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한 것과 하지 못한 것…윤 대통령 수사 51일의 기록

입력 2025.01.23 (17:36)

수정 2025.01.23 (17:36)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수사해 오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고 기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51일, 검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지 36일 만입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오늘(23일) 기자들을 상대로 브리핑을 열고 직접 사건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 공수처가 본 윤 대통령 혐의는?

공수처가 적시한 윤 대통령의 혐의는 두 가지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및 군사령관들 등과 공모해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폭동을 일으킨 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죄
경찰 국회경비대 소속 경찰관들과 계엄군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국회의원들의 계엄해제요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

적시된 혐의 외에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쟁점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습니다.

취재진이 "윤 대통령이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지시하고, 포고령 1호를 최종 검토했으며,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한 게 맞다고 판단한 건지" 묻자, 이 차장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 예상보다 검찰에 빨리 넘긴 배경은?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만 있고, 재판에 넘길 기소권은 없습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구속 기간 20일 중 절반은 공수처가, 절반은 검찰이 나누기로 협의가 끝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공수처가 1차 구속 기한으로 산정했던 28일보다 5일 빠른 오늘, 서울중앙지검에 공소제기 요구 처분을 결정한 겁니다.

이 차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 신청을 검찰 측에서 맡기로 하면서, 연장을 위한 서류 정리 등에 시간이 필요하니 사건을 더 일찍 검찰에 넘기기로 협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신병 확보한 9일 동안 대면조사 단 '1회' … "비협조적 태도 일관"

공수처의 결심에는 윤 대통령의 태도도 한몫했습니다.

이 차장은 "윤 대통령이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형사 사법 절차에 응하지 않았고, 구속 이후 공수처의 피의자 신문 자체를 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공수처는 서울구치소에 구금된 윤 대통령을 공수처로 데려와 조사하는 '강제 구인'을 세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윤 대통령 측 거부로 가로막혔습니다.

이에 대해 이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따라 구속영장의 효력으로 윤 대통령을 강제 구인할 수 있으니 구치소 교도관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구치소 측에서 '강제 구인은 법적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공문을 보내며 난색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 차장은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가 계속 조사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검찰이 그동안의 수사자료를 종합해 추가 수사하는 것이 진상 규명에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공수처는 추가 물증 확보를 위해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에도 나섰지만, 대통령 경호처의 거부로 실패했습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 건 체포 당일인 지난 15일 단 한 차례였습니다.

■ 공수처 조사 거부한 윤 대통령…증거 효과 있나?

대면조사 당시에도 10시간 넘는 조사를 받았지만, 당시 윤 대통령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서 열람과 날인도 거부하는 등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공수처는 230여 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다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날인되지 않은 진술 조서가 재판에서 증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쟁점입니다.

이 차장은 "재판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증거 능력을 부여할 방법은 없지만, 피의자가 여러 객관적 정황에 비춰 말이 되지 않는 얘기를 하면 그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는 충분히 제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진술 거부권 행사 자체는 피의자의 권리이지만, 진술거부권 행사가 불리한 양형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명시한 대법원 판례도 있기 때문에 양형 자료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 "거봐, 부족하다니까" … 공수처가 추가 확보한 증거

공수처는 자체 수사로 확보한 증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얼마의 병력 투입을 원했는지에 관한 군 관계자 진술
- 비상계엄 해제 직후 국회의원 체포와 또 다른 비상계엄을 언급한 군 관계자 진술
-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계엄 전 만나 비상계엄을 모의한 정황 등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의 여러 혐의에 관한 중요 증거

공수처가 확보한 진술 중에는 "윤 대통령이 4일 새벽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2차 계엄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결의한 이후인 4일 오전 1시가 넘은 시각, 계엄사령부 상황실이 설치된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했습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국회에 얼마나 병력을 넣었느냐"고 물었고, "500명 정도"라는 김 전 장관 답변에 "거봐, 부족하다니까. 천 명은 보냈어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진술들은 윤 대통령의 구속 여부를 심사하는 법정에서도 활용됐습니다.

공수처는 구속영장 심사 당시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실행하려 한 정황이 있고, 탄핵소추가 기각되면 다시 극단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 윤 대통령 측 "위법 수사 책임져야"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윤 대통령 측은 "공조수사본부의 위법 수사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공수처가 수사권이 없음에도 관할권 없는 법원에서 불법 영장을 받아낸 후, 수사 지휘권 없는 경찰 기동대 수천 명을 동원해 불법 영장 집행을 강행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겁니다.

또 "대통령을 체포한 후에는 진술을 강요하며 망신 주기에 앞장섰고, 가족의 접견과 서신도 제한하는 등 과도한 인권침해를 자행했다"고 했습니다.

■ 공수처에 남은 과제 … "엄정 수사 이어가겠다"

공수처가 검찰에 넘긴 기록은 69권, 3만 쪽이 넘는 분량입니다.

이 가운데 검찰·경찰에서 넘겨받은 게 아닌 공수처 자체적으로 작성한 내용은 26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수처가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피의자는 윤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입니다.

공수처는 그간 사실상 모든 인력을 윤 대통령 수사에 투입했는데, 그 사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는 소환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공수처는 아직 공수처에 남아있는 비상계엄 관련자들과 사건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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