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을' 중의 '을'이죠.
일터에서 '갑질'을 당하더라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고 직장을 옮기려면, 사업주에게 잘못이 있단 걸 입증해야 하는데, 사법기관의 판단이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희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여주의 한 공장.
관리자가 캄보디아에서 온 오치엣 씨를 다그칩니다.
[공장 관리자/음성변조 : "이리 와봐 이 **야. 못하는 게 어딨어, 못하는 게."]
잘 알아듣지 못하자 집으로 가라고 언성을 높입니다.
[공장 관리자/음성변조 : "빨리. 가, 가, 가라고. 집에 가."]
뒤통수를 때리고 주먹으로 위협하기까지 하자, 동료 노동자였던 리살린 씨가 오치엣 씨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그러자 관리자는 두 사람을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캄보디아로 돌아가라, 윽박질렀습니다.
[직원/음성변조 : "지금 캄보디아 간다고 싸인하고, 안 가면 이탈신고 할 거예요."]
억울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한 두 사람, 공장에선 쫓겨날 처지라 노동부에 이직허가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엇갈렸습니다.
오치엣 씨는 이직이 허가됐지만, 리살린 씨는 불허돼 불법체류자가 된 겁니다.
근거는 경찰의 판단.
오치엣 씨는 폭행 당한 영상이 있어 피해자로 인정됐지만, 리살린 씨는 폭행이나 직접적 위협이 입증 안돼 법적으로 강요죄가 안된단 거였습니다.
[오치엣·리살린/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너무 억울해서 법무부나 노동부가 이 문제를 다시 해결해주면 좋겠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려면 근로자 책임이 아니란 것, 그러니까 사업주 잘못이란 걸 노동자가 입증하게 하고 있습니다.
[안대환/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 : "외국인 근로자가 그걸 (피해 사실을) 입증을 해야 되는데 관련 법을 외국인들이 압니까? 한국어도 잘 모르는데…"]
그래서 노동부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근거로 이직 허가를 내주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법적으로 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이직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최정규/변호사 : "형사처벌 대상은 되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 사안으로는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음에도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는…"]
2010년 이후 노동부가 사업주 잘못을 인정해 이직을 허가한 경우는 2%도 되지 않습니다.
KBS 뉴스 이희연입니다.
촬영기자:강현경/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김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