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서부 ‘마약밭 상전벽해’

입력 2012.04.01 (10:24)

수정 2012.04.01 (10:32)

<앵커 멘트>

‘마약왕 쿤사’라는 이름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쿤사가 동남아에서 아편을 만들어 팔며 악명을 떨치던 양귀비 재배지가 이젠 딸기밭과 고랭지 채소밭으로 탈바꿈을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아편소굴이었던 땅이 고소득 작물 재배지, 옥토로 바뀐 것인데,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말입니다. 한재호 특파원이 이 기적이나 다름없는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리포트>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 북서부의 해발 1400미터 고지. 산등성이를 따라 마을이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론 계단식 밭들이 줄을 지었습니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 딸기밭에선 딸기 수확이 한창입니다. 제철을 맞은 요즘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온종일, 농민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인터뷰>으아이(빨렁족 주민): “매년 10월부터 3월까지 계속해서 딸기를 따요.1라이(1,600㎡)에 3천㎏ 정도 수확합니다.”

딸기밭 한켠에선 가족들이 둘러앉아 딸기 선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붉은 빛이 선명하고 탄력이 있는 딸기를 골라 포장하는 작업, 제값을 받기 위해선 이른 아침 신선한 딸기를 따서 신속하게 포장해야 합니다.

<인터뷰>흐엉(빨렁족 주민): “1라이(1,600㎡)에 연간 30만 바트(천 백만 원)를 버니까 가족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요.”

이 고산지대에서 자란 딸기는 맛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습니다. 태국 내 다른 지역 딸기는 과육이 너무 단단하고 신맛이 강해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이 곳 딸기는 살이 연해서 베어 물면 물기가 흘러나옵니다.

이 곳에서 재배한 딸기는 농약을 치지않습니다. 비료도 화학비료 대신에 천연비료를 씁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 따서 먹어도 괜찮습니다.

농민들이 갓 따온 딸기들을 속속 집하장으로 가져와 출하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박스를 가득 채운 딸기를 내려놓고..수량을 확인하고.. 품질을 검사해 확인서를 붙이고..모두들 분주하기만 합니다. 딸기는 치앙마이를 거쳐 각지로 배송돼 높은 값에 팔려나갑니다.

<인터뷰>닛타야(딸기 집하장 관리자): “치앙라이와 치앙마이, 방콕 등 전국에 있는 전용 매장으로 수송해 판매합니다.”

여기서 딸기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미얀마에서 건너와 정착한 소수 민족인 빨렁족. 이들은 한 가족당 1라이, 1,600제곱미터 정도의 딸기밭을 맡아 경작합니다. 그래서 이 계단식 딸기밭은 주인이 여러 명이고, 서로 품앗이를 하며 농사를 짓습니다.

이 농민들은 원래 양귀비를 재배하고 아편을 만들어 팔아 끼니를 잇던 사람들입니다. 아편의 폐해가 점점 심각해지자 태국 왕실이 주민들을 설득해 양귀비밭을 갈아 엎었습니다. '로열 프로젝트' 즉, '왕실 프로젝트'에 의한 것입니다.

<인터뷰>짜루완(도이앙캉 공동체 홍보국장): “소수민족들이 양귀비 재배를 그만두고 여러 종류의 고랭지 채소를 심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주었던 것입니다.”

왕실 프로젝트는 아편을 차단하고 소수 민족에게 소득원을 제공해 살 길을 열어줬습니다. 현재 이 농장 공동체는 빨렁족과 아카족 등 4개 소수민족 6천 5백여 명의 보금자리가 됐습니다.

공동체 내 소수민족들이 미얀마의 고향을 떠나 태국 이 고산지대에 정착한 배경엔 사연이 있습니다. 군정 시절 미얀마 정부군이 남자들을 데려가 탄약 운반 등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수시로 마을에 나타나 물건을 빼앗고 다 자란 농작물을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탄압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보>카(빨렁족 주민): “탄약과 군량미, 각종 물건을 날랐죠. 말을 안 들으면 군인들에게 맞았어요.”

태국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뒤 생활은 안정됐고 군인들이 들이닥치는 불안감도 사라졌습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랭지 농사를 지으며 이젠 가족들의 생계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소득도 생겼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의 변화가 찾아온 겁니다.

<인터뷰>만(빨렁족 주민): “여긴 행복해요. 일하기도 편하고 병원 가기도 쉬워요. 아프면 차 타고 병원가면 되니까요.”

40년 전, 이 고산지대는 양귀비밭 천지였습니다. 양귀비 꽃 봉오리에 상처를 내 흘러나오는 진액을 채취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시절은 옛말. 지금은 상전벽해란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이 곳이 처음부터 채소밭은 아니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국경 황금의 삼각지대에서 마약왕 쿤사가 악명를 떨치던 시절, 아편을 대규모로 재배하던 땅이었습니다.

특별히 먹고 살게 없던 주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양귀비 농사를 택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만든 아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곳이 딸기밭으로, 채소밭으로 개벽을 한 겁니다.

<인터뷰>첫(도이앙캉 농장'유기농'전문가): “땅이 척박해서 퇴비같은 유기농 비료로 땅심을 기른 뒤 작물을 재배하도록 했습니다.”

태국 왕실이 이 곳에서 양귀비밭을 없애고 아편을 몰아내려던 계획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소수민족 농민들은 오랜 세월 아편을 만들어 살아오는데 익숙한데다 아편에 중독된 생활습관도 쉽사리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려 해 동안 태국 정부가 끈질지게 설득한 결과 한 사람 두 사람씩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양귀비 대신 딸기와 채소를 심고
꽃을 가꿨더니 소득이 몰라보게 높아졌습니다. 땅까지 갖게 되자 주민들은 정부를 믿고 동참했습니다.

<인터뷰>루(타이야이족 주민): “어떤 주민들은 2~3년 동안 꼼짝도 안하다가 양귀비 대신 채소를 심을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이 도이앙캉 농장 공동체의 고랭지 작물 재배지는 41만 제곱미터. 여기서 연평균 60억 원의 소득을 올립니다. 천 30여 가정, 한 가정당 수입이 약 6백 만원. 태국 산촌 가운데 소득 최상위권에 속하는 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조용하던 산 속에서 마을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아카족 주민들이 원을 지어 땅을 밟고 있습니다. 농삿일을 잠시 멈추고 마을 사람,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음식도 나누고 덕담도 주고 받습니다. 우리의 설 명절과 비슷한 아카족의 명절입니다.

<인터뷰>짜카(아카족 마을 대표): “마을 사람들끼리 정을 함께 나누고 서로 성공을 기원하는 전통 축제입니다.”

공동체 농장이 생긴 뒤 이들은 매년 전통 축제를 성대하게 열고 있습니다. 민족의 문화 유산을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려는 이들의 활동을 태국정부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도이 앙캉 고산마을은 태국 전역에서 관광객들이 밀려오는 명소로 변했습니다. 청명한 날씨와 맑은 공기. 경쟁하듯 다투어 피어난 꽃들은 사시사철 사람들의 마음에 향기와 휴식을 공급합니다. 산속에서 자란 커피를 마시며 그 독특한 맛과 향을 음미하는 자연 속의 여유도 이 곳만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이곳에 옵니다.

<인터뷰>후버큰멜(이스라엘 관광객): “이 산촌 커피맛을 보려고 두 시간을 걸어서 올라왔어요. 맛이 뛰어납니다.”

보이는 건 양귀비밭에 아편 뿐이었던 죽음의 공간은 소수 민족의 행복한 보금자리로 탈바꿈 했습니다. 아편에 가위눌린 사람들을 깨우고 일으켜 세운 태국의 '왕실 프로젝트',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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