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5일 흡연으로 폐암에 걸린 게 인정된다고 판단하고도 담배를 제조ㆍ판매하는 KT&G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것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폐암환자 등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주장한 것은 ▲장기간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고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담배에 발암물질이 포함되는 등 제조물 자체에 결함이 있으므로 배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심은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는 주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이고 일반적으로 담배를 자주 피우면 폐암에 잘 걸린다는 점에서 역학적 인과관계는 있다고 보면서도, 소송에 참여한 개별 환자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개별적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제조물' 책임의 법리를 적용,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원고의 책임을 덜어줬다.
제조물에 관한 정보는 제조업자가 독점하는 경우가 많고 소비자가 이를 일일이 알기 어려워서 과실 여부 등을 따질 때 이를 참작해서 입증의 정도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인데 재판부가 담배도 제조물로 분류한 것이다.
또 담배 연기에 다양한 발암물질이 포함됐고 KT&G가 담배 산업을 독식하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일정한 요건이 충족된 원고는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봐야 하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피고가 증명해야 한다는 게 이날 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소송에 참여한 폐암 환자 가운데 4명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갔지만, 배상 책임까지는 끌어내지 못했다.
KT&G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로 재판부는 담배에 발암물질이 포함된 타르나 니코틴 등이 들어 있지만, 담배의 제조와 판매가 법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허용됐다는 점을 들었다.
또 1976년 이전에는 담뱃갑에 경고문구가 표기되지 않았더라도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당시의 인식 수준 등을 감안하면 손해를 배상할 정도의 불법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니코틴이 의존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당사자의 선택 결과라서 각자의 책임이라고 봤다.
이번 판결은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로 끝났지만, 폐암과 흡연의 인과관계를 1심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앞으로 유사 소송이 제기되면 피해를 다투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고 여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