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장수 마을 ‘훈자의 비밀’

입력 2006.10.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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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히말라야 산자락 한구석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마을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훈자가 바로 그곳인데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먹을거리도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훈자 사람들이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용태영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가파른 낭떠러지를 타고 굽이굽이 도로가 이어집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동서양을 이어주던 비단길, 이른바 '카라코람' 하이웨이입니다.

요즘도 추락 사고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길입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20시간가량 올라가면 갑자기 푸른 숲과 함께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7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 아래 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의 해발 고도가 2천5백 미터, 황량한 주변 산들의 경관과는 달리 키가 큰 포플러 나무로 덮였습니다.

한 때 비단길을 지나던 상인들이 쉬어갔던 곳, 경관도 빼어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한쪽에서 두 할아버지가 일하고 있습니다. 삽으로 흙을 퍼 담는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 살, 여기서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합니다.

<녹취> "(할아버지,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야. 난 여전히 힘이 세지. 건강하고. 이제 70살이야."

장작을 패고 있는 이 할머니는 86살입니다. 지금도 농사일을 계속할 정도로건강합니다.

<인터뷰> 비비라스(86살) : "젊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 이제는 늙어서 힘들어요."

옷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아흔 살입니다. 32년째 변함없이 옷 가게를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랍 칸(90살) : "요즘은 시력이 나빠지고 있어. 기술 좋은 한국에서 안경을 하나 보내 주면 고맙겠네."

허름한 집에 이 마을의 최고령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제 107살이지."

그동안 낳은 자녀가 10명, 막내는 쉰한 살 때 낳았습니다. 여전히 시력이나 청력도 좋고 정신도 맑습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고 다만, 남들처럼 일하고 식사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요즘도 혼자 일어나서 집 주변을 산책하곤 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손거울을 선물로 드리자 즉석에서 농담도 합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뭔가 다른 것, 옷 같은 걸 줘야지. 내가 이 나이에 거울로 뭘 볼 수 있지?"

훈자에는 이처럼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아서 그 비결을 놓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마을 뒤쪽 계곡으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민들은 이 계곡을 마을까지 연결하는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구석구석 집이 있는 곳 어디나 거미줄처럼 물길이 연결돼 있습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흐르는 물을 그대로 떠 마십니다.

<인터뷰>아미룰라(훈자 주민): "물맛이 약간 쓰지만 마시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들죠. 외국 학자들도 이 물이 매우 좋다고 했지요."

컵 바닥에 금세 검은색 가루가 고일 정도로 돌가루가 많습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차고 또 광물질이 녹아서 잿빛을 띄고 있습니다.

이 물을 여기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마셔왔습니다. 이 물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물질이 섞인 물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훈자에는 유독 살구나무가 많습니다. 살구 열매로 주스를 만들거나 말려서 먹고 살구씨는 짜서 기름을 만듭니다.

음식을 요리할 때 살구씨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훈자의 특징입니다. 비타민이 풍부한 살구가 장수의 비결 가운데 하나라는 설도 있습니다. 107살 할머니도 평소 살구 주스를 즐겼다고 합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살구 주스를 즐겨 마셨죠. 살구는 기르기도 쉽고 구하기도 쉽죠. 살구 주스를 마시면 힘이 솟는 것을 느껴요."

야채를 즐기고 고기를 드물게 먹는 식생활이 장수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없는 것도 훈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폐쇄된 지역 환경 때문에 부족 간의 상호 결혼으로 구성원 모두 친인척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후르샤(훈자 문화보존위원): "모두가 집이 있어서 임대료 걱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하니까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고 낮은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는 평화로운 삶이 장수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에스비데린(67살): "우린 자유롭습니다. 마음이 편하죠. 누굴 만날지 친구 걱정도 없고 긴장할 게 없어요."

서로 친하다 보니 범죄도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최근까지도 훈자에는 경찰이나 재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수마을의 명성이 이제는 조금씩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카라코람 하이웨이 포장공사가 끝나면서 외부인과 물자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설탕과 식용유, 탄산음료 그리고 인스턴트식품이 들어왔습니다.

관광객이 묵을 호텔과 기념품 가게, 식당도 속속 들어섰습니다. 관광 수입으로 부자도 생겨났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졌습니다.

<인터뷰> 후르샤(문화 보존위원) : "이 지역은 계급이 없는 사회였죠. 그러나 지금은 계급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어떤 계급이죠?) "부자와 빈자죠."

일부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갔고 남겨진 노인들은 소외되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인터뷰> 바즈 칸(훈자학교 교장): "문제는 욕심입니다. 매일 커가고 있죠. 나와 같았던 이웃은 부자가 됐고 이젠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을 걱정하게 됐죠. 이 점이 장수에도 영향을 준 겁니다."

인구 6천 명의 이 마을에 한 때는 100세 이상 노인이 1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두 명뿐이라고 합니다.

해질 녘이면 훈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바깥 풍경을 지켜보곤 합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물, 그 속에서 욕심 없는 조용한 생활이 훈자의 행복이었습니다.

<인터뷰> 누르핫(97살): "우리는 부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우리가 가진 것은 적지만 행복합니다."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향이 그리워 다시 산을 넘어 훈자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훈자의 거리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도 해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설산에 둘러싸여서 생활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것이 바로 훈자의 장수 비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밀려드는 외부 문명의 물결 속에서 얼마만큼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고원의 낙원은 도전에 놓였습니다.

이번 28일이 교정의 날입니다만 앞서 본 핀란드 개방교도소, 부러운 것은 시설만이 아닐 것입니다.

재소자들의 새 출발을 위한 과감한 교정 정책은 우리 교정당국도 참고할 만 해 보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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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키스탄, 장수 마을 ‘훈자의 비밀’
    • 입력 2006-10-27 10:28:0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히말라야 산자락 한구석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마을이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훈자가 바로 그곳인데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먹을거리도 풍족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훈자 사람들이 장수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용태영 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가파른 낭떠러지를 타고 굽이굽이 도로가 이어집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동서양을 이어주던 비단길, 이른바 '카라코람' 하이웨이입니다. 요즘도 추락 사고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길입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20시간가량 올라가면 갑자기 푸른 숲과 함께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7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 아래 마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의 해발 고도가 2천5백 미터, 황량한 주변 산들의 경관과는 달리 키가 큰 포플러 나무로 덮였습니다. 한 때 비단길을 지나던 상인들이 쉬어갔던 곳, 경관도 빼어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여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을 한쪽에서 두 할아버지가 일하고 있습니다. 삽으로 흙을 퍼 담는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 살, 여기서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합니다. <녹취> "(할아버지,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야. 난 여전히 힘이 세지. 건강하고. 이제 70살이야." 장작을 패고 있는 이 할머니는 86살입니다. 지금도 농사일을 계속할 정도로건강합니다. <인터뷰> 비비라스(86살) : "젊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 이제는 늙어서 힘들어요." 옷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아흔 살입니다. 32년째 변함없이 옷 가게를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랍 칸(90살) : "요즘은 시력이 나빠지고 있어. 기술 좋은 한국에서 안경을 하나 보내 주면 고맙겠네." 허름한 집에 이 마을의 최고령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이제 107살이지." 그동안 낳은 자녀가 10명, 막내는 쉰한 살 때 낳았습니다. 여전히 시력이나 청력도 좋고 정신도 맑습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고 다만, 남들처럼 일하고 식사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요즘도 혼자 일어나서 집 주변을 산책하곤 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입니다. 손거울을 선물로 드리자 즉석에서 농담도 합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뭔가 다른 것, 옷 같은 걸 줘야지. 내가 이 나이에 거울로 뭘 볼 수 있지?" 훈자에는 이처럼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아서 그 비결을 놓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마을 뒤쪽 계곡으로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흘러내립니다. 주민들은 이 계곡을 마을까지 연결하는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구석구석 집이 있는 곳 어디나 거미줄처럼 물길이 연결돼 있습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흐르는 물을 그대로 떠 마십니다. <인터뷰>아미룰라(훈자 주민): "물맛이 약간 쓰지만 마시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들죠. 외국 학자들도 이 물이 매우 좋다고 했지요." 컵 바닥에 금세 검은색 가루가 고일 정도로 돌가루가 많습니다. 빙하가 녹은 물은 차고 또 광물질이 녹아서 잿빛을 띄고 있습니다. 이 물을 여기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마셔왔습니다. 이 물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물질이 섞인 물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습니다. 훈자에는 유독 살구나무가 많습니다. 살구 열매로 주스를 만들거나 말려서 먹고 살구씨는 짜서 기름을 만듭니다. 음식을 요리할 때 살구씨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훈자의 특징입니다. 비타민이 풍부한 살구가 장수의 비결 가운데 하나라는 설도 있습니다. 107살 할머니도 평소 살구 주스를 즐겼다고 합니다. <인터뷰> 비비 글로니(107살): "살구 주스를 즐겨 마셨죠. 살구는 기르기도 쉽고 구하기도 쉽죠. 살구 주스를 마시면 힘이 솟는 것을 느껴요." 야채를 즐기고 고기를 드물게 먹는 식생활이 장수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없는 것도 훈자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폐쇄된 지역 환경 때문에 부족 간의 상호 결혼으로 구성원 모두 친인척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후르샤(훈자 문화보존위원): "모두가 집이 있어서 임대료 걱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하니까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고 낮은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는 평화로운 삶이 장수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에스비데린(67살): "우린 자유롭습니다. 마음이 편하죠. 누굴 만날지 친구 걱정도 없고 긴장할 게 없어요." 서로 친하다 보니 범죄도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최근까지도 훈자에는 경찰이나 재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수마을의 명성이 이제는 조금씩 빛이 바래가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카라코람 하이웨이 포장공사가 끝나면서 외부인과 물자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설탕과 식용유, 탄산음료 그리고 인스턴트식품이 들어왔습니다. 관광객이 묵을 호텔과 기념품 가게, 식당도 속속 들어섰습니다. 관광 수입으로 부자도 생겨났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졌습니다. <인터뷰> 후르샤(문화 보존위원) : "이 지역은 계급이 없는 사회였죠. 그러나 지금은 계급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어떤 계급이죠?) "부자와 빈자죠." 일부 젊은이들은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갔고 남겨진 노인들은 소외되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인터뷰> 바즈 칸(훈자학교 교장): "문제는 욕심입니다. 매일 커가고 있죠. 나와 같았던 이웃은 부자가 됐고 이젠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을 걱정하게 됐죠. 이 점이 장수에도 영향을 준 겁니다." 인구 6천 명의 이 마을에 한 때는 100세 이상 노인이 1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두 명뿐이라고 합니다. 해질 녘이면 훈자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바깥 풍경을 지켜보곤 합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물, 그 속에서 욕심 없는 조용한 생활이 훈자의 행복이었습니다. <인터뷰> 누르핫(97살): "우리는 부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우리가 가진 것은 적지만 행복합니다."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고향이 그리워 다시 산을 넘어 훈자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훈자의 거리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도 해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설산에 둘러싸여서 생활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것이 바로 훈자의 장수 비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밀려드는 외부 문명의 물결 속에서 얼마만큼 그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인지, 고원의 낙원은 도전에 놓였습니다. 이번 28일이 교정의 날입니다만 앞서 본 핀란드 개방교도소, 부러운 것은 시설만이 아닐 것입니다. 재소자들의 새 출발을 위한 과감한 교정 정책은 우리 교정당국도 참고할 만 해 보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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