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흠 객원 해설위원]
영유권과 역사인식을 두고 한일, 일중이 다투는 동북아는 국가 간의 관계를 증오와 불신이 지배하여 유혈의 재앙이 끊이지 않던 지난 세기의 유럽을 연상시킵니다. 민감한 문제에 국내정치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정권의 진퇴가 걸린 선거를, 중국은 10년 주기의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이고, 내정은 여론을 반영하며, 여론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형성됩니다. 걱정은 애국심과 애국심, 확신과 확신의 충돌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지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일본이 아시아의 지도적 국가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키웁니다. 청산했다던 과거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에게 익숙한 고언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를 말끔히 청산하고 자기부담으로 유럽에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세운 독일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조언도 있습니다. 세계가 바라는 대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행동준칙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한국도 직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1945년 이전의 국가체제가 살아남았고, 위안부를 만든 반인도적 범죄가 국내법에서 빠졌으며, 국민의 희생을 부각시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켰습니다. 영토문제가 내셔널리즘의 온상이 된 일본의 현실을 직시해야 우리의 정책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영유권 문제는 일도양단 식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계는 싸움으로 지새게 됩니다. 그래서 원칙에는 단호하되 관리에는 유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동북아 상황은 분명히 위기적입니다. 그러나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한중일 모두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그와 다른 미래를 여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상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며 국익의 공통분모를 찾으면 더불어 사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한국이 그 길로 향하는 가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