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상가 권리금, 이제는 법의 영역으로…①표준계약서

입력 2014.03.03 (16:33)

수정 2014.09.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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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입점 때마다 갈등의 핵이 되어온 '상가 권리금', 실체는 있으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개념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심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숱하게 눈물도 흘려왔죠. KBS '취재후' 코너에서는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상가 권리금의 실태와 법의 영역에서 보호받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짚어 봅니다.

① 표준계약서, 실효성은?



"저도 정말 억울해서 법에다 호소를 해야 하는데, 법에 호소할 길이 없더라고요. 법대로 하면 제가 나가는 게 맞더라고요. 아, 나를 지켜 주는 게 아니구나. 건물주를 지켜주기 위한 법이구나."

취재 중에 만난 한 30대 자영업자, 이선정 씨의 말입니다. 이 씨는 2008년 가을쯤 당시는 상권이 활발하지 않았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이면도로의 허름한 2층짜리 상가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에 영업을 하던 임차인에게는 1억 2천만 원을 줬고 스스로 2억 원 정도 들여서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했습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 3억 2천만 원 정도 들인 거죠.

1층은 커피숍, 2층은 공연장 겸 바로 운영했는데 처음 2년 동안에는 적자가 많이 났고 3년째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째 되는 해에 건물이 팔렸고 새로운 건물주는 5년 계약이 끝나면,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씨는 반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건물주가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짓기로 해서 권리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씨는 반발했을 겁니다.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닦아 놓은 삶의 터전, 스스로 일으켜 놓은 상권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사실이 더 마음 아프겠죠.

그렇다고, 새로운 건물주가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가?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 많이들 하실 겁니다. 상가 건물을 새로 산 사람은 또 자기 권리가 있는 거죠. 그 건물주를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이선정 씨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세입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입장과 위치에 따라 생각은 서로 다른 거니까요.



문제는 이 씨의 처음 말대로 권리금이 법의 영역 안에 있지 못한 데서 시작합니다. 거의 모든 상가에는 권리금이란 게 존재합니다. 분명히 있고 상가 임대차 계약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데 법의 영역 안에 이 내용이 없다는 데서 이 갈등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상가 권리금 보호 방안을 만들겠다고 한 그 방침은 칭찬할 만합니다. 권리금을 법의 영역 안으로 가지고 와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단추를 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대책 중 하나인 권리금 표준계약서 마련이 실효성이 있느냐 하는 논란이 있지만, 권리금이 법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하다시피 표준계약서는 말 그대로 표준계약서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면, 국토교통부에서 전국의 공인중개사들에게 사용을 권고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안 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권리금은 본질적으로 임차인과 임차인 간에 쓰이는 개념입니다. 권리금 분쟁 중에 한 유형이 전(前)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고 후(後) 임차인에게 가게를 넘기고 나서 그 바로 앞에 똑같은 업종의 장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이런 권리금 분쟁은 표준계약서를 통해서 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표준계약서에다가 반경 몇백 미터 안에서는 동일 업종의 가게를 열 수 없다거나 얼마를 손해배상 한다는 식으로 분쟁을 예방할 수 있겠죠.

그러나 권리금 보호 기회를 임대인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는 표준계약서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는 임차인끼리 권리금 표준계약서를 작성할 때 임대인이 함께 그 계약서에 서명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부분 상가 주인들, 임대인들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모른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도 표준계약서에 함께 서명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계약서 서명에 동참한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며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거기다 한 발 더 나아가 표준계약서를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앞서 권고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들의 눈물'과도 같은 상가 권리금, 이제는 법의 영역 안에서 닦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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