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아내의 살인은?

입력 2006.09.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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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 여성의 3분의 1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가정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라 합니다.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가정 폭력이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아 때때로 가정 폭력 피해자인 아내가 가해자인 남편을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편을 숨지게 한 매맞는 아내. 피해자일까요? 가해자일까요?

최근 일어난 남편 살인 사건을 계기로 매 맞는 아내의 살인죄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중순 경남 밀양시에서 30대 주부 조 모씨가 남편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나흘 뒤 집에서 숨졌습니다. 조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은 조씨의 진술을 기초로 조씨가 남편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인터뷰> 담당 경찰관 : "처음부터 죽일 의도로 찌른 것입니다. (그렇게 진술했어요?) 네, 자기 처음부터 죽이려고, 맞다 보니까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이려고 찔렀다고 진술을 했기 때문에..."

조씨는 사건 당시에도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으며 경찰은 현장에서 조씨의 머리카락을 한움쿰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담당 경찰관 : "어느 정도가 많은 지는 저희들이 판단하기가 그렇지만은 저희들이 현장 갔을 때 좀 맞기는 맞는 것 같아요. 머리카락이 좀 빠져 있었고 (얼마만큼요?) 저희들이 보니까 한 주먹은 안되지만은 좀 쉽게 말하면 좀 많이 빠진 상태였어요."

유치장에 있는 조씨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아직 남편을 숨지게 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조씨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한참 만에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을 꺼냅니다.

<인터뷰> 조 모씨 :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싶은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아이 아빠에게 미안하고 시어머니가 계신데 시어머니께도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아이들 많이 보고 싶으시죠?) 우리 작은 게 보고 싶어요. 작은 건 6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 얘기가 나온 뒤에야 남편이 술만 마시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가슴 속 응어리를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조 모씨 : "애 앞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술 먹으면 못 말려요. 술만 먹으면 막 폭력. 머리카락부터 얼굴부터 전부 다 멍드는 것이고 무서워요. 지금도 잠을 못 잡니다."

11년 전 결혼 초에 시작된 손찌검이 세 째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는 게 조씨의 이야깁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늘 무섭고 불안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조 모씨 : "마음이 불안하고 술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워서, 무서워서 아이 아빠한테 말을 못합니다."

졸지에 아빠를 잃고 엄마와는 떨어지게 된 조씨 아이들은 한 보육원에 맡겨져 있습니다.

사건을 목격한 충격으로 정신적 타격이 심각한 상태에서 그림 그리기를 통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 딸이 그린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은 여자의 얼굴을 뭉개버렸습니다.

<인터뷰> 정영숙 (창원 “여성의 집” 사회복지사) : "어머니인지 그건 확실히 모르는데 좌우간 여자를 그리라고 그랬는데 여자를 그리고 얼굴을 이렇게 다 뭉개 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 조금 (여자에 대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고 큰 애는 눈을 전부 다 이상하게 안했습니까! 그런 건 보기 싫다는 그런 표시. (뭔지 모르지만 보기 싫은 게 있다는 거죠?) 예. 굉장히 불안한 상태에요."

조씨 가족이 살던 집을 찾아갔습니다. 월세로 세들어 살던 집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쓰레기통에서는 아직도 소주병과 맥주병이 남아있습니다. 이웃 주민을 만나 조씨 부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인터뷰> 임채석 (이웃 주민) : "여러 번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계속 그랬습니다. 구타하고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고 애들 때리고. 칼 가지고 찔러 죽인다하는 소리를 한잔 먹으면, 정신이 돌아가 버리면 그런 얘기하고 그럽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 : "아이고 이 동네 사람 다 압니다. 저기 나와서도 매일 아무 사람 잡고 싸우는 데 뭐. (싸우고 나서 또 집에 가서?) 집에 가 저녁마다 저녁만 되면 싸우는 거에요."

조씨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사실은 가정폭력상담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담소측은 지난해 조씨가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상담소를 찾아왔다며 당시 찍은 사진 3장을 보여줬습니다.

상담소는 또 조씨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 정신을 잃어 병원 응급실에 3번이나 실려갔고 조씨 자신이나 이웃 주민이 신고해 경찰이 5번 출동했다는 자료도 내놓았습니다. 조씨가 심각한 가정폭력에 고통 받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장기간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지만 조씨는 남편의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인터뷰> 윤계숙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 "지속적으로 가정 폭력 피해를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무기력감과 우울증, 이런 부분들이 결국은 자포자기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고 그런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죠. 그분도 그런 경우에 속했어요, 내가 이 남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체념 이런 것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고요."

무기력과 자포자기,자존심 상실, 그리고 우울증은 매 맞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은 매 맞는 아내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은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하나로, 죽음을 느낄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폭력 등 외상을 경험하거나 자존심이 극도로 손상 받을 때 나타납니다.

<인터뷰> 조현순 (창원 “여성의 집” 관장) : "남자는 대개 때려놓고 나면 99.9% 성폭력을 해요. 그럴 때 죽어버리고 싶다든지, 죽이고 싶다든지 하는 증오감이라든지 세상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싶다는 이런 정신적 극한 상황이 사실은 옵답니다. 단칸방에 그런 상황이 일어날 때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할 때는 이거는 분노조차도 없어지는 상태, 그냥 지렁이가 된 것 같은 느낌, 인간이기를 거의 포기한 상황, 그런 상황까지 온다는 거죠."

이런 상황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쌓이고 쌓인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매맞는 아내의 이성적 판단을 멈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매맞는 아내의 남편 살인은 살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병리적인 결과라는 게 의학계의 견해입니다.

<인터뷰> 남정현 (한양대 의대 정신과 교수) : "매 맞는 아내가 살인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기가 폭력을 당했을 때 그 순간적으로 인지 기능이라든지 판단 능력에 정지가 옵니다. 일종의 해리 현상이 와서 현실과 괴리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이 보이기를 괴물로 보인다든지 아니면 나를 잡아먹는 어떤 무서운 존재로 느끼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 탈출을 하겠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고 자기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 기억은 하지만 희미하게 기억을 해요."

조씨 변호인도 사건 당시 조씨가 남편의 폭력에 직면해 있었고 장기간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명숙 (변호사) : "이분은 정신감정 받으면 결코 온전한 정상, 이렇게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소위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의 전형적으로 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호인의 이런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고등법원에서 매맞는 아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했을 뿐 여전히 매맞는 아내의 남편 살인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조국 (서울대 법대 부교수) : 현재 우리나라 형법학계 이론이나 대법원이 판례의 경우는 가정폭력 희생자가 가정 폭력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 어던 위험들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 남편이 때리고 있는 순간에 반격을 했다 하더라도 현재 이론 같은 경우는 굳이 남편을 죽였어야 하느냐,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느냐라고 해서 그 여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매 맞는 여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편을 숨지게 한 점이 인정되면 정당방위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 법원도 매맞는 여성의 남편 살인을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요구입니다.

<인터뷰> 이호림 (서울 “여성의 전화” 인권운동인권센터) : "가정 폭력의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였는 여성들 같은 경우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충분한 위협을 느끼고 심지어는 죽음의 공포까지 항상 지속적으로 느껴지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것들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계 일부에서도 가정 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법원의 판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국 (서울대 법대 부교수) :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가해자를 죽인 경우는 가정폭력의 먼저 희생자가 되고 그 결과 나중에 가정 폭력의 가해자를 죽인 경우이기 때문에 통상 얘기하는 정당방위 사항과 다름으로 따라서 그에 맞는 룰을 만들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저는 남편을 살해한 주부입니다. 남편을 만나 아이 셋을 낳고 행복을 꿈꾸며 살아왔지만 남편의 잦은 폭력으로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밥보다 술을 좋아한 남편은 1년 365일을 거의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신 날은 저는 거의 초죽음이 됐습니다. 혹시나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불안에 떨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어떠한 말을 한들 저의 죄가 씻어지진 않겠지만 밖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도 찢어지듯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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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 맞는 아내의 살인은?
    • 입력 2006-09-25 10:12:28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우리나라 여성의 3분의 1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가정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라 합니다.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가정 폭력이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아 때때로 가정 폭력 피해자인 아내가 가해자인 남편을 숨지게 하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편을 숨지게 한 매맞는 아내. 피해자일까요? 가해자일까요? 최근 일어난 남편 살인 사건을 계기로 매 맞는 아내의 살인죄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중순 경남 밀양시에서 30대 주부 조 모씨가 남편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나흘 뒤 집에서 숨졌습니다. 조씨는 경찰에 체포된 뒤 살인죄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은 조씨의 진술을 기초로 조씨가 남편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인터뷰> 담당 경찰관 : "처음부터 죽일 의도로 찌른 것입니다. (그렇게 진술했어요?) 네, 자기 처음부터 죽이려고, 맞다 보니까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이려고 찔렀다고 진술을 했기 때문에..." 조씨는 사건 당시에도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으며 경찰은 현장에서 조씨의 머리카락을 한움쿰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담당 경찰관 : "어느 정도가 많은 지는 저희들이 판단하기가 그렇지만은 저희들이 현장 갔을 때 좀 맞기는 맞는 것 같아요. 머리카락이 좀 빠져 있었고 (얼마만큼요?) 저희들이 보니까 한 주먹은 안되지만은 좀 쉽게 말하면 좀 많이 빠진 상태였어요." 유치장에 있는 조씨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아직 남편을 숨지게 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조씨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한참 만에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말을 꺼냅니다. <인터뷰> 조 모씨 :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싶은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아이 아빠에게 미안하고 시어머니가 계신데 시어머니께도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아이들 많이 보고 싶으시죠?) 우리 작은 게 보고 싶어요. 작은 건 6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 얘기가 나온 뒤에야 남편이 술만 마시면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가슴 속 응어리를 털어놓습니다. <인터뷰> 조 모씨 : "애 앞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술 먹으면 못 말려요. 술만 먹으면 막 폭력. 머리카락부터 얼굴부터 전부 다 멍드는 것이고 무서워요. 지금도 잠을 못 잡니다." 11년 전 결혼 초에 시작된 손찌검이 세 째 아이를 낳은 뒤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는 게 조씨의 이야깁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늘 무섭고 불안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조 모씨 : "마음이 불안하고 술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무서워서, 무서워서 아이 아빠한테 말을 못합니다." 졸지에 아빠를 잃고 엄마와는 떨어지게 된 조씨 아이들은 한 보육원에 맡겨져 있습니다. 사건을 목격한 충격으로 정신적 타격이 심각한 상태에서 그림 그리기를 통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 딸이 그린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은 여자의 얼굴을 뭉개버렸습니다. <인터뷰> 정영숙 (창원 “여성의 집” 사회복지사) : "어머니인지 그건 확실히 모르는데 좌우간 여자를 그리라고 그랬는데 여자를 그리고 얼굴을 이렇게 다 뭉개 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 조금 (여자에 대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고 큰 애는 눈을 전부 다 이상하게 안했습니까! 그런 건 보기 싫다는 그런 표시. (뭔지 모르지만 보기 싫은 게 있다는 거죠?) 예. 굉장히 불안한 상태에요." 조씨 가족이 살던 집을 찾아갔습니다. 월세로 세들어 살던 집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쓰레기통에서는 아직도 소주병과 맥주병이 남아있습니다. 이웃 주민을 만나 조씨 부부에 대해 물었습니다. <인터뷰> 임채석 (이웃 주민) : "여러 번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계속 그랬습니다. 구타하고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고 애들 때리고. 칼 가지고 찔러 죽인다하는 소리를 한잔 먹으면, 정신이 돌아가 버리면 그런 얘기하고 그럽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 : "아이고 이 동네 사람 다 압니다. 저기 나와서도 매일 아무 사람 잡고 싸우는 데 뭐. (싸우고 나서 또 집에 가서?) 집에 가 저녁마다 저녁만 되면 싸우는 거에요." 조씨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사실은 가정폭력상담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담소측은 지난해 조씨가 남편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상담소를 찾아왔다며 당시 찍은 사진 3장을 보여줬습니다. 상담소는 또 조씨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 정신을 잃어 병원 응급실에 3번이나 실려갔고 조씨 자신이나 이웃 주민이 신고해 경찰이 5번 출동했다는 자료도 내놓았습니다. 조씨가 심각한 가정폭력에 고통 받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장기간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지만 조씨는 남편의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인터뷰> 윤계숙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 "지속적으로 가정 폭력 피해를 당하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무기력감과 우울증, 이런 부분들이 결국은 자포자기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고 그런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죠. 그분도 그런 경우에 속했어요, 내가 이 남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체념 이런 것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고요." 무기력과 자포자기,자존심 상실, 그리고 우울증은 매 맞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증상은 매 맞는 아내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은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하나로, 죽음을 느낄 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폭력 등 외상을 경험하거나 자존심이 극도로 손상 받을 때 나타납니다. <인터뷰> 조현순 (창원 “여성의 집” 관장) : "남자는 대개 때려놓고 나면 99.9% 성폭력을 해요. 그럴 때 죽어버리고 싶다든지, 죽이고 싶다든지 하는 증오감이라든지 세상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싶다는 이런 정신적 극한 상황이 사실은 옵답니다. 단칸방에 그런 상황이 일어날 때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할 때는 이거는 분노조차도 없어지는 상태, 그냥 지렁이가 된 것 같은 느낌, 인간이기를 거의 포기한 상황, 그런 상황까지 온다는 거죠." 이런 상황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과정에서 그 동안 쌓이고 쌓인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매맞는 아내의 이성적 판단을 멈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매맞는 아내의 남편 살인은 살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병리적인 결과라는 게 의학계의 견해입니다. <인터뷰> 남정현 (한양대 의대 정신과 교수) : "매 맞는 아내가 살인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기가 폭력을 당했을 때 그 순간적으로 인지 기능이라든지 판단 능력에 정지가 옵니다. 일종의 해리 현상이 와서 현실과 괴리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이 보이기를 괴물로 보인다든지 아니면 나를 잡아먹는 어떤 무서운 존재로 느끼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 탈출을 하겠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고 자기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 기억은 하지만 희미하게 기억을 해요." 조씨 변호인도 사건 당시 조씨가 남편의 폭력에 직면해 있었고 장기간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던 만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손명숙 (변호사) : "이분은 정신감정 받으면 결코 온전한 정상, 이렇게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소위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의 전형적으로 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호인의 이런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고등법원에서 매맞는 아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했을 뿐 여전히 매맞는 아내의 남편 살인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조국 (서울대 법대 부교수) : 현재 우리나라 형법학계 이론이나 대법원이 판례의 경우는 가정폭력 희생자가 가정 폭력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 어던 위험들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실제 남편이 때리고 있는 순간에 반격을 했다 하더라도 현재 이론 같은 경우는 굳이 남편을 죽였어야 하느냐,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느냐라고 해서 그 여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매 맞는 여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편을 숨지게 한 점이 인정되면 정당방위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입니다. 우리 법원도 매맞는 여성의 남편 살인을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여성계의 요구입니다. <인터뷰> 이호림 (서울 “여성의 전화” 인권운동인권센터) : "가정 폭력의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였는 여성들 같은 경우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충분한 위협을 느끼고 심지어는 죽음의 공포까지 항상 지속적으로 느껴지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것들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계 일부에서도 가정 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법원의 판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국 (서울대 법대 부교수) :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가해자를 죽인 경우는 가정폭력의 먼저 희생자가 되고 그 결과 나중에 가정 폭력의 가해자를 죽인 경우이기 때문에 통상 얘기하는 정당방위 사항과 다름으로 따라서 그에 맞는 룰을 만들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저는 남편을 살해한 주부입니다. 남편을 만나 아이 셋을 낳고 행복을 꿈꾸며 살아왔지만 남편의 잦은 폭력으로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밥보다 술을 좋아한 남편은 1년 365일을 거의 빼놓지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마신 날은 저는 거의 초죽음이 됐습니다. 혹시나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불안에 떨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어떠한 말을 한들 저의 죄가 씻어지진 않겠지만 밖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나도 찢어지듯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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