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최하위권…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의 진실은?

입력 2016.07.0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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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비스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4만 7천 달러(2013년 기준).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80% 수준. 비교 가능한 OECD 26개국 중 21위로 최하위권. 정부가 최근 '서비스경제 발전 전략'을 내놓으면서 밝힌 수치들이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이렇게 낙후돼있으니 규제를 풀고, 서비스업과 제조업, IT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게 이번 대책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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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게 정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일까? 그리고, 노동생산성이 낮은 건 우리나라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일을 못 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일까?

택배 기사, 뼈 빠지게 일해도 노동생산성 낮은 이유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대표적 업종으로 꼽히는 택배업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교통연구원이 집계한 '화물자동차 운송시장 동향'에 따르면, 택배 기사들은 하루 평균 12~13시간씩 일하며 150~200개씩 배송한다. 밥 먹을 틈도 쉴 새도 없이 일하는 택배업계의 현실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는 택배업 종사자들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니, 대체 선진국 택배 기사들은 하루에 몇 개를 배송한다는 말인가? 의문은 노동생산성의 계산 방식을 이해해야 풀린다.

노동생산성은 '노동투입량 1단위당 산출량'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노동생산성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쓰이는 산출량의 개념이 '물량'이 아니라 '부가가치'라는 것이다. 즉, 하루에 택배를 몇 개 배달했느냐가 아니라, 그래서 얼마의 부가가치(거칠게 말하면 '달러로 환산한 이익')를 창출했느냐가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당연히 소비자가 지불하는 요금이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택배업체가 유통업체로부터 받는 건당 배송 수수료는 미국(서비스업 노동생산성 2위)이 1만 원, 일본(서비스업 노동생산성 7위)이 7천 원 선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천5백 원 정도다. 이런 요금 구조에서는, 택배업체의 영업이익률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우리 택배 기사가 하루에 2백 개를 배달하고 미국 택배 기사가 하루에 백 개를 배달해도, 노동생산성은 미국 택배 기사가 2배 높게 산출될 수 밖에 없다.

한국 회계사가 미국에서 일하면 노동생산성은?

이른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종은 다를까? 최근 수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관련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제 역할을 못 한 회계법인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적정한 품질을 유지할 정도의 외부감사 보수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상황을 회계사의 노동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와 미국 GM의 자산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각각 120조 원과 160조 원 선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와 GM이 외부감사를 받기 위해 회계법인에 지급한 보수는 각각 15억 원과 462억 원이었다. 자산규모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회계법인이 받는 보수는 30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투입되는 노동량(회계사 수*노동시간)의 차이가 30배에는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면, 이 경우에도 소비자(기업)가 지급하는 회계보수의 차이가 노동생산성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회계사가 미국에서 일하면 동일한 노동을 해도 '자동으로'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노동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

해외에 나가보면 이른바 '선진국'으로 갈수록 공공서비스든 개인서비스든 서비스업 요금이 비싸다는 것을 체감한다. 택시요금, 야구경기 관람료부터, 이발, 자동차 정비, 양변기 막혔을 때 뚫는 요금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때로는 '살인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 언론사 특파원이 파리에서 겪었다는 일화는 프랑스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세계 5위)이 높게 나오는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아파트 안에 열쇠를 놓아둔 채 문을 잠가버려 밤에 수리업자를 불렀더니 80만 원을 청구하더라. 너무 비싸다 싶어 그냥 돌려보내려 했더니 출장비로 20만 원을 요구하더라."

선진국의 서비스 요금이 비싼 건 사람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우리가 '잡일'이라고 부르는 노동을 해도 어느 정도의 생활이 가능한 이유다. 노동생산성의 계산방식을 이해하면, 상당수 서비스업(노동력보다 첨단기술과 시스템이 부가가치를 좌우하는 일부 업종을 제외한)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높아서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니라 선진국이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높다고 얘기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다시 말해, 상당수 서비스업에서 노동생산성의 높고 낮음은 경쟁력이나 근면성의 척도가 아니라 '사람값'을 어느 정도 쳐주는 나라에서 노동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사람값’에 인색한 한국 경제, ‘제값 주기’ 절실

금융그룹 UBS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세계 28위지만, 전반적인 서비스 요금 수준은 세계 40위 바깥이었다. 우리나라는 소득 수준에 비해 이른바 '사람값'이 저렴하다는 걸 보여준다. 뒤집어 생각하면, 각종 서비스 요금을 우리나라 GDP 수준에 걸맞게 '정상화'만 해줘도 한국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셈법이 나온다. 예컨대, 유통업체들이 택배 기본 단가를 천 원 올려주면 택배업 종사자들의 노동생산성은 지금보다 30% 이상 높게 산출될 것이다.

어디 택배뿐인가. 한국에는 카페와 식당, 편의점, 각종 배달업소 등 주말이든 심야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업소들이 넘쳐난다. 그 편리함은 상대적으로 낮은 서비스 요금과 그에 따른 저임금, 즉 낮은 노동생산성에 기반해 유지된다. '사람값'에 인색한 경제, 그게 OECD 최하위권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이 보여주는 진실에 가깝다. 우리는 편의점의 심야 아르바이트생, 새벽에 일하는 청소부 아주머니, 밤 10시에 치킨을 배달하는 청년, 주말 저녁에 호출받아 달려온 열쇠 수리업자의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제값'을 치를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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