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소방관 24시

입력 2011.04.10 (09:08)

<앵커 멘트>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직업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경받을만 한데요.. 서구 선진국에서 소방관이 바로 그런 직업이죠.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구요?

네.. 사회적으로 존경도 받고, 일이 위험한 만큼 처우도 좋다보니, 소방관들의 자긍심도 높고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장난 전화로 골탕 먹이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독일 소방관의 24시를 최재현 특파원이 동행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긴급 출동한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녹취>"네, 지금 C 팀의 11호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장비를 챙기는 소방관들, 하지만, 불길의 모습은 벌써 심상치 않습니다. 창틀을 남김없이 태운 것도 모자라 불길은 집 밖으로 솟구치고, 마치 상자가 타들어가듯,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화재를 신고한 집주인은 촛불이 옮겨 붙어 불이 났다고 했습니다. 함께 있던 아내를 먼저 대피시키고 불길에 갇혀버린 그를, 소방관들은 필사적으로 구해 냈습니다. 그러나 단란한 가정을 급습한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습니다. 진압에 나선 소방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욱 거세진 화염은 지붕 전체를 휘감았습니다.

<녹취> 소방관 : "N팀이 소방 장비를 추가로 설치하고, 일단 위치가 확보되면 불길이 더 번지지 않도록 하라고. 그리고 주변 건물 상황도 꼼꼼히 챙겨보고…"

소방관들이 보기엔 살아 있는 생물과 싸우는 것 같습니다. 치솟은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더 이상의 진압은 힘들어 보였을 때, 크레인 소방차가 기병대처럼 도착했습니다. 신속하게 소방 호스를 연결한 뒤 불길보다 높이 크레인을 세웠습니다. 물대포의 압력이 거칠게 날뛰던 화염을 잠재우는 순간, 5층 주민, 모두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화재는 3시간여 만에 진압됐습니다.

<녹취> 반트케(소방관) : "진화 작업이 잘 끝나긴 했는데, 꺼내놓은 장비가 너무 많아요. 다시 챙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군요."

위험했던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소방관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장비 점검에 돌입합니다. 언제 다시 긴급한 신고가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출동 태세부터 갖춰놔야 휴식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비상 장비 가방?) 두 개 잘 있고, (보호 안경?) 세 개 다 있고, (왼쪽 다리 보호대?) 어, 여기 있어. 이상 없는지 한 번 봐. (이상 없어)"

장비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꼼꼼히 챙기는 모습은 임전태세의 허술함을 용납하지 않는 군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 전 한 생명을 구한 구급차 안에서도 철두철미한 점검이 한창입니다.

<인터뷰> 찬데어(소방관) : "장비 점검뿐 아니라, 동료 사이의 우정도 중요합니다. 위험한 일이 많거든요. 그럴 땐 든든한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된 답니다."

다른 동료가 쉬고 있을 때 요리 실력을 뽐내는 소방관, 임무가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우정과 신뢰의 깊이는 더해 갑니다.

<인터뷰> 랑게(소방관) : "우리는 한 팀이 돼서 재난과 인명 구조현장으로 가고, 한 팀으로 일하고, 한 팀으로 다시 복귀합니다."

가끔은 엉뚱한 일로 출동할 때도 있습니다. 다급히 뛰어 들어간 호텔 건물, 그러나 화재 경보 장치의 오작동으로 밝혀졌습니다. 소방관들 표정에선 안도의 기색이 역력합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화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인터뷰> 로벤하겐(베를린 소방서 대변인) : "소방관이란 직업은 늘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직업입니다. 36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예상치 못하는 사태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 그런 직업 말입니다."

소방관들에게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사고에서 목숨을 구할 때입니다. 베를린 중심가의 한 건축 현장에서 고압의 파이프가 터졌습니다. 당시 현장엔 두 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었고, 이 중 한 명은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했습니다.

<녹취> "(괜찮아요. 다른 이상은 없나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요. (그럼 저흰 친구분 도우러 가 볼게요.)"

하지만, 다른 한 명에겐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머리와 목에 큰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만 겁니다.

<녹취> 건축 현장 관계자 : "파이프 덮개가 터지면서 다친 것 같은데, 바로 맞은 건지, 아니면 벽에 튕겨서 맞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동 중의 작은 흔들림도 부상자의 상태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환자 한 명을 움직이기 위해 구급 의사와 소방관 10여 명이 혼신의 노력을 다합니다. 재난의 현장에선 군인처럼 싸워야 하고 인명을 구조할 땐 백의의 천사가 돼야 하는 직업, 오직 소방관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알기에 그들의 사명감은 더욱 강해진다고 합니다.

<인터뷰> 미샬케(소방관) : "원래 의대에 다니다가, 아르바이트로 소방 구급대 일을 하게 됐어요. 졸업할 때쯤 의사가 될지, 소방관이 될지 선택을 해야 했는데, 저는 소방관이란 직업을 선택했어요."

독일에서 소방관이란 직업은 젊은이의 꿈으로 불립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소방관이 돼서 다른 누군가를 구하는, 꿈을 가져본다는 겁니다.

소방관에 대한 독일의 복지 정책도 유럽의 여느 나라 못지않습니다. 철저한 신분 보장과 위험 근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 일 년 동안 30일의 휴가를 보장받고 부상 등에 대비한 복지 제도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혜택 때문에 소방관이 됐다곤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찬데어(소방관) : "일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고마워할 땐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이 일은 정말 멋진 직업 같아요."

때문에 독일에선, 이런 소방관들에게 장난 전화를 거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가짜 신고로 인한 출동 비용을 모두 내야 할 정도로 처벌도 엄하지만,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필립(독일 대학생) : "소방관 일은 위험에 처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중요한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명을 구하는 소중한 직업에 대한 사회의 존경,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자부심이, 이 직업을 갖도록 한 가장 큰 매력이라고, 독일의 소방관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눌마이어(소방관) : "많은 사람이 가업처럼 대대로 소방관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와 삼촌, 아버지까지 소방관인 동료도 있어요. 소방관은 정말 명예로운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다급히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들, 이들의 마음속엔 늘 한 가지 신념이 새겨져 있습니다. 헌신을 감당해야 하는 힘겨운 직업이지만,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면 삶을 던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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