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시각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
입력 2006.06.02 (09:21)
수정 2006.06.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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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금 시각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 달 25일에 내려진 헌법재판소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섭니다.
일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한강에 투신하기까지 했는데요..
비 장애인 입장에선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시각 장애인들로선 단순한 직업을 떠나 생사가 걸린 절실한 문제라고 합니다.
홍희정 기자.. 자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는 조항부터 좀 알아볼까요?
<리포트>
네,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은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안마사에 관한 규칙 3조 1항’입니다. 이 조항이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게 위헌 판결 요지였는데요, 하지만, 3년 전에는 헌재가 똑같은 문제를 놓고 정 반대의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적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이어 어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또 한강물로 몸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투신한 시각장애인은 모두 8명,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에 반발해 몸으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행히 즉시 구조돼 목숨은 건졌는데요, 취재진이 병원을 찾았을때, 이들중 한명은 가족과 통화중 이었습니다. 차마 아내에게는 뛰어내렸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녹취> "걱정 하지마 (알았어요. 언제 내려오는데?) 금방 내려갈 거야. 금방 내려가 걱정 하지마."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다리 위에서 시위중이라고 둘러댄 김씨. 김씨는 앞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뛰어내릴 땐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가족들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인터뷰>김용화 (시각장애인 안마사) : “이 세상의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너무 비참한 그런 감정을 가졌는데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표현보다 그 이상의 말이 있다면 수 백, 수 백 번을 미안하다는 말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거일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투신까지 했던 이유, 그만큼 절박한 심정때문이었다는데요,이들은 이번 판결로 안마사라는 생계수단을 잃을거라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저는 삶을 포기했어요. 삶이 의미가 없어요. 이 상태에서 살아봤자 정말 지하철에서 구걸이나 하고 노숙자로 둔갑해서 정말 10원짜리 100원짜리에 의지하면서 술독에 빠져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박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미 시각장애인인 그가 안마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려 부단히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임을 경험했기 때문인데요.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이 세계만큼은 발을 안들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이력서도 넣어보고 신문사에도 이력서를 내고 진짜 안 해 본 게 없었어요. 결국에 이것(안마사) 밖에 내가 먹고 살 길이 이거 밖에 없구나..라는 각오를 그때 했던 거예요. 불과 나이 스무살 때... ”
이들이 투신한 이후에도, 마포대교에는 시각장애인들의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앞이 보이지 않다보니 서로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가며, 힘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녹취> "모여라! 모여라! 모여라!"
이들은, 이제 누가 자신들에게 안마를 받겠냐며, 취재진에게 절박한 심정을 털어놨는데요,
<인터뷰>시각장애인: “눈 멀쩡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한테 안마를 다 받을텐데 우린 죽으라는 거와 다름없는 거잖아요. ”
<인터뷰>시각장애인: “앞이 보여야지 어디가서 빈병이라도 주워서 고물이라도 주워서 파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까 저희는 이게 마지막 최후의 생존권이에요.”
실제로, 헌재의 판결 이후, 벌써부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며칠전 동료 4명과 함께 해고 당했다는 한 여성 안마사를 만났는데요.
<인터뷰>박현애 (시각장애인, 안마사): “현재 판결이 목요일에 나고 토요일(5월 27일) 아침에... 앞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되는 거면 다른 곳에도 가기 어렵다는 거니까요. 사형선고 받은 기분이에요. 지금 기분이...”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은 왜 이렇게 절실한 걸까요 대전에서 작은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김대한씨.
젊은 시절, 누구보다 건강했던 김 씨는 스물 아홈살 때 작업 현장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막막했던 김씨에게 안마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는데요,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세상에 힘이 펄펄 끓어오를 때인데 눈이 안보이니까 정말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거야. 죽음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안마사가 된 후) 눈만 없을 뿐이지 내 손으로 얼마든지 일해서 세금도 내고 지금 현재까지는 너무 편안하게 잘 살아왔어요. 내 직업이 있으니까... ”
눈이 보일때 다녔던 익숙한 거리도,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는 너무 낯설어 외출조차 하기 힘들다는 김씨. 하루의 대부분을 좁은 집안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 다른 직업은 생각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모든 걸 옆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제 위치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행동하기가 참 거북하고 안마시술소에는 일정한 장소만 왔다 갔다 하고 일반 통로에 제한이 되어 있으니까 몇 번 왔다갔다 알려주면 자기 혼자 스스로 옮기는 수가 있거든.”
그의 아내 심화섭씨는 남편과 같은 중도실명자들에게 안마를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안마사가 큰돈 버는 직업은 아니어도, 남들에게 도움받지 않고 살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시각장애인 교육생들은 불안한 앞날에 의욕을 잃고 있다는데요
<인터뷰>심화섭 (시각장애인, 안마 강사): “새로운 자리에 가면 물 떠다줘야 치워도 줘야지. 나라도 안 써주지. 내 입장에서라도 그런데 어디서 발을 붙이라고 살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지.”
이번 판결에 절망한 것은 성인들만이 아닙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의 한 맹학교에선, 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하며 항의 시위 중이었는데요.
<인터뷰> 김유란 (맹학교 학생): “허무하죠. 갑자기 그런 판결을 내는 건 말이 안돼죠. 솔직히 3년 동안 고생해서 손이 부어가며 연습해서 어렵게 사회에서 일하려고 한 건데 그걸 가져가니까 뺏어간 거잖아요. 말이 안 돼죠.”
맹학교 고등부 교실의 시간표를 보면, 안마관련 수업이 전체 수업의 절반이나 됩니다. 맹학교 교육과정상 직업교육은 안마가 유일한데요. 진로 지도를 해야하는 교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맹학교 교감 :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찢어진 가슴입니다. 얘네들도 우리들이 기껏 가르쳐 봤자 제가 살 길이 없는 건데 우리가 가르친다한들 무슨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생후 6개월에 소아암으로 시력을 잃은 11살 동진이.시각장애인은 사회활동도, 대학을 가는 것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엄마는 앞으로 동진이에게 무엇이 되라고 할지 걱정입니다.
<인터뷰>강혜성 (맹아 학부모): “이 안마가 학교와도 연관이 깊어요. 이 맹아학교에 오시는 (특수)교사로 오신 교사들이 시각장애인이 꽤 있어요.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가질 수 있잖아요. 그 꿈도 이 안마가 없어지면 그 교사의 꿈도 없어지는 거에요.”
누구에게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판결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 선택의 자유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생존권을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시각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 달 25일에 내려진 헌법재판소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섭니다.
일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한강에 투신하기까지 했는데요..
비 장애인 입장에선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시각 장애인들로선 단순한 직업을 떠나 생사가 걸린 절실한 문제라고 합니다.
홍희정 기자.. 자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는 조항부터 좀 알아볼까요?
<리포트>
네,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은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안마사에 관한 규칙 3조 1항’입니다. 이 조항이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게 위헌 판결 요지였는데요, 하지만, 3년 전에는 헌재가 똑같은 문제를 놓고 정 반대의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적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이어 어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또 한강물로 몸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투신한 시각장애인은 모두 8명,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에 반발해 몸으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행히 즉시 구조돼 목숨은 건졌는데요, 취재진이 병원을 찾았을때, 이들중 한명은 가족과 통화중 이었습니다. 차마 아내에게는 뛰어내렸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녹취> "걱정 하지마 (알았어요. 언제 내려오는데?) 금방 내려갈 거야. 금방 내려가 걱정 하지마."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다리 위에서 시위중이라고 둘러댄 김씨. 김씨는 앞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뛰어내릴 땐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가족들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인터뷰>김용화 (시각장애인 안마사) : “이 세상의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너무 비참한 그런 감정을 가졌는데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표현보다 그 이상의 말이 있다면 수 백, 수 백 번을 미안하다는 말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거일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투신까지 했던 이유, 그만큼 절박한 심정때문이었다는데요,이들은 이번 판결로 안마사라는 생계수단을 잃을거라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저는 삶을 포기했어요. 삶이 의미가 없어요. 이 상태에서 살아봤자 정말 지하철에서 구걸이나 하고 노숙자로 둔갑해서 정말 10원짜리 100원짜리에 의지하면서 술독에 빠져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박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미 시각장애인인 그가 안마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려 부단히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임을 경험했기 때문인데요.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이 세계만큼은 발을 안들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이력서도 넣어보고 신문사에도 이력서를 내고 진짜 안 해 본 게 없었어요. 결국에 이것(안마사) 밖에 내가 먹고 살 길이 이거 밖에 없구나..라는 각오를 그때 했던 거예요. 불과 나이 스무살 때... ”
이들이 투신한 이후에도, 마포대교에는 시각장애인들의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앞이 보이지 않다보니 서로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가며, 힘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녹취> "모여라! 모여라! 모여라!"
이들은, 이제 누가 자신들에게 안마를 받겠냐며, 취재진에게 절박한 심정을 털어놨는데요,
<인터뷰>시각장애인: “눈 멀쩡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한테 안마를 다 받을텐데 우린 죽으라는 거와 다름없는 거잖아요. ”
<인터뷰>시각장애인: “앞이 보여야지 어디가서 빈병이라도 주워서 고물이라도 주워서 파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까 저희는 이게 마지막 최후의 생존권이에요.”
실제로, 헌재의 판결 이후, 벌써부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며칠전 동료 4명과 함께 해고 당했다는 한 여성 안마사를 만났는데요.
<인터뷰>박현애 (시각장애인, 안마사): “현재 판결이 목요일에 나고 토요일(5월 27일) 아침에... 앞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되는 거면 다른 곳에도 가기 어렵다는 거니까요. 사형선고 받은 기분이에요. 지금 기분이...”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은 왜 이렇게 절실한 걸까요 대전에서 작은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김대한씨.
젊은 시절, 누구보다 건강했던 김 씨는 스물 아홈살 때 작업 현장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막막했던 김씨에게 안마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는데요,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세상에 힘이 펄펄 끓어오를 때인데 눈이 안보이니까 정말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거야. 죽음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안마사가 된 후) 눈만 없을 뿐이지 내 손으로 얼마든지 일해서 세금도 내고 지금 현재까지는 너무 편안하게 잘 살아왔어요. 내 직업이 있으니까... ”
눈이 보일때 다녔던 익숙한 거리도,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는 너무 낯설어 외출조차 하기 힘들다는 김씨. 하루의 대부분을 좁은 집안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 다른 직업은 생각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모든 걸 옆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제 위치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행동하기가 참 거북하고 안마시술소에는 일정한 장소만 왔다 갔다 하고 일반 통로에 제한이 되어 있으니까 몇 번 왔다갔다 알려주면 자기 혼자 스스로 옮기는 수가 있거든.”
그의 아내 심화섭씨는 남편과 같은 중도실명자들에게 안마를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안마사가 큰돈 버는 직업은 아니어도, 남들에게 도움받지 않고 살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시각장애인 교육생들은 불안한 앞날에 의욕을 잃고 있다는데요
<인터뷰>심화섭 (시각장애인, 안마 강사): “새로운 자리에 가면 물 떠다줘야 치워도 줘야지. 나라도 안 써주지. 내 입장에서라도 그런데 어디서 발을 붙이라고 살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지.”
이번 판결에 절망한 것은 성인들만이 아닙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의 한 맹학교에선, 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하며 항의 시위 중이었는데요.
<인터뷰> 김유란 (맹학교 학생): “허무하죠. 갑자기 그런 판결을 내는 건 말이 안돼죠. 솔직히 3년 동안 고생해서 손이 부어가며 연습해서 어렵게 사회에서 일하려고 한 건데 그걸 가져가니까 뺏어간 거잖아요. 말이 안 돼죠.”
맹학교 고등부 교실의 시간표를 보면, 안마관련 수업이 전체 수업의 절반이나 됩니다. 맹학교 교육과정상 직업교육은 안마가 유일한데요. 진로 지도를 해야하는 교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맹학교 교감 :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찢어진 가슴입니다. 얘네들도 우리들이 기껏 가르쳐 봤자 제가 살 길이 없는 건데 우리가 가르친다한들 무슨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생후 6개월에 소아암으로 시력을 잃은 11살 동진이.시각장애인은 사회활동도, 대학을 가는 것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엄마는 앞으로 동진이에게 무엇이 되라고 할지 걱정입니다.
<인터뷰>강혜성 (맹아 학부모): “이 안마가 학교와도 연관이 깊어요. 이 맹아학교에 오시는 (특수)교사로 오신 교사들이 시각장애인이 꽤 있어요.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가질 수 있잖아요. 그 꿈도 이 안마가 없어지면 그 교사의 꿈도 없어지는 거에요.”
누구에게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판결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 선택의 자유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생존권을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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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따라잡기] 시각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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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6-06-02 08:16:43
- 수정2006-06-02 15:01:20

<앵커 멘트>
지금 시각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 달 25일에 내려진 헌법재판소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섭니다.
일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한강에 투신하기까지 했는데요..
비 장애인 입장에선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시각 장애인들로선 단순한 직업을 떠나 생사가 걸린 절실한 문제라고 합니다.
홍희정 기자.. 자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는 조항부터 좀 알아볼까요?
<리포트>
네, 이번에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은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안마사에 관한 규칙 3조 1항’입니다. 이 조항이 일반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게 위헌 판결 요지였는데요, 하지만, 3년 전에는 헌재가 똑같은 문제를 놓고 정 반대의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적다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이어 어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또 한강물로 몸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투신한 시각장애인은 모두 8명,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한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에 반발해 몸으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행히 즉시 구조돼 목숨은 건졌는데요, 취재진이 병원을 찾았을때, 이들중 한명은 가족과 통화중 이었습니다. 차마 아내에게는 뛰어내렸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녹취> "걱정 하지마 (알았어요. 언제 내려오는데?) 금방 내려갈 거야. 금방 내려가 걱정 하지마."
가족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다리 위에서 시위중이라고 둘러댄 김씨. 김씨는 앞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뛰어내릴 땐 두려움도 컸지만, 그보다,가족들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인터뷰>김용화 (시각장애인 안마사) : “이 세상의 어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너무 비참한 그런 감정을 가졌는데 아이한테 미안하다는 표현보다 그 이상의 말이 있다면 수 백, 수 백 번을 미안하다는 말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거일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투신까지 했던 이유, 그만큼 절박한 심정때문이었다는데요,이들은 이번 판결로 안마사라는 생계수단을 잃을거라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저는 삶을 포기했어요. 삶이 의미가 없어요. 이 상태에서 살아봤자 정말 지하철에서 구걸이나 하고 노숙자로 둔갑해서 정말 10원짜리 100원짜리에 의지하면서 술독에 빠져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박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미 시각장애인인 그가 안마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려 부단히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뿐임을 경험했기 때문인데요.
<인터뷰>박현수(시각장애인, 안마사): “이 세계만큼은 발을 안들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이력서도 넣어보고 신문사에도 이력서를 내고 진짜 안 해 본 게 없었어요. 결국에 이것(안마사) 밖에 내가 먹고 살 길이 이거 밖에 없구나..라는 각오를 그때 했던 거예요. 불과 나이 스무살 때... ”
이들이 투신한 이후에도, 마포대교에는 시각장애인들의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요, 앞이 보이지 않다보니 서로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가며, 힘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녹취> "모여라! 모여라! 모여라!"
이들은, 이제 누가 자신들에게 안마를 받겠냐며, 취재진에게 절박한 심정을 털어놨는데요,
<인터뷰>시각장애인: “눈 멀쩡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들한테 안마를 다 받을텐데 우린 죽으라는 거와 다름없는 거잖아요. ”
<인터뷰>시각장애인: “앞이 보여야지 어디가서 빈병이라도 주워서 고물이라도 주워서 파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으니까 저희는 이게 마지막 최후의 생존권이에요.”
실제로, 헌재의 판결 이후, 벌써부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며칠전 동료 4명과 함께 해고 당했다는 한 여성 안마사를 만났는데요.
<인터뷰>박현애 (시각장애인, 안마사): “현재 판결이 목요일에 나고 토요일(5월 27일) 아침에... 앞으로 이곳에서 이렇게 되는 거면 다른 곳에도 가기 어렵다는 거니까요. 사형선고 받은 기분이에요. 지금 기분이...”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은 왜 이렇게 절실한 걸까요 대전에서 작은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김대한씨.
젊은 시절, 누구보다 건강했던 김 씨는 스물 아홈살 때 작업 현장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막막했던 김씨에게 안마사는 유일한 희망이었다는데요,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세상에 힘이 펄펄 끓어오를 때인데 눈이 안보이니까 정말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거야. 죽음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안마사가 된 후) 눈만 없을 뿐이지 내 손으로 얼마든지 일해서 세금도 내고 지금 현재까지는 너무 편안하게 잘 살아왔어요. 내 직업이 있으니까... ”
눈이 보일때 다녔던 익숙한 거리도,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는 너무 낯설어 외출조차 하기 힘들다는 김씨. 하루의 대부분을 좁은 집안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 다른 직업은 생각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인터뷰>김대한(시각장애인, 안마사): “모든 걸 옆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제 위치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행동하기가 참 거북하고 안마시술소에는 일정한 장소만 왔다 갔다 하고 일반 통로에 제한이 되어 있으니까 몇 번 왔다갔다 알려주면 자기 혼자 스스로 옮기는 수가 있거든.”
그의 아내 심화섭씨는 남편과 같은 중도실명자들에게 안마를 가르치는 강사입니다. 안마사가 큰돈 버는 직업은 아니어도, 남들에게 도움받지 않고 살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시각장애인 교육생들은 불안한 앞날에 의욕을 잃고 있다는데요
<인터뷰>심화섭 (시각장애인, 안마 강사): “새로운 자리에 가면 물 떠다줘야 치워도 줘야지. 나라도 안 써주지. 내 입장에서라도 그런데 어디서 발을 붙이라고 살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지.”
이번 판결에 절망한 것은 성인들만이 아닙니다. 취재진이 찾아간 서울의 한 맹학교에선, 학생들이 수업거부를 하며 항의 시위 중이었는데요.
<인터뷰> 김유란 (맹학교 학생): “허무하죠. 갑자기 그런 판결을 내는 건 말이 안돼죠. 솔직히 3년 동안 고생해서 손이 부어가며 연습해서 어렵게 사회에서 일하려고 한 건데 그걸 가져가니까 뺏어간 거잖아요. 말이 안 돼죠.”
맹학교 고등부 교실의 시간표를 보면, 안마관련 수업이 전체 수업의 절반이나 됩니다. 맹학교 교육과정상 직업교육은 안마가 유일한데요. 진로 지도를 해야하는 교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맹학교 교감 : “마음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찢어진 가슴입니다. 얘네들도 우리들이 기껏 가르쳐 봤자 제가 살 길이 없는 건데 우리가 가르친다한들 무슨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생후 6개월에 소아암으로 시력을 잃은 11살 동진이.시각장애인은 사회활동도, 대학을 가는 것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엄마는 앞으로 동진이에게 무엇이 되라고 할지 걱정입니다.
<인터뷰>강혜성 (맹아 학부모): “이 안마가 학교와도 연관이 깊어요. 이 맹아학교에 오시는 (특수)교사로 오신 교사들이 시각장애인이 꽤 있어요. 그래도 그런 꿈이라도 가질 수 있잖아요. 그 꿈도 이 안마가 없어지면 그 교사의 꿈도 없어지는 거에요.”
누구에게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판결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안마사 외에 다른 직업 선택의 자유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생존권을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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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정 기자 hj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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