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받게 된 윤석열 대통령 앞에는 '내란죄'라는 무거운 혐의가 있습니다. '내란죄'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 등으로 폭동한 죄로, 국가 존립의 문제인 만큼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형법상 중죄에 해당합니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입증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거로 예상됐던 탄핵 심판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양새입니다. 국회 탄핵소추단이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형법상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기로 한 게 시작입니다.
국민의힘은 주요 탄핵 사유인 내란죄가 철회됐다면 탄핵소추안을 다시 작성해 국회에서 재의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형법 위반이 아닌 헌법 위반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한 변경일 뿐이라며, 내란 사유는 빠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 민주당 "무식한 주장…내란죄 뺐다는 개념 성립 안 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형사 소송이 아닌 헌법 재판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다시 정리를 했다는 입장입니다. 즉 국회에서 의결한 탄핵 사유 가운데 내란죄 성립 여부를 형법 위반 여부로 다투지 않고 헌법 위반으로 다퉈보기 위해서란 겁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내란죄를 뺐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탄핵소추안에 탄핵 사유로 포함된 내란 행위 가운데 단 한 가지도 제외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당연한 절차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심판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당시 탄핵소추위원단은 박근혜의 뇌물죄, 강요죄 등 형법상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위헌 여부만 분명히 밝히겠다며 탄핵 사유서를 재정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탄핵 사유 정리를 주도했던 게 당시 국회 탄핵소추위원이었던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현재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라고도 강조했습니다.
당시 권 의원은 "탄핵 재판은 형사 재판이 아니라 행정 소송, 헌법 재판이다", "형법상 범죄 성립 유무는 헌법 재판의 대상이 아니라 형사 재판의 대상이다, 그래서 탄핵소추사유서를 다시 작성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탄핵소추안이 무효니 국회서 다시 재의결해야 한다는 여권과 일각의 요구에 민주당은 "무식한 주장"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형법상 내란죄를 빼면 탄핵심판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어제 국회에서 열린 비상연석회의에서 "빠른 탄핵 심판을 위해 '평가' 부분만 삭제했을 뿐 내란 행위를 탄핵 사유로 삼은 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 국민의힘 "졸속 작성된 탄핵소추안 각하해야…국회 재의결"민주당이 소환한 2017년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이었던 권성동 의원은 어떤 입장일까요. 지금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그때와는 사안을 다르게 보는 듯합니다.
내란죄 철회 논란에 권 원내대표는 헌법재판소를 향해 "졸속으로 작성된 탄핵소추문을 각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제대로 된 소추문으로 국회 재의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탄핵소추문에 내란이란 단어가 38번 들어갔고, 탄핵소추 사유 1번이 내란 범죄 행위"라며 "내란 혐의는 탄핵소추문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핵심을 제외한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라 '찐빵 없는 찐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이 탄핵소추 사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같이 형법 위반 사유를 제외한 거라는 설명을 내놓은 데 대해서는 "형법 위반 사유를 제외한다면 내란죄뿐 아니라 직권남용죄, 특수공무집행방해죄와 계엄법 위반 사유도 제외해야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국민의힘은 이러한 변동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내란이 주요 혐의로 적시된 한덕수 총리 탄핵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주진우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은 SNS에 "이 결정은 한덕수 대행의 탄핵 재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한 대행의 탄핵소추에서 '내란죄'를 빼면 도대체 뭐가 남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쟁점이 아주 간단한 '한덕수 대행 탄핵소추'부터 결정하라"고 촉구했습니다.
■ 홍준표 "내란죄 선동하더니 철회?"…추미애 "과거가 현재 구할 것"홍준표 대구시장은 SNS를 통해 "여태 내란죄 프레임으로 죽일 놈이라고 선동하더니 무슨 정보를 들었기에 갑자기 내란죄를 철회한다고 했을까"라며 민주당을 향해 날을 세웠습니다.
홍 시장은 "헌재 안에 이재명 의원 부역자가 있는지, 느닷없이 내란죄를 철회하고도 조속히 파면결정을 할 자신이 생겼나 보다"며 "이재명 의원은 항소심 재판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지 않냐"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이미 내란죄로 구속기소 한 김용현과 군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한 사람의 나라농단으로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엉망이 돼 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 의원은 SNS에서 "8년 전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동참을 호소했을 때 설득 논리로 꺼낸 것이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가 아니고 행상책임을 묻는 헌법재판이기 때문에 탄핵 재판의 신속한 결정이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추 의원은 "형법상 내란죄는 헌법 기관의 권능 정지에 대한 고의와 폭동이라는 수단 외에도 국헌문란의 목적을 요건으로 한다"며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 요구하는 행상책임은 의회나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의 침해, 영장주의나 의회주의 같은 헌법 원리는 부정하는 행위를 통해 헌법 파괴 행위와 헌법 수호 의지, 태도를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행상책임'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선례가 나온 것으로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임하는 태도에 따른 책임을 뜻합니다.
내란죄가 아니더라도 중대한 헌법 위반에 대한 책임 위배만으로 윤 대통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도 읽히는 대목인데, 다만 법조계에서는 행상책임은 양형이나 위법의 중대성을 따질 때 쓰이는 개념이라 위법 사실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