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슈잉 양우진의 꿈은 ‘최고 디자이너’

입력 2013.02.03 (07:50)

수정 2013.02.0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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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보다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는 자폐성 장애인은 흔치 않다.

컴퓨터처럼 계산하거나 기억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이 있지만 '고립된 재능'의 소유자다.

거의 모든 재능이 사회성과 결부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자폐성 장애인의 재능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스노슈잉에 출전하는 양우진(17·밀알학교)은 그런 통념을 깨는 선수다.

양우진은 근력이 뛰어나 학교에서 운동선수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받는다.

작년 한국 동계스페셜올림픽 스노슈잉에 처음으로 출전했다가 금메달 3개를 목에 걸고 바로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낼 정도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선수생활 대신 디자이너를 양우진의 진로로 설정했다.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은 인상적인 디자인이 양우진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우진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운영되는 특수교육과정에 들어가면서 특별한 재능이 발견됐다.

그의 그림은 매우 순수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어머니 박현자 씨는 "오로지 자기 생각에서만 나오는 그림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거침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비장애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는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스며들기 일쑤라고 한다.

그에 반해 양우진의 작품은 다른 작품을 흉내 내지 않고 어떤 요구에도 따르지도 않으며 눈치도 전혀 보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다.

양우진은 자기 디자인 가운데 하나에 '협곡마을(좁은 골짜기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상품화하기도 했다.

그 디자인을 새겨넣은 머그컵이 팔리고 있다.

양우진이 그림을 그리면 전문가들이 그 일부를 떼어 티셔츠나 찻잔 등에 새겨넣는다.

어머니는 양우진이 재능을 찾은 것을 매우 고마워했다.

"우진이와 비슷한 장애가 있는 아이 중에는 산을 그리라고 하면 다람쥐를 그리고, 바다를 그리라고 해도 다람쥐를 그리고, 다람쥐를 그리라고 해도 다람쥐를 그리는 애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진이는 산을 그리라고 하면 귀찮아서 산을 빨리 그리고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양우진은 자폐성 장애 때문에 혼자 생활하기가 무척 어렵다.

버스가 도로 공사나 행사 등으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우회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2천원을 주고 심부름을 보내면 1천원짜리 물건을 사더라도 꼭 2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운동을 시작한 뒤에는 승리욕 때문에 1등을 하지 못하면 불안에 빠지는 습관도 생겼다. 그래서 어머니는 양우진이 계속 선수생활을 하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어머니는 양우진이 예술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우진이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은 잘생겼는데 멍청해서 어쩌니?"라는 등의 말을 내뱉을 때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키도 크고 미남인 양우진에게 주변에서 누가 함부로 던진 말을 며칠 뒤에 양우진이 갑자기 따라하는 것이다.

박 씨는 선수들이 주인공인 이번 스페셜올림픽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할 정도로 무시가 일상적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국립발레단과 지적장애인 발레리나의 공연을 보러 갔어요. 주요 인사들이 서로 인사하고 카메라 세례를 받느라 행사가 지연됐죠. 그런데 사회자가 일부 선수단 도착이 늦어져 행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더라고요."

박 씨는 뒤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아무렇게나 대한다는 추측 때문에 우울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세 번만 다그치면 안 한 일도 했다고 하는 우진이 같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세상이 왔으면 정말 고마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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