서 성인 여성 한 명이 구조대원들에 의해 들려나옵니다.



<인터뷰> 아버지 : “연기가 독해서 나도 쓰러지고 (딸을) 끄집어내고 애들도 (꺼내고) ... 이미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는 심장도 다 멎은 상태였고...”



타다 남은 장난감, 녹아버린 젖병...



새까만 재에 뒤덮인 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습니다.



45제곱미터의 좁은 방이지만 여섯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살던 삶의 보금자리.



화마는 이렇게 순식간에 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앗아갔습니다.



<인터뷰> 여동생 : “ 엄마가 집에 불났다고 (하길래) 장난치는 줄 알고 언니한테 전화했더니 언니가 전화를 계속 안 받아서 정말 장난치는 줄 알고...”



감기에 걸린 두 아이와 낮잠을 자고 있던 25살의 엄마 양 모씨는 끝내 연기에 질식해 숨졌고, 두 살, 네 살의 두 아들은 호흡곤란으로 중태에 빠졌습니다.



<인터뷰> 아버지 : “ 6식구가 있었는데 갑자기 반으로 주니까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요. (아이들은) 지금 간신히 호흡기 호스를 꽂아서 심장만 뛰게 해 놓은 상태에요.”



추정되는 화재 원인은 전기 장판 과열.



추운 겨울, 웃풍이 유난히 센 반지하방.



넉넉지 않은 고된 살림살이에 세 모자를 추위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건, 작은 전기장판이 유일했습니다.



<인터뷰> 지인 (음성변조) :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야하는 생활이었어요. 어렵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고 조금씩 적응 해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돼 버려서...”



지난 8월 교도소에 수감중인 남편과 이혼한 뒤 두 아이를 홀로 키워온 엄마 양 씨.



3개월 전부터 시장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 해왔지만 생계를 잇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아버지 : “ 고생 많이 했어요 너무 일찍 젊은 나이에.. 21살부터 애 낳아서 키우면서 뒷바라지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쉬는 날 없이 일했던 딸.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두 아이에 대한 사랑만큼은 극진했습니다.



보증금 5백만원, 월세 40만원의 반지하방에는 양씨의 부모와 여동생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요.



열심히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가장 역할까지 도맡았던 큰 딸이었습니다.



<인터뷰> 아버지 : “요새 따라 더 살갑게 굴더라구요. 힘들게 번 돈 가져와서 자꾸 쓰라고.. 그런 딸이었어요.”



밤에 일하러 나가 매일 꼬박 밤을 새고 아침에 들어와 잠을 자는 생활을 해 온 양 씨.



성탄절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며 모처럼 마련한 휴가였습니다.



작은 식당을 하는 양 씨의 부모는 일하러 나갔고, 여동생도 외출한 상태, 결국 낮에 집에 머문 가족들만 변을 당한 것입니다.



<인터뷰> 여동생 : “ 크리스마스에 제가 언니를 못 봤어요. 제가 안 나가고 집에서 애들이랑 그냥 있었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텐데...”



이혼한 뒤에도 두 아들과 함께 악착같이 살아보겠다며 발버둥쳐 온 양 씨. 가족들은 그런 양 씨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인터뷰> 여동생 : “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언니가 애들 유치원 보낸다고 애들 옷 입히는 거 도와 달라고... 제가 졸리다고 귀찮다고 그냥 방에 들어와서 잤는데 애들 옷 입혀줬으면, 양말 하나라도 신겨줬으면...”



갑작스레 찾아온 참변에 내 딸, 내 언니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원통함에, 유족들은 끝내 오열을 터뜨립니다.



<녹취> 여동생 : “언니 내가 죽였어... 내가 집에 있었어야 했는데...”



사고 4일째인 오늘까지도 아이들은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상탭니다.



그나마도 아직 생사를 확신할 수 없어 안타까움은 더해만 가는데요.



<인터뷰> 아버지 : “(손자들이) 살아만 주면 그 자체가 진짜 정성을 쏟아서 키우고 싶어요. 제발 살아만 있으면...”



한 순간 화마로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겨진 가족들.



이들의 상처가 하루 빨리 아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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