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취재하면서 알게 된 한 벤처기업 대표에게서 오랜만에 카톡이 왔습니다.
"전에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하나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기술이 이번 독일에서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돼 출시됩니다. 세계 최초가 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불현듯 지난해 말 신년 특집 9시 뉴스를 위해 이 벤처기업을 취재하면서 들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애플이 아이폰 성공신화를 만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UI, 즉 유저인터페이스인데, 현재의 UI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에 도전하고 있고, 6월쯤 개발이 완료될 것이란 거였죠.
◆ 아이폰 6S에 탑재될 '포스터치' 기술, 화웨이가 일주일 먼저 탑재해 공개반가운 마음에 무슨 기술인지 물어봤습니다. '포스터치(Force Touch)' 기술이라고 하더군요. 관련 기사를 열심히 검색해봤더니 꽤 많은 기사들이 떠서 놀랐습니다. 제가 이런쪽엔 밝지 않아서요.^^;
'포스터치' 기술, 지금 스마트폰에 적용된 기술은 '멀티터치' 기능인데요. 쉽게 말해 화면을 키우거나 할 때 두 손가락을 이용하고 있죠. 그런데 '포스터치' 기술은 한 손가락으로도 '멀티터치' 효과를 구현한다는 겁니다. 화면에 있는 센서가 손가락이 누르는 압력을 인식해서 작동한다고 하더군요. 두 손가락을 쓰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을 '꾹' 누르기만 하면 저절로 화면이 확대되는 거죠. 잘 이해가 안 되시죠? 열심히 검색을 해봤더니 한 기사에 쉽게 설명이 돼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이용할 때 지금은 목적지 찾고, 확인 누르고, 안내 시작 누르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포스터치' 기술이 적용되면 목적지를 '꾹' 누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안내가 시작되는 겁니다. 참 편리하겠죠? 관련 기사에는 이 기술이 애플의 맥북과 애플워치에 탑재돼 있는데 스마트폰에는 처음으로 아이폰6S와 6S플러스에 탑재될 예정이고, 9월 9일 공개행사가 열릴 예정이라고 돼 있었습니다.
포스터치 '애플이 야심차게 준비한 차세대 스마트폰 UI 기술을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만들었고, 중국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돼서 아이폰보다 먼저 출시된다?'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이 의문을 풀어줄 기사들을 여러 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9월 4일부터 9일까지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가 열립니다. 세계적인 전시회인데요, 여기서 '포스터치' 기술이 적용된 중국 화웨이의 신제품 메이트7S가 애플의 아이폰보다 먼저 공개될 것이라고 돼 있더군요. (이 글을 쓰는 중 카톡이 다시 왔는데요. 우리시간 어젯밤(2일) 9시, 독일 베를린 시간으로 오후 2시에 런칭쇼를 했다고 합니다.)
Huawei Mate 7S ◆ "왜 삼성, LG가 아니고 중국 화웨이인가요?"삼성, LG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벤처기업 대표께 한 첫 질문은 바로 위 소제목과 같습니다.
왜 애플과 세계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이 아니고 중국 기업에 이 '포스터치'가 구현 가능한 센서와 칩 등 모든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느냐는 거죠. 대답은 "삼성과 LG 관계자도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세계 최초 폰이 삼성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삼성 디스플레이에서 만든 AMOLED가 장착돼 있으니 삼성도 관여돼 있다"라는 거였죠. 많이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지난해 말에 취재 도중 벤처기업 대표에게 한 질문과 똑같습니다. 당시 '기술혁신' 관련 신년특집 뉴스를 취재하던 중 생각이 나 전화를 했더니 "마침 신기술이 개발됐는데 중국 레노버 태블릿에 장착해 양산에 들어갔다"는 거였죠. 삼성 갤럭시노트의 강점 중에 하나가 바로 'S펜'인데 간단히 설명하면 같은 기능을 하면서 원가를 4분의 1로 낮춘 기술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했던 "왜 중국 기업인가요?"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번과 똑같이 "만났다" 였습니다.
☞ [관련 기사] 2015 경제환경 급변…한국경제 파고 넘으려면안 그래도 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의 기술 추격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만든 기술이 중국 기업에게 가도 되는 걸까요? 사실 중국 기업들의 '기술 빨아들이기'는 무서울 정돕니다.
화웨이 ◆ '기술 블랙홀' 중국, 우리 기업 비장의 무기는?지난해 중국에서 출원된 특허 건수는 몇 개나 될까요? 특허전문가에게 물어보니 93만 건 정도라고 합니다. 미국이 57만 건이니까 미국보다 훨씬 많죠. 우리나라는 21만 건으로 중국의 23% 수준입니다. 중국의 특허출원이 이렇게 많은 건 창업을 장려해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 때문인데요. 지난해 중국의 창업 건수는 365만 건으로 공교롭게도 하루에 만 개 씩 창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창업으로 기술을 확보함과 동시에 '짝퉁' 단속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홈페이지에는 최근 '지식재산권 전략 실시추진 계획'이 마련돼 시행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떠 있는데, 한 마디로 '짝퉁'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중국이 결국 '짝퉁 국가' 이미지를 바꾼 뒤 '특허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능한 일이죠. 또 특허 업계에서는 중국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서 전 세계 특허를 사들이고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특허에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중국 밖에서 개발된 신기술까지 재빠르게 흡수해 제품화하고 있으니 중국은 그야말로 '기술 블랙홀'이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다행히 앞서 말한 벤처기업은 '포스터치' 시스템을 파는 것이고, 100여 건에 달하는 특허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다시 제가 한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이 벤처기업 기술을 삼성과 LG가 제품에 적용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미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사 제품이 추구하는 바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마지막 경우, 즉 '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의 무기 말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 몸과 머리가 가벼워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더 쉬운 중소기업, 벤처기업들과도 손을 잡고 '더, 더 혁신적인 기술'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여기엔 정부의 지원도 필수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