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마녀들의 반란

입력 2011.04.10 (09:08)

<앵커 멘트>

루마니아에서 정부와 마녀들 간에 때 아닌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술 문화가 뿌리 깊은 루마니아에서 마녀는 세금을 면제받아왔는데요. 재정난에 시달리는 정부가 소득세를 매기려고 하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마녀들의 저항 수단은 ‘정부에 저주를 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찬필 순회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티 외곽. 세 명의 여인이 모닥불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60세의 브라짜라씨. 그녀는 마녀입니다. 스스로 루마니아의 여왕마녀라고 부릅니다. 미하엘라 밍카씨는 브라짜라 여왕마녀의 며느리입니다. 자신은 태어날때부터 마녀의 능력을 타고 났다고 합니다.

<인터뷰> 미하엘라 밍카(며느리 마녀) : “나는 날 때부터 마법사의 능력을 갖고 있었고, 10살부터는 마법 주문을 읊을 수 있었으며...”

현재 17살인 손녀 딸 아나, 그녀도 일찌감치 가업을 이었습니다. 마녀 삼대는 금요일 밤이면 종종 함께 모여 주술의식을 갖습니다. 그런데, 오늘밤 할머니 마녀 브라짜라씨의 주문이 심상치 않습니다.

<인터뷰>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저주가 있으라! 그들이 제 정신을 차리도록 그들 머리 위에 저주가 있으라! 포포비치 의원과 에밀 보끄 수상에게 저주를!”

브라짜라씨의 저주는 놀랍게도 루마니아 수상인 에밀 보끄와 상원의원 에밀 포포비치우 등 루마니아의 정치지도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저주는 지난 해 9월 집권당에서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법안에는 마녀와 점성술사 등 주술관련 직업에 대해 16%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인터뷰> 브라짜라(여왕 마녀) : “이것은 오래전부터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내 직업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주술로 번 돈에 대해 세금을 낸 적이 없는데, 왜 이제와 소득세를 내라고 한단 말입니까?”

지난 1월 초, 루마니아 마녀들은 법안 통과에 반대하며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저주의식을 벌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브라짜라씨는 정부에 대항한 마녀들의 반란을 주도한 인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마녀들이 같은 뜻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한 가족인 브라짜라의 며느리와 손녀가 명백하게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금 부과에 찬성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미하엘라 밍카(며느리 마녀) : “나는 브러짜라 여왕 마녀의 며느리지만, 시어머니와 달리 이 법이 통과되고 주술업이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기를 바래요.”

<인터뷰> 아나(손녀 마녀) : “내 생각도 어머니와 같이 이 법의 추진에 동의해요.”

세금 법안을 둘러싼 마녀 사회의 의견 대립. 묘한 마녀들 사이의 세대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은 루마니아의 여왕마녀라 불리는 부르짜라씨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현재 그녀는 이곳에서 9일 째 의식을 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두운 방안에 브라짜라씨의 주문이 퍼집니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다양한 제구들. 브라짜라는 이 낡은 기물들을 이용해 악령을 쫓아 질병을 치유하고, 가정의 평화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브라짜라 부지아(여왕 마녀) : “지금 행한 주술은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떠나버린 부인을 위해 다시 남편이 돌아오도록 주술을 행한 것입니다. 지금 8일 동안 주술을 행하고 있는데, 9일이 지나 모든 주술이 끝나면 남편이 돌아올 것입니다.”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주술을 행하는 그녀는 대대로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세금을 무엇 때문에 내야하는지 납득하질 못합니다.

<인터뷰> “이것은 사업이 아니예요. 이것은 하나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직업이고, 하늘에서 받은 신성한 능력입니다. 이것은 사업이 아니예요. 우리가 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소명이란 말이지요.”

그렇다면 대체 며느리 마녀 밍카는 왜 세금 부과에 오히려 찬성하고 있는 것일까?

밍카의 거주지이자, 주술을 행하는 곳은 시어머니의 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집안에는 온갖 종류의 세련된 전자제품이 완벽히 갖춰져 있습니다. 고객을 맞아 주술을 행하는 방의 분위기도 쾌적합니다.

<인터뷰> 미하엘라 밍카(마녀) : “이것은 마녀, 즉 주술사들의 상징입니다. 이 마녀는 밤마다 마법을 행하며 소명을 다합니다. 밤마다 이 빗자루로 주변을 청결히 하고 약물을 가득 채워 끓여, 병에 걸린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질병도 치유합니다. 또한 저주에 걸린 이들을 풀어주는 마법을 행하기도 합니다. 이 상은 이처럼 지극하게 어린이를 보듬고 병을 치유하는 마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정부의 세금부과 법안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 그것은 시어머니와 달리 마녀의 길을 철저하게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합법화를 통해 사업 확장을 꿈꾸는 것입니다.

<인터뷰> “젊은 마녀이기 때문에 법안에 동의합니다. 나는 능력 있는 마녀로써 여러 차례 세계 마녀 경연대회에도 참여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이 업종이 실질적으로 합법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딸인 아나와 카산드라와 함께 루마니아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개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과 함께 현재 인터넷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세계 어느곳이든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주술 서비스를 판매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브라짜라씨 역시 이 문제에 관해 마녀들 사이의 세대 갈등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인터뷰> 브라짜라(여왕 마녀) : “대부분 나이든 마녀들이 세금 법안을 반대해요.일부 젊은 마녀들이 찬성하기는 하는데, 합법적으로 점술소를 개업하기 위해 찬성하는 것이지요. 뭐 찬성할테면 하라지요..”

그런데, 법안 추진이 애초부터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불과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영세한 주술사들을 대상으로 한 징세가 과연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지 과학적 데이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크리스티나 루프(변호사) : “실제로 주술사들이 복채로 받는 금액은 미화로 환산하면 7~10 달러 정도로 그리 큰 금액이 아닙니다. 또한 주술사들은 그 동안 어떤 경우에도 세금계산서나 간이 영수증을 발행한 일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얼마나 수입을 얻고 있는지, 또 그에 따라 얼마나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이에 대한 연구 자료가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의 법안은 지난 해 11월, 상원을 통과했지만 반년이 다 되가도록, 하원통과를 이루지 못하고 계류 중입니다.

마녀들의 반란이라는 희대의 갈등을 불러온 소득세 법안 추진으로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수습될지 그 결말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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