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양궁 명장 석동은, 극빈국 감독 자원

입력 2013.10.02 (07:58)

수정 2013.10.02 (08:13)

세계적 양궁 명장이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작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던 석동은(58) 감독.

석 감독은 양궁 인프라가 전혀 없는 말라위에서 올해 초부터 선수들을 조련하고 있다.

그의 세계적인 명성을 고려할 때 이런 색다른 행보의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석 감독은 2003년 세계선수권 우승자 미켈레 프란질리, 2004년 아테네올림픽 챔피언 마르코 갈리아조를 이탈리아에서 조련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국가대표 감독도 맡았다. 영국은 석 감독을 영입하려고 자국 최초의 양궁 전용 경기장을 건립하기도 했다.

석 감독은 2010년 이탈리아 감독으로 복귀해 작년 런던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일궈냈다.

작년 말 석 감독과 이탈리아의 계약이 만료되자 유럽 국가들은 너도나도 군침을 흘렸다.

그러나 석 감독은 바로 말라위로 향했다.

"기도하다가 '인생의 십일조'라는 계시를 받았어요. 지금껏 나만 위해 살았지만 인생의 십분의 일은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석 감독은 유엔이 극빈국의 경제 자립을 돕기 위해 진행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가 배치된 지역은 말라위의 오지 구물리라 지역이었다.

주민이 7천여명인 그 지역은 신생아 사망률이 15%에 달하고 평균 수명이 47세에 그칠 정도로 보건이 취약하다.

소규모 농업마저 힘들어 먹고 살기조차 어렵고 사회 구성원의 자립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척박한 곳이었다.

미국 인기가수 마돈나가 운영하는 재단은 과거 5년간 40억원을 이 지역에 쏟아붓고도 상황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원조는 중간에서 대거 횡령됐고 나머지는 식량으로 소비됐다. 마돈나재단의 활동 흔적은 100만원짜리 지하수 펌프 몇 개밖에 없었다.

석 감독은 학교·보건소 건립, 농법 개선, 무담보 소액대출 등을 맡는 동료와 함께 이 지역에 투입돼 문화활동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는 문화 활동으로 양궁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석 감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빨리 깨닫게 해주는 게 운동, 음악, 무용 같은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늘 지배를 받고 원조에 의존해 살아온 말라위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석 감독이 가르치는 청소년 궁사는 12명. 원래 20명이었으나 여자 8명이 15∼16세 조혼과 함께 선수단을 떠났다.

이들 소수 어린이에게 양궁을 가르치는 게 말라위의 자립에 별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석 감독의 계획은 소규모 주민 공동체를 자극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지구촌 최고의 축제인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었다.

"말라위 양궁 선수들을 올림픽에 보낼 겁니다. 올림픽에 선수를 내보내면 말라위 국민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말라위는 작년 런던올림픽 마라톤, 육상 장거리, 수영에 선수 3명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유학생들이었다.

석 감독의 계획이 실현되면 말라위는 처음으로 '토종' 올림픽 출전자를 배출한다.

말라위의 청소년 궁사들은 매일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

석 감독은 이들의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국내 업체인 '윈앤윈'에서 후원받았다. 지역 촌장들에게서 감자밭을 빌려 전용 양궁장도 만들었다. 곡물 자루에 흙과 담배줄기를 채워 과녁도 만들었다.

양궁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려면 경기력 수준이 144발 합계 1천300점 정도는 돼야 한다.

석 감독은 선발전을 통해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어려운 국가에 기회를 주는 와일드카드 제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1천200점 정도까지 실력을 키우면서 스포츠 외교력을 발휘한다는 심산이다.

그는 "말라위가 워낙 소외된 곳이라서 1천200점 정도의 실력과 열정을 보여주면 우선 선택될 것"이라며 "열심히 하면 2016년 올림픽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 감독은 현재 루마니아 대표팀 감독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특정 종목의 기본기가 부족한 국가에 기술을 보급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솔리데리티 프로그램'에 따라 루마니아에 일시적으로 파견된 것이다.

석 감독은 한국에 양궁을 도입한 고(故) 석봉근 전 대한양궁협회 고문의 아들이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부친의 영향으로 활을 쏘기 시작해 선수 시절에 한국 기록을 휩쓸고 실업팀 지도자로도 선전한 '양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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