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후보 ‘언론 개입’ 발언 파문

입력 2015.02.15 (17:09)

수정 2015.02.16 (10:12)

<앵커 멘트>

민주사회에서 유력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언론관은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언론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지난 한 주 내내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첫 순서로 이완구 후보자의 발언이 녹음된 경위와 언론에 보도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녹음 공개’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공방까지, 류란 기자와 함께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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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류 기자, 이 녹취가 공개되면서 파장이 상당했는데, 총리 임명까지 탄탄대로일 것 같던 이완구 의원에게 악재로 작용했죠?

<답변>
이완구 의원이 총리후보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평가였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관련된 발언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리포트>

이완구 후보가 문제의 발언을 쏟아낸 지난달 27일 점심 자리에는, 경향, 문화, 중앙, 한국일보 4개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4개 신문사 어느 곳도 문제의 발언을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것은 8일 뒤 KBS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녹취> 이완구(국무총리 후보자 ) :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임마, 빨리 시간 없어' 그랬더니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그래가지고 빼고 이러더라고. 내가 보니까 빼더라고..."

정작 이 발언을 녹음한 한국일보는 지난 10일자 지면에 실은 해명을 통해 기사화 여부를 검토했다가 보류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한국일보 '알려드립니다' : “본보는 이 후보자의 왜곡된 언론관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기사화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일보는 점심 모임이 있던 다음날 지면에 녹취한 내용 일부를 초판 기사로 실었다가, 다음 판에서 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녹취> 미디어오늘 11일자 : "다른 언론사 아무 곳도 안 써서 다시 담당기자와 데스크에게 확인해 보니, 4곳 모두 의견 공유를 한 상황이었다. 해당 기자가 이 후보의 발언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반장에게 얘기해 그 부분을 뺀 것이다."

녹취에서 이 후보는 언론사 인사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녹취> 이완구(국무총리 후보자 ) : "윗사람들하고 내가 말은 안 꺼내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 돼'해 안해? '야, 김 부장 걔 안 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

하지만 녹취에서 언급된 언론사들은 외압 의혹을 부인하거나 이 후보와 통화조차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인터뷰> 이봉수(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원장) : "언론이 재정적으로 여러 언론사가 난립하면서 취약해지고, 또 공정보도를 기피하다보니까 권력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언론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총리 후보의 자격 박탈과 침묵한 언론의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녹취> "사퇴하라! 사퇴하라!"

<질문>
그런데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 내놓은 반응이 좀 달랐죠?

<답변>
새누리당은 취재 과정을 문제삼았습니다. 취재윤리를 거론하며 언론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비판했고, 일부 언론들도 같은 취지의 비판 기사를 실었습니다.

<리포트>

KBS 보도 다음날 나온 새누리당의 공식 논평입니다.

<녹취> 새누리당 대변인 서면 브리핑 : “기자들과의 사적 대화가 녹음돼 야당의원에게 흘러들어가고, 공영방송에 넘겨졌다. 발언의 적절 여부를 떠나 신뢰가 붕괴되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 정치의 정도, 언론의 정도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SBS는 인터넷 기사에서 ‘언론의 민낯’이란 표현을 쓰며, 이번 취재와 보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SBS 취재파일 : “'기자'가 당사자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하고, 이를 특정 정당에 전달한 행위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취재원들이 기자를 멀리하고 공식적인 언급만 하는 상황 속에선 기자들은 사안의 이면을 알아내기 더 어려워지고 그건 독자나 시청자의 알권리와 직결됩니다.”

조선일보의 기사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녹취> 조선일보 기자수첩 : "대부분의 기자는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취재 중 얻은 정보는 보도 목적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배운다. 취재원과 타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 또한 언론의 책무다. 이 후보자 발언의 보도 과정에서는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중앙일보는 녹음을 한 기자가 직접 보도하는 대신 상대 정당에 넘겼다며 취재의 정도를 거론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 : "발언 자체의 부적절성 논란은 물론, 보도 과정의 윤리적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해당 발언을 몰래 녹취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직접 보도하는 대신 특정 정당에 제공, 취재의 정도를 어겼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 종편 방송에선 한국일보 기자를 “쓰레기”로 지칭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녹취> TV조선 : "공인과 국회의원과 기자들 간의 모든 대화는 서로 녹음기 휴대폰 없이 뭐든 해야 할 정도로, 한국일보는 엄청나게 다른 언론에 피해를 주는..."

<인터뷰> 이상돈 교수 : "기자하고 만나면 오프가 없는 거예요." (기자가, 이게 기자예요? 완전 쓰레기지, 거의.)"

경위가 어찌됐든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한 녹취가 정치권으로 넘어간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취재의 결과물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윤태진 교수(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 "언론 윤리상 문제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부분은 당연히 그 기자가 잘못한 거고, 거기에 대한 어떤 식으로든지 해명이나 사과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한국일보 측은 녹음을 한 기자가 취재윤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녹취 파일을 건냈다며,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기자가 총리 후보와의 대화를 녹취한 행위와, 추후 이 녹취파일을 입수한 다른 언론사가 보도한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게 언론 학자들은 물론 법률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인터뷰> 강병국(변호사) : "대화자 간 녹음은 허용된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입니다. 그래서 녹음한 행위 자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닙니다."

사적인 자리여도 마찬가집니다.

<인터뷰> 강병국(변호사) : "국무총리 후보자라면 공인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공인입니다. 대통령에 버금갈 만한 공인이기 때문에, 친교 자리에서 발언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언론사가 비밀로 보호해줘야 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KBS가 녹취 파일을 입수해 보도한 것 역시 언론의 공적 책무라는 의견입니다.

<인터뷰> 윤태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 "KBS가 보도한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고 공익적인 목적이 있었고, 그리고 충분히 그것을 어떤 기자나 보도국의 역량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거든요."

<인터뷰> 김민기(숭실대 사회과학대학장) : "이런 팩트를 입수하고도 보도를 안 한다면 그건 언론으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겁니다."

<질문>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간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됐는데, 이완구 후보의 언론관 발언이 담긴 추가 녹취가 계속 쟁점이 됐죠?

<답변>
그렇습니다. 청문회장에서 녹취를 전부 공개하자는 야당과 그럴 수 없다는 여당이 대립하면서 정회와 속개를 반복했는데요. 결국 추가 녹취 공개는 밖에서 이뤄졌습니다.

<리포트>

청문회 첫날,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로운 녹취를 공개했습니다.

<녹취> 이완구(총리 후보) : "내가 이번에 김영란법...기자들이 안 되겠네,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안 되겠어. 내가 이번에 지금 막고 있잖아. 내가 막고 있는 거 알고 있지, 그지? 욕먹어가면서.. 통과시켜서, 여러분도 한 번 평생 보지도 못 한 친척 때문에 검경에 한 번 붙들려 가 봐. 한 번 당해 봐..."

과격한 발언을 하다가도 중간 중간 언론과의 끈끈한 관계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녹취> 이완구(총리 후보) : "지금도 너희 선배들 나하고 형제처럼 산다. 진짜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내 친구 중에 대학 하는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이렇게 삽니다."

<녹취> 이완구(총리 후보) :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어법으로 이렇게 얘기한 것이 녹취가 돼서 여과 없이 이렇게 나가는 거에 대해서 정말로 아...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질문>
청문회 관련 보도는 어땠습니까?

<답변>
언론 개입에 관한 문제가 워낙 중대한 문제긴 하지만 이 사안에만 너무 치우쳤다는 지적입니다. 청문회가 후보 검증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거나 독려하고, 그 내용을 충실히 알리는 데도 소홀했다는 평가입니다.

<리포트>

청문회 첫날이 진행됐던 지난 10일 방송 3사와 종편의 간판 뉴스, 그 다음날 6개 일간지의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청문회 관련 기사는 모두 58건, 이 가운데 절반을 넘는 31건이 녹취 관련 기사였습니다.

이날 거론된 다른 의혹, ‘병역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기사는 10건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 윤태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 "언론관이란 것이 사실은 그 사람의 세계관이라든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는 생각을 합니다.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게 다른 많은 문제들을 또 가리고 있다는 거죠. 그 이전에 세금문제라든지 병역문제라든지 거짓말 문제라든지 이런 거 지금 얘기가 별로 안 나오잖아요. 이건 좀 이거 역시 언론이 보도를 하는데 있어서 좀 비중의 형평성이랄까요 이런 걸 못 맞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녹취 파동을 보면 취재윤리에 일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리 후보의 머릿속에 있는 언론관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정도를 지키면서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언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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