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열정페이?’ 두번 우는 취업 준비생

입력 2015.02.18 (08:11)

수정 2015.02.18 (14:06)

<기자 멘트>

즐거운 명절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유독 친지들의 얼굴을 보러 가는게 망설여진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문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의 얘기입니다.

인터넷에는 이른바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을 했는데요,

벼랑 끝에 내몰린 취업 준비생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턱없이 낮은 급여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업주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오늘 뉴스 따라잡기는 열정페이로 고통받는 취업준비생들의 눈물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디자이너가 꿈인 35살 권모 씨.

관련 공부를 위해 유학까지 다녀와 지난해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꽤 알려진 패션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취직을 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시작한 회사 생활은 권 씨의 기대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녹취> 권OO(前 패션 회사 인턴사원/음성변조) : "‘3개월 동안 100만 원 인턴을 해야 된다. 이거는 예외가 없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고..."

급여도 급여지만,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권 씨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습니다.

<녹취> 권OO(前 패션 회사 인턴사원/음성변조) : "‘너는 네 일 다 했다고 그렇게 빨리 가면 안돼.’ 12시간 일이 기본이 되는 거고 14시간까지 넘어가고..."

권 씨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이렇게 고된 일을 하고 맞는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녹취> 권OO(前 패션 회사 인턴사원/음성변조) : "인턴 비용도 적은데 점심 안 주는 건 당연하죠. 저녁(식사비)도 5,000원 넘기지 마라(라고 했고요.)"

그래도 권 씨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얘기는 권 씨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습니다.

<녹취> 권OO(前 패션 회사 인턴사원/음성변조) : "같은 회사에서 5개월 일을 해도 정직원을 못하고 그냥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제가 계속 불안하죠. 보통 흐름을 보면 거의 3개월을 고비로...."

결국 두 달여 만에 회사를 그만 둔 권 씨.

권 씨는 자신이 겪은 일이 이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광화문에서는 청년 노동력 착취 대상 시상식까지 열렸는데요.

대상을 차지한 패션업체는 견습 직원에게는 월 10만 원, 인턴에게는 월 30만 원을 급여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습니다.

<인터뷰> 김민수(위원장/청년 유니온 ) : "패션업계에 있는 어떤 당사자들의 사례를 계속 제보를 받았습니다. 다섯 분 정도를 후보군으로 놓고 5명을 대상으로 해서 투표를 진행하게 된 거죠."

패션업계 뿐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한 게임회사는 게임 캐릭터 성우를 모집하면서, 보수 대신 게임머니를 지급하겠다는 구인광고를 올려 논란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누리꾼들의 분노가 커지자, 업체 측은 즉각 해명에 나섰는데요.

<녹취> 게임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닌데 저희 쪽 멤버 통해서 일어난 일들은 책임져야 되니까 무조건 사과드리는 거예요."

많은 수의 청년들이 동경하는 문화 예술 산업 분야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 두드러집니다.

지난해, 영화 제작사의 조연출로 영화계 일을 시작했다는 이모 씨.

이 씨의 노동 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습니다.

<녹취> 이00(前 영화 스텝/음성변조) : "뒷날 있을 촬영을 준비하고 나면 새벽 3시나 4시 정도 되고요. 그러면 한 2시간 정도 자고 다시 또 일어나서 촬영하게 되고요. 그 영화 촬영을 하면서 몸무게가 10kg에서 15kg 정도 빠졌거든요."

이렇게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지만, 이 씨가 받는 급여는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녹취> 이00(前 영화 스텝/음성변조) : "보수는 지금 3개월 동안 해서 50만 원 받았고요. 처음 시작하는 달에 일단 50만 원 들어왔고요. 그렇게 해서 영화 끝날 때까지 더 들어온 돈이나 그런 건 없고요."

그래도 이 씨 처럼 하고 싶은 일을 경험이라도 해볼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김모 씨는 실무적인 일본어를 배울 수 있다는 말에 한 중소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입사 했습니다.

그런데,

<녹취> 김 모 씨(가명/취업준비생/음성변조) : "일본어는 한마디도 할 일이 없었고 그냥 화분에 물주고 가습기에 물 채워놓고 커피포트 닦고, 물품 떨어지면 사러 갔다 오고."

그래도 시키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는 김 씨.

그런 김 씨에게 지급된 급여는 77만 원 이었습니다.

<녹취>김 모 씨(가명/취업준비생/음성변조) : "저는 88만 원 세대를 뭣 모르고 비웃고 살았었거든요. 통장에 급여라고 77만 원이 찍혀 있는걸 본 순간 기운도 안 나고, 나는 한 달 동안 뭘 한 거지(싶었어요.)"

호텔 뷔페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는 이모 씨 역시 요리일 대신 고된 허드렛일이나 심부름만 해야 했습니다.

<녹취> 이 모 씨(가명/前호텔 뷔페 인턴사원/음성변조) : "월급 90만 원에 기껏 해 봤자 거기서 하는 게 고기 굽기, 면 삶기 아니면 채소 썰기, 다듬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씨를 힘들게 했던건, 이런 열악한 대우를 참고 일하는 인턴 사원 가운데, 정규직 직원이 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녹취> 이 모 씨(가명/前 호텔 뷔페 인턴사원/음성변조) : "10개월, 12개월 정도 인턴을 시키고 애들을 해고하고 새로운 인턴을 받고. 하는일은 똑같은데 정직원 돈은 더 많이 줘야 되고 인턴은 돈을 적게 줘도 되잖아요. 해고해도 들어올 애들은 계속 들어오거든요."

청년 구직자들의 불만과 분노는 한계에 이르고 있지만, 아쉬운 쪽은 업체가 아닌 구직자이다 보니,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마땅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인터뷰> 김민수(위원장/청년 유니온) : "자기 숙 련과 자기 성장의 경험을 쌓지 못하고 계속 소 진 당하고 착취되는 경험이 누적된다는 것. 단 순히 젊어서 고생하는 것이라고 대신하고 넘어 가기에는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위기가 대단히 우리 사회 전체의 위협으로 다가올 거 다(라는 거죠.)"

이른바 ‘열정페이’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표준근로계약서 보급을 확대하고 사업장 감독을 강화한다는 대안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얼마 만큼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인터뷰> 김수영(변호사/공익인권재단 공감) : "근로기준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인턴을 근로자로서 해석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할 것 같고요. 기업들도 청년들의 일자리라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망해 봤으면 좋겠고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청년들의 노동정책을 만들어갔으면 좋겠고, 공동의 노력이 있을 필요가 있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9.2%로 7개월 만에 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을 새기기엔, 지금 청년 구직자들의 고통이 너무나 길고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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