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에서 원하는 것은?

입력 2014.03.05 (01:59)

수정 2014.03.05 (07:16)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약 일주일 동안 이어진 우크라이나 인접 지역 군부대의 비상군사 훈련 마무리와 원대 복귀를 명령했다.

뒤이어 연 기자회견에선 "크림반도의 긴장상황이 해소됐으며 이제 러시아가 군사력을 사용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부·중부 군관구에 비상군사훈련을 전격 명령하고 의회에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 승인을 요청한 데 이어 상당수 러시아군 병력이 크림반도로 이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고조됐던 일촉즉발의 러-우크라 군사충돌 위기는 최대 고비를 넘겼다.

푸틴 대통령은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크림 자치공화국 내 친러시아계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빚어진 크림 분쟁에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우크라 중앙 정부가 크림을 장악하는 것을 차단하고 향후 우크라 중앙정부와의 협상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유럽화를 천명한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물론 서방 세계를 향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상당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단호함도 보여줬다.

그러나 주권 국가의 내부 문제에 군사개입을 시도했다는 서방의 비난으로부턴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방은 푸틴 대통령이 크림으로 군대를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이후에도 각종 제재 위협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미 크림에 상당한 병력이 파견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몇 개월 동안 진행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비교적 상세히 드러냈다.

가장 중요한 푸틴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지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전체 주민의 60%가 러시아인인 크림 자치공화국은 물론 다수의 러시아인과 러시아어 사용 주민이 살고 있는 동부 지역이 비록 국가 경계상 우크라이나에 속해있긴 하지만 러시아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있으며 러시아는 이 권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다.

푸틴이 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서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혼란 사태가 동부 지역과 크림으로 확산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에 이에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틴은 또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실각을 가져온 기존 야권 세력의 중앙 권력 장악을 '반(反)헌법적 쿠데타'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미 실권을 잃은 야누코비치를 여전히 우크라의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주민 보호를 이유로 러시아에 군사개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야누코비치의 합법성을 인정함으로써 향후 있을지도 모를 군사개입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개입 움직임을 보였던 러시아를 비난하며 각종 제재를 경고했던 서방을 향해 "대(對)러시아 제재는 서방 자신에도 해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친서방 성향 야권의 우크라이나 권력 장악으로 수세에 몰렸던 푸틴 대통령은 일단 군사력까지 동원한 신속한 대응으로 우크라의 새 정치권력 및 서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크림반도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하겠다고 공언하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러시아의 막강한 위력 앞에 다소 기가 꺾인 모습이다.

러시아는 이런 여세를 몰아 우선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에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외무부 소식통은 하루 전 자국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러시아는 지난달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위기 타개 협정의 합의사항들이 이행되면 우크라이나 정부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협정엔 대통령 권한 축소를 골자로 한 개헌, 거국 내각 구성, 조기 대선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러시아는 일단 현 우크라이나 과도 내각을 대체할 거국 내각 구성을 요구하면서 새로 구성될 정부에 러시아와 친러 성향 동남부 지역의 이익을 대변할 야누코비치계 정치 세력을 포진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앞서 1일 유엔 안보리 비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모든 정치 세력과 지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합법적 거국 내각 구성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미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야누코비치의 권좌 복귀를 추진하진 않겠지만 그가 이끌던 친러 성향 정당 '지역당' 소속 정치인들이 대거 포함된 새 정부가 구성돼야 한다는 주문으로 읽힌다.

5월 말로 예정된 조기대선에도 지역당 출신 후보를 내세워 전폭적으로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 아예 조기 대선을 친러 지역당 세력이 힘을 회복할 때까지 더 미루려 시도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새 정치권력이 완전히 서방으로 기우는 것을 막고 향후 우크라 및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가장 큰 관심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모태이자 옛 소련권에서 가장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우크라이나를 어떻게든 자국의 영향권 내에 묶어두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EU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것을 막고 푸틴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옛 소련권 경제통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이같은 러시아의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의 과격 세력은 여전히 크림의 '반역'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고 서방도 '당근과 채찍'을 함께 들고 러시아를 상대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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