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총격 사건’ 보도, 문제는?

입력 2015.05.24 (17:09)

수정 2015.05.24 (17:35)

<앵커 멘트>

지난 13일,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끔찍한 총격 사건이 있었죠.

그런데, 군부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의 보도 태도와 관련해 늘 지적받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취재 접근이 쉽지 않고, 속보, 특종 경쟁이 심하다보니, 상당수 언론들이 오보를 양산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기 보다 피상적인 보도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늘은 먼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김진희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김 기자, 이 사건이 벌어진 게 지난 13일 오전이었는데, 발생 초기, 상당수 언론들이 오보를 했죠?

<답변>
네. 속보 경쟁이 불러온 전형적인 오보라 할 수 있습니다.

총격사건 이후 군의 브리핑이 있기 전, 일부 언론들이 사상자 수를 잘못 보도하면서, 훈련중인 예비군 가족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혼란을 겪었습니다.

서울 내곡동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진 시각은 지난 13일 오전 10시 37분쯤.

방송들은 속보 자막을 내보낸 뒤, 곧 뉴스특보를 편성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특보 : "지금까지 군당국은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녹취> TV조선 : "지금까지 3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녹취> YTN : "이 사고로 훈련장 안에 있던 사람 3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명백한 오보였습니다.

사상자는 5명이었는데 7명이라고 전했고, 사망자수도 당시 상황보다 많게 보도한 겁니다.

이렇게 잘못된 보도는 30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수정됐습니다.

<녹취> KBS :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녹취> TV조선 :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겁니다. 2명 사망, 3명 부상입니다."
<녹취> YTN : "사망자 숫자부터 정정해드려야 할 텐데요.앞서 정정해서 말씀드린 대로 2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훈련중인 예비군 가족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갔습니다.

<녹취>한겨레(5.14) : "아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왔다는 한 시민은 '가슴이 철렁한데 뉴스 보도는 엇갈리고 무척 답답했다'고 했다."

왜 잘못된 보도가 나갔던 걸까?

한 언론사의 담당 취재기자는 “심정지 상태로 이송 중이던 중상자를 사망자로 잘못 파악한 것“이라며, “사실 확인 여부에 소홀해 오보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언론사측은 대형 사건이 벌어지면, 국민과 관계기관에 속보를 전해야 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 경찰 정보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같은 상황이 오보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인터뷰>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 교수) : "(속보) 보도는 하되 확인된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꼭 몇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이 반드시 첫 보도에 나가야 하느냐는 부분이에요. 저는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이 정도로 보도해도 충분히 의미는 전달될 수 있다고 봐요. 왜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고...그것 자체가 결국 속보경쟁,특종경쟁이 낳은 부작용인거거든요."

사실, 군 사건 사고에서 오보는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6월, GOP 총기사건 때엔 도주한 임 모 병장이 붙잡히지도 않았는데, YTN과 연합뉴스가 생포했다고 보도했다가 정정을 해야 했습니다

<녹취> YTN(2014. 6.23) : "생포가 됐던 것으로 보도해 드렸는데 아직은 아닙니다. 생포가 임박했다라는 것으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

<질문>
또, 언론이 이번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분석하면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짚는데는 좀 부족했다, 이런 비판도 나오고 있죠?

<답변>
네.‘예견된 인재’였다는 말이 나올만큼 군의 안전 관리 부실이 근본 원인이었는데요.

하지만 상당수 언론들은 훈련장에서의 총기와 실탄 관리, 사격시 통제 등 구조적 문제보다는 가해자 개인의 문제점을 부각했습니다.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사흘동안 5대 일간지 기사를 분석해 봤습니다.

전체 관련기사는 41건 중 가해자가 B급 관심 사병이었다는 내용 등 개인에 관한 기사가 15건으로, 사건 개요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특히 군의 총체적 관리 부실 등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지적한 기사는 5건에 불과했습니다.

<인터뷰>문형철 (디펜스21 군사전문지 기자) : "왜 그럼 안전 고리는 연결이 안 됐는지, 그건 왜 확인이 안 됐는지. 그리고 왜 제압은 안 됐는지. 그리고 예비군 훈련 사격은 왜 이렇게 밖에 이루어질 수 없는지. 그거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언급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개인적인) 쪽에만 너무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거죠."

사상 초유의 예비군 훈련장 총격 사건, 언론 보도는 가해자 개인을 파헤치는데 집중됐습니다.

<녹취>JTBC(5.14) : "올해 초부턴 선박 용접공 자격 시험을 준비하다가 떨어지자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TV조선(5.13) : "최 모 씨는 편모슬하에서 힘들게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녹취> 한겨레(5.14) : "최씨가 한 살 때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교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온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 쪽은 “최씨는 우리 신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평소 우울증을 겪었고, 인터넷 게임을 즐겨했다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녹취>채널A 쾌도난마(5.13) : "중증 우울증과 인터넷 게임 중독. 이 정도인 그런 사람에게 군 복무도 하고 예비군도 할 수 있습니까?"

군 당국의 브리핑도 가해자에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녹취> 이태명 (육군 대령/5.14) : "사고자 휴대폰 분석 결과 나는 저세상 사람이야. 안녕. 5월 12일이 마지막이야 나는 저세상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을 고려할 때 사전에 계획된 범행으로 판단됩니다."

군 인권센터는 이번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예비군 훈련에 관한 제대로 된 안전관리 지침도 없는 등 현행 예비군 훈련에 문제가 많다는 겁니다.

<인터뷰>김대희 (군 인권센터 운영위원) : "의사 적응장애나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우리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고. 다만 그들이 이번과 같이 실탄을 본인이 소지할 수 있고 우발적으로 사고를 낼 수 있는 환경에 처해지게 되는 게 군이란 특수상황 때문입니다. 그런 특수사항에 대해서 안전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그 사람들을 노출을 시켜주고 그런 다음에 벌어지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런데, 이런 보도의 문제점들이 특히 군 사건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변>
네. 앞서 말씀드린대로 언론들의 지나친 취재 경쟁이 근본 원인일 겁니다.

하지만, 군 당국의 투명하지 못한 대응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육군의 최초 브리핑은 사건 발생 후 4시간정도 지난 오후 3시쯤.

언론들은 군이 여러 의혹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실탄 지급은 원칙대로 한 것인지, 총기는 고정돼 있었는지 등 민감한 질문은 대부분 답변을 회피했다는 겁니다.

<녹취> 국민(5.14) : "육군은 예비군 사격장에 얼마나 많은 조교가 배치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해진 규정이 없고 부대 사정에 따라 다르다”는 애매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런 가운데 추측성 보도와 오보가 이어졌습니다.

<녹취>MBC 이브닝뉴스 (5.13) : "최 씨는 사격 조준점을 맞추는 영점 사격에서 한 발을 쏜 직후 갑자기 뒤돌아서 주변 예비군들에게 7발을 난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상당수 언론이 가해자가 영점사격 직후 범행을 했다고 보도했지만, 해당 훈련장은 영점사격을 실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범행 직전, 강남구 선착순 5명이라고 외쳤다는 내용도 일파만파로 보도됐지만,

<녹취> 채널A (5.13 PM 16:04) : "총을 딱 들고는 강남구에 선착순 5명 나와 봐 하고 쐈다. 이건 거의 뭐 제 정신이 아닌 상황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최초 브리핑 당시 군은 6개 사로에 현역 조교 1명씩 배치돼 있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과 달랐습니다.

<녹취> 세계일보(5.14) : "6개 사로에 6명의 조교를 배치했다면 제대로 된 통제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지만, 20개 사로에 6명만 배치했다면 안전관리가 소홀했다는 말이 된다. 이같이 기본적인 사실관계까지 틀리자 ‘사건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육군 측은 초기 파악에 혼선이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불신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연합뉴스(5.14) : "육군의 이같은 행태로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육군이 사고 없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치부를 말끔히 공개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질문>
그렇군요.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군 당국도 변해야겠지만, 언론도 좀더 노력해야겠죠?

<답변>
언론은 군당국의 문제점 비판은 물론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지난 15일, 군은 서둘러 대책을 발표했고,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녹취>MBC뉴스데스크(5.15) : "예비군 총기 난사 사고에 비상이 걸린 군 당국이 서둘러 안전대책을 내놨습니다. 사격장 통제요원을 1:1로 붙이고... <녹취>KBS 9시(5.15) 각 사로마다 방탄유리 칸막이를 설치해 바로 옆 사수를 보호하고 사격장내 CCTV 설치와 총기 고정틀 개선도 추진됩니다."

하지만, 군 당국의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언론 보도가 일회성에 그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GOP 총격사건 당시 병사들이 방탄복을 지급받지 못해 피해가 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녹취>YTN(2014.6.26) : "임 병장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할 무렵. 대원들은 방탄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군 당국은 단계적인 방탄복 보급 대책을 내놨고, 언론들도 이 내용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녹취>채널A(2014.9.11.) : "전방 GOP 병사들의 숙원이었던 '방탄복 전원 지급'이 당초 계획보다 14년이나 빠른, 내년부터 실현됩니다."

그러나, 이 대책이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는지 후속 취재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군의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기에 앞서 언론들도 군 관련문제를 지속적이고 심층적으로, 또 정확히 보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언론이 여전히 속보와 특종경쟁에 치우쳐 군 관련 사건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는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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