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계엄령 사태가 급박하게 흘러가며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전국에서 연일 펼쳐지고 있죠.
이런 가운데 집회 참석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마시라며 미리 대량 결제를 해 주는, 이른바 '선결제 릴레이'도 새로운 집회 문화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어떤 이들이 선결제 릴레이에 참여했는지, 찾아가는K 김대영 뉴스캐스터가 직접 찾아봤습니다.
[리포트]
광주 충장로의 한 커피숍.
지난 7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지켜보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였던 그날, 이곳에는 커피와 음료 6백 잔이 미리 결제됐습니다.
수소문 끝에 찾은 선결제의 주인공.
광주여대에 재학 중인 22살 이혜진 씨였습니다.
SNS를 통해 '집회 선결제'를 접한 뒤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선뜻 커피 180잔을 결제했습니다.
아이돌 콘서트 현장에서 경험했던 팬들의 '나눔 문화'가 익숙했던 혜진 씨.
'덕분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는 집회 참가자들의 말에 더 뿌듯했습니다.
[이혜진/광주여대/'선결제' 참여 : "다 초면인 사람인데 선의로 무언가를 주고 받는다는 게 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다들 한마음 한 뜻으로 모여서 만난 거잖아요.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나랑 같은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저 사람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선결제로 집회에 힘을 보탠 이들 가운데는 10대 고등학생도 있었습니다.
순천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이 커피숍에 전화를 걸어 집회 참석자들에게 커피 10잔을 나눠 달라고 한 겁니다.
['선결제' 참여 고등학생 : "(계엄령이) 좀 많이 잘못된 것 같아요. 저희가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자세히 배우고 저희도 충분히 판단을 하고 충분히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커피와 음료 100잔을 주문한 21살 청년은 온라인 닉네임을 남기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커피를 가져가라고 알렸습니다.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고등학교까지 나온 광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닉네임 '정든프'/커피 '선결제' 참여 : "(집회) 가시는 분들은 커피 아직 남아있으니까 꼭 드셔주시고 안 드실 거라도 한 명당 세잔까지 가능하니까 수령을 해서 광장에 계신 중장년분들이나 어르신들께 나눠 주셨으면 합니다. 정든프라는 이름 대면 받으실 수 있어요."]
MZ 세대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탄핵 집회에 녹아들면서, 엄숙하기만 했던 집회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했고, 민중가요 대신 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옵니다.
[거북이 '빙고' : "사는 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최진희/고등학생 : "저희는 시위를 참여하려고 나온 건데 사실 커피 말고도 핫팩이나 이런 팸플릿 같은 걸 많이 나눔을 받아 광주 시민분들이나 국민들의 시민 의식이 잘 보여지고 있는 거라 내심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나눔과 연대가 되살아나는 탄핵 집회 현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 : "개인의 개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서로 사회적인 어떤 목적을 위해서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민주주의 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를 위해 기꺼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누는 이들.
80년 5월의 '대동정신'을 연상케 하는 마음 씀씀이에, 시민들은 추위도 잊은 채 날마다 모여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집회 문화가, 무겁고 어려웠던 광장의 문턱을 허물고 있습니다.
찾아가는 K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