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국정원 증거위조 의혹 ‘윗선’ 드러날까

입력 2014.03.11 (13:13)

수정 2014.03.11 (13:13)

검찰이 국가정보원에 대한 사상 세 번째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유우성(34)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문건들이 위조된 정황은 진상조사 단계에서 이미 파악됐다. 검찰 수사가 국정원 내부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국정원이 얼마만큼 조직적으로, 어느 선까지 증거 조작에 개입했는지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국정원 직원·협조자 4∼5명 우선 수사 = 문서 위조에 연루된 것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국정원 안팎의 인물은 4∼5명 정도다. 검찰은 수사로 전환하면서 이들을 출국금지 또는 정지시키고 잇따라 소환해 구체적 위조 경위와 가담 정도를 추궁하고 있다.

핵심 인물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출신으로 중국 선양(瀋陽) 주재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이인철 교민담당 영사다.

그는 중국 각급 기관의 문서들을 공증 또는 확인서를 첨부하거나 직접 입수해 검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위조 판명을 받은 문서 3건에 모두 관여했다.

위조 의혹을 받는 문서들은 모두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 기록의 신빙성을 보충하는 내용들로 연결돼 있다. 증거조작이 국정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면 이 영사가 실무 책임자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일 자살을 기도한 협조자 김모(61)씨는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이 발급처로 된 위조 문서를 구해 이 영사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는 문서 위조에 직접 가담했지만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증거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상당히 풍부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중국과 사법공조 등의 어려움 때문에 수사가 자칫 난관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 김씨를 구속해 신병을 확보해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씨를 비롯한 협조자에게 문서 입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블랙요원'(신분을 숨기고 일하는 정보요원)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김 사장'으로 불리는 인물은 지난해 12월 김씨에게 유씨 변호인 측 자료를 반박할 만한 문서를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협조자 김씨와 '김 사장'은 문서감정에서 사실상 위조로 판명받은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문서를 위조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허룽시 공안국의 출입경기록, 이 문건을 발급했다는 내용의 사실조회서에 또다른 협조자가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소재를 파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윗선' 어디까지 = 검찰은 2주 넘게 진행한 진상조사에서 문서위조 의혹의 실체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위조의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다음에는 '윗선'의 개입 여부를 밝히는 게 수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수뇌부가 증거조작에 대해 최소한 보고는 받았고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과 검찰이 기소한 첫 간첩사건인데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이 유씨의 여동생을 폭행·협박해 진술을 받아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씨가 1심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 등 '말 많은' 사건이었다. 증거조작과 관련된 국정원의 움직임도 무죄 판결을 계기로 시작됐다.

이인철 영사의 직제상 상관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국정원으로 복귀한 전 선양 부총영사 이모씨를 비롯해 국정원 대공수사국장, 대테러·방첩·대공수사를 지휘하는 서천호(53) 2차장 등이 보고 라인에 속해 있다. 정점은 남재준(70) 원장이다.

실무 차원의 문서위조 정황에서 나아가 수직적인 지시·보고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결국 수사기록과 내부 문건 등 압수물 분석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근거로 인터넷에 댓글을 단 심리전단 요원들 대신 원 전 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국정원 압수수색의 특성상 보고라인을 거슬러 올라가 수뇌부까지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검찰은 지난 10일 압수수색 전 국정원에 사전 협조를 구했고 현장에 나간 검사와 수사관들 역시 국정원의 '안내'를 받아 수색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가까이 된데다 지난 9일 밤 국정원의 사과문 발표, 이튿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이어 곧바로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을 근거로 '사전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은 압수수색의 성과가 아닌 정치권의 폭로로 존재가 알려졌다. 검찰은 내부 의사소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컴퓨터 메인서버를 압수수색하는 데는 실패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윗선' 수사 여부에 대해 "예단을 가지고 수사할 수 없고 진행하면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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