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소 다리’ 왜 많이 부러지나 봤더니...

입력 2013.12.06 (17:02)

수정 2013.12.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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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님, 소 여러 마리 키우시죠? 가축보험 좀 들어주세요. 사장님이 낸 보험료 2배 이상 돌려받게 해드릴게요. 적어도 본전은 찾습니다.”

축산농민 김 모 씨는 3년 전 지역축협의 보험담당 직원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았습니다.‘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김 씨는 별생각 없이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평범한 시골농부가 범죄자로 둔갑하게 되는 순간이었죠. 김 씨는 약 2년간 보험료 2천여만 원을 내고 보험금 4천7백만 원을 타냈습니다.

멀쩡한 소를 다쳤다고 속여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이었는데요, 방법은 이렇습니다. 소 다리를 밧줄로 묶고 기계로 당겨서 넘어뜨린 뒤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이 사진을 수의사에게 보여주고 소가 ‘골절’이나 ‘탈구’ 같은 부상을 입었다고 허위 진단서를 받는겁니다. 그리고, 소가 다쳐서 350만 원 받을 것을 50만 원 밖에 못 받고 팔았다. 이렇게 허위 매매계약서까지 만들어서 허위 진단서와 함께 축협에 제출하는 거죠.


▲<쓰러진 소 사진을 찍어 받아낸 허위 진단서> 수의사들은 사진만 보고 멀쩡한 소를 ‘탈구’나 ‘골절’됐다고 진단서를 써주고 건당 3만 원씩 받았다.

그러면 축협은 농장주가 손해를 본 금액, 즉 3백만 원을 보상해줬습니다. 소는 실제로 다친 게 아니니까, 다시 일으켜세워 350만원 제값을 받고 팔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멀쩡한 소를 ‘다친 소’로 둔갑시켜 보험금을 타낸 축산농민은 지금까지 경찰이 확인한 경우만 150여 명, 이들이 타낸 보험금은 64억 원에 이릅니다.

순진한 시골 농장주들의 사기 행각, 그 배후에는 축협직원들이 있었습니다. A씨 등 충청남도내 한 지역축협의 보험 담당 직원 2명이 이런 수법을 농장주들에게 알려주거나 방조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는데요. 물론 그 대가로 농민들에게서 한 건에 10만 원에서 2백만 원까지 뒷돈을 받아 챙겼습니다.

축협 직원들은 범행이 수월하게 진행되자 한 술 더 떴습니다. 포토샵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앉아서 보험금을 받아 챙기기 시작한 건데요, 넘어진 소 사진에 정상적으로 판매한 소의 이표번호(사람의 주민등록번호 같은)를 합성해 보험금을 청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받은 보험금 6억여 원을 농장주 몰래 개설한 통장으로 받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 경찰은 가축을 이용한 사기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경찰은 현재까지 확인된 건 전체 범행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충남 당진과 예산, 논산, 부여 등의 농장주들에게 지급된 가축재해 보험금 가운데 범죄로 의심돼 추가 조사 중인 것이 7천여 건에 이르고, 이들이 타낸 보험금은 100억 원을 넘는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이번에 입건된 농장주 김 모 씨도 "주변 농장 10곳 가운데 8곳은 보험사기를 관행처럼 해왔다."고 취재진에게 털어놔 경찰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경찰 설명대로라면 수년 동안 수천 건의 의심사례가 있었다는 건데, 관리감독은 허술했습니다. 지역축협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농협중앙회는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실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축재해보험료의 절반을 국고로 보조해주는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 7월 가축재해보험에 대한 감사까지 하고도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010년부터 올 11월까지 가축재해보조금으로 교부된 세금은 1500억 원을 넘습니다. 그동안 새나간 돈이 얼마나 되는 건지, 재발 방지를 위한 어떤 대책이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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