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을 한 번 보실까요?
19개월 전 한 놀이공원의 주차장입니다.
주차된 흰색 차량이 다가오더니 가족을 덮칩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 4살 하준 군이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운전자가 변속기를 주행모드로 놓은 채 시동을 끄고 간 건데, 주차 브레이크도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준 군을 잃은 가족들은 슬픔을 참고 한 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청와대 국민청원입니다.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 문구와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했고, 14만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정부 당국도 관련 대책을 준비하는 등 뭔가 해결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하준 군 어머니의 이런 바람은 금세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고유미/故 최하준 군 어머니 : "바뀐 게 없었어요. 안내방송이 나오고는 있는데 주말에 그 복잡한 데서 누가... 안내문은 너무 작고요."]
답답한 마음에 정부 당국에 다시 전화도 하고 편지도 써봤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당연한 바람이 왜 이뤄지지 않는 걸까요.
사고 후에 대책이 쏟아졌지만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준이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4월, 국토부와 경찰청은 함께 '교통 안전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경사진 주차장에서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고임목을 설치하고, 관리자는 안내표지판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최고 20만 원까지 범칙금을 내도록 했습니다.
또 이어서 지난해 9월에는 고임목을 설치하고 핸들을 반드시 가장자리로 돌려놓게 하는 등의 개정된 도로교통법도 시행됐습니다.
대책이 쏟아졌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일단 '경사진 곳'의 기준이 불명확했기 때문에 단속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지난 1년 간 적발된 운전자는 14명에 불과했습니다.
더 나쁜 건 대책이 나와도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났다는 겁니다.
또 지난해 1월엔 안전표지판 설치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이른바 '하준이법'이 발의됐지만, "유사한 법안이 있다" 등의 이유로 법사위에 1년 가까이 계류돼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현장 상황은 앞서 하준 군 어머니의 말대로 바뀐 것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사고 현장을 다시 가봤더니 일단 놀이공원 측이 미끄럼 방지 고임목을 팔고 있는데, 이용자는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주차장이 아니라 공원 안에서 팔고 있습니다.
현장 목소리 잠시 들어보겠습니다.
[주차요원/음성변조 : "(여기 고임목은 어디서 팔아요?) 우리는 잘 몰라."]
이런 상황이다보니까 주차장 곳곳에 안전수칙이 적혀있지만, 고임목을 고정한 차량은 한 대도 없습니다.
안전표지판 역시 문제였습니다.
표지판이 운전석 오른쪽에 위치하다보니까 당연히 운전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더 이상의 하준이는 안 된다"는 외침이 또 공허하게 끝나는 것은 아닌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어른들이 문제를 또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겁니다.
KBS 뉴스 우정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