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유출, 제거되지 않는 기름폭탄

입력 2007.12.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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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7일 충남 태안 앞 바다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로 심각한 환경재앙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18년 전,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유조선 엑손 발데즈 호 침몰사고의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방제 작업을 더욱 서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저희는 엑손 발데즈 호 사고가 알래스카 생태계와 주민에게 미친 영향을 취재해 보내드린 바 있는데요. 대규모 원유유출 사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당시 알래스카 현장을 취재했던 조현진 순회특파원이 다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코발트 빛 바다와 울창한 침엽수로 덮인 섬들이 어우러진 청정지역. 바다에 떠 있는 부표가 이곳이 18년 전 대형 참사가 일어난 현장임을 알려줄 뿐, 하늘에서 내려다본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스 앞바다는 깨끗하고 평화롭기만 합니다.

1989년 3월 바로 이곳에 4만 톤의 검은 파도가 밀어닥쳤습니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원유의 5배에 이르는 양입니다.

수십만 마리의 새와 해달, 바다표범, 고래,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수 천 명의 인원이 3년 동안 기름 제거 작업에 매달렸고 2조 원의 비용이 투입됐습니다.

<인터뷰> 존 데븐즈(사고 당시 발데즈 시 시장)): “너무나 비극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장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바다동물과 수십만 마리의 새들도 잃었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4만 톤의 원유는 말끔히 제거된 것일까. 취재진은 프린스 윌리엄스 해협에 있는 한 무인도 해안을 찾았습니다.

사고 이후 수증기와 화학약품을 이용해 세 차례나 기름 제거 작업이 실시된 곳입니다.

그러나 해안 진흙에서는 아직도 석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속에서는 바닷물과 함께 기름기가 배어나옵니다.

땅을 파보면 기름이 흘러나와 물 위에 무지개 빛 막을 형성하는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낸시 버드(프린스윌리엄스 해양과학센터 원장): “이렇게 엄청난 양의 석유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습니다. 사고 당시 해안에는 무릎 높이까지 기름이 차 있었고 아직도 해안에는 기름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땅속에 스며들어 있거나 바다에 침전돼 있는 원유찌꺼기는 액체상태로 남아 서서히 그러나 수십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독성을 내뿜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원유찌꺼기들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런 원유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정밀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1800킬로미터에 이르는 프린스 윌리엄스 해안의 절반 정도에 아직 유출된 원유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패트릭 키어니(코르도바 주민): “3년 전 미국 연방정부 산하 환경당국에서 이 지역에 8천개의 구멍을 파서 조사했는데 절반 이상에서 기름이 발견됐습니다. 프린스 윌리엄스 해역 전역에서죠.”

빙하와 만년설, 그리고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프린스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항구, 코르도바입니다.

원유유출사고 이전 이곳은 청어와 연어, 넙치 어업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청어는 연간 어획량이 12만 톤에 이를 정도로 이곳의 대표 어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청어의 개체수가 1/10 이하로 줄어든 뒤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표범과 고래 등 청어를 먹이로 삼는 다른 동물들의 수도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딕 쏜(프린스윌리엄스 해양과학센터 수석연구원): “청어는 프린스 윌리엄스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이 지역에 사는 40여종의 생물들이 청어를 먹이로 삼고 있습니다. 청어의 90%가 사라지면서 이곳의 자연 생태계도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 수입 5천만 달러에 이르던 청어 조업이 18년째 중단되면서 코르도바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평생 이곳에서 청어를 잡으며 살아온 알래스카 원주민 랭카드 씨. 원유유출 사고가 나기 전 10만 달러가 넘던 연간 수입이 지금은 1/4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듄 랭카드(코르도바 어부): “코르도바는 미국 내에서 8번째로 해산물을 많이 잡던 항구였는데, 원유유출 사고 이후 100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모든 경제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른 어민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힘차게 돌아가던 청어 가공 공장은 이젠 쓸모없어진 청어 그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면서 마을의 흉물이 돼 버렸습니다.

그동안 청어를 잡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코르도바 어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도대체 언제쯤 청어 조업이 재개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청어가 잡힐 것이란 희망마저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로져 버귀스트(코르도바 어부): “청어 그물입니다. 동생과 함께 원유유출 사고가 나기 전에 만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 놔두고 있습니다. 사고 이후 줄어든 청어가 다시 늘지 않고 있어서 잡지 못합니다.”

지역 주민과 생태계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지만 사고 책임과 배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엑손사와 주민들 사이에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법정에 제출한 서류만 해도 큰 방을 가득 채울 정도입니다.

사고 직후 엑손사가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육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은 아직도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데이빗 외스팅(변호사): “엑손사는 원유유출사고가 미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 배상하지 않고 있고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서 유조선을 몰다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도 배상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은 발데즈 호의 원유유출사건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최악의 인재라고 말합니다.

광범위한 지역의 생태계와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고 이로 인한 후유증이 언제쯤 사라질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제니퍼 기본스(알래스카 환경운동가): “엑손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기업도 이런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누가 원유유출사고를 일으키든 원유는 독성이 있고 제거되지 않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은 이런 저런 변명을 하겠지만 이것이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 이후 미국, 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유조선의 이중 선체를 의무화하는 등 각종 사고 방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단일 선체 유조선의 입항을 허용하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 항구에 드나드는 유조선은 10척 가운데 7척이 단일 선체입니다.

그만큼 사고에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재앙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발생한 대규모 원유유출사고만 8건, 낡은 설비와 운항 부주의, 날씨 등 그 원인도 다양합니다.

재발 방지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엑손 발데즈호 사건을 비롯한 과거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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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유유출, 제거되지 않는 기름폭탄
    • 입력 2007-12-16 10:53:5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 7일 충남 태안 앞 바다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 사고로 심각한 환경재앙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18년 전,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유조선 엑손 발데즈 호 침몰사고의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방제 작업을 더욱 서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저희는 엑손 발데즈 호 사고가 알래스카 생태계와 주민에게 미친 영향을 취재해 보내드린 바 있는데요. 대규모 원유유출 사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당시 알래스카 현장을 취재했던 조현진 순회특파원이 다시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코발트 빛 바다와 울창한 침엽수로 덮인 섬들이 어우러진 청정지역. 바다에 떠 있는 부표가 이곳이 18년 전 대형 참사가 일어난 현장임을 알려줄 뿐, 하늘에서 내려다본 알래스카의 프린스 윌리엄스 앞바다는 깨끗하고 평화롭기만 합니다. 1989년 3월 바로 이곳에 4만 톤의 검은 파도가 밀어닥쳤습니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원유의 5배에 이르는 양입니다. 수십만 마리의 새와 해달, 바다표범, 고래,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수 천 명의 인원이 3년 동안 기름 제거 작업에 매달렸고 2조 원의 비용이 투입됐습니다. <인터뷰> 존 데븐즈(사고 당시 발데즈 시 시장)): “너무나 비극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장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바다동물과 수십만 마리의 새들도 잃었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4만 톤의 원유는 말끔히 제거된 것일까. 취재진은 프린스 윌리엄스 해협에 있는 한 무인도 해안을 찾았습니다. 사고 이후 수증기와 화학약품을 이용해 세 차례나 기름 제거 작업이 실시된 곳입니다. 그러나 해안 진흙에서는 아직도 석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속에서는 바닷물과 함께 기름기가 배어나옵니다. 땅을 파보면 기름이 흘러나와 물 위에 무지개 빛 막을 형성하는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낸시 버드(프린스윌리엄스 해양과학센터 원장): “이렇게 엄청난 양의 석유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습니다. 사고 당시 해안에는 무릎 높이까지 기름이 차 있었고 아직도 해안에는 기름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땅속에 스며들어 있거나 바다에 침전돼 있는 원유찌꺼기는 액체상태로 남아 서서히 그러나 수십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독성을 내뿜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원유찌꺼기들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이런 원유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정밀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1800킬로미터에 이르는 프린스 윌리엄스 해안의 절반 정도에 아직 유출된 원유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 <인터뷰> 패트릭 키어니(코르도바 주민): “3년 전 미국 연방정부 산하 환경당국에서 이 지역에 8천개의 구멍을 파서 조사했는데 절반 이상에서 기름이 발견됐습니다. 프린스 윌리엄스 해역 전역에서죠.” 빙하와 만년설, 그리고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프린스 윌리엄스의 대표적인 항구, 코르도바입니다. 원유유출사고 이전 이곳은 청어와 연어, 넙치 어업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청어는 연간 어획량이 12만 톤에 이를 정도로 이곳의 대표 어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청어의 개체수가 1/10 이하로 줄어든 뒤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표범과 고래 등 청어를 먹이로 삼는 다른 동물들의 수도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딕 쏜(프린스윌리엄스 해양과학센터 수석연구원): “청어는 프린스 윌리엄스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이 지역에 사는 40여종의 생물들이 청어를 먹이로 삼고 있습니다. 청어의 90%가 사라지면서 이곳의 자연 생태계도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연 수입 5천만 달러에 이르던 청어 조업이 18년째 중단되면서 코르도바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평생 이곳에서 청어를 잡으며 살아온 알래스카 원주민 랭카드 씨. 원유유출 사고가 나기 전 10만 달러가 넘던 연간 수입이 지금은 1/4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듄 랭카드(코르도바 어부): “코르도바는 미국 내에서 8번째로 해산물을 많이 잡던 항구였는데, 원유유출 사고 이후 100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모든 경제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다른 어민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힘차게 돌아가던 청어 가공 공장은 이젠 쓸모없어진 청어 그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면서 마을의 흉물이 돼 버렸습니다. 그동안 청어를 잡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코르도바 어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도대체 언제쯤 청어 조업이 재개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청어가 잡힐 것이란 희망마저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로져 버귀스트(코르도바 어부): “청어 그물입니다. 동생과 함께 원유유출 사고가 나기 전에 만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 놔두고 있습니다. 사고 이후 줄어든 청어가 다시 늘지 않고 있어서 잡지 못합니다.” 지역 주민과 생태계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지만 사고 책임과 배상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엑손사와 주민들 사이에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법정에 제출한 서류만 해도 큰 방을 가득 채울 정도입니다. 사고 직후 엑손사가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육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은 아직도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데이빗 외스팅(변호사): “엑손사는 원유유출사고가 미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 배상하지 않고 있고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술에 취해서 유조선을 몰다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도 배상금을 전혀 지불하지 않고 있습니다.” 환경운동가들은 발데즈 호의 원유유출사건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 최악의 인재라고 말합니다. 광범위한 지역의 생태계와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고 이로 인한 후유증이 언제쯤 사라질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제니퍼 기본스(알래스카 환경운동가): “엑손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기업도 이런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누가 원유유출사고를 일으키든 원유는 독성이 있고 제거되지 않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은 이런 저런 변명을 하겠지만 이것이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 이후 미국, EU를 비롯한 선진국들은 유조선의 이중 선체를 의무화하는 등 각종 사고 방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단일 선체 유조선의 입항을 허용하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 항구에 드나드는 유조선은 10척 가운데 7척이 단일 선체입니다. 그만큼 사고에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재앙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발생한 대규모 원유유출사고만 8건, 낡은 설비와 운항 부주의, 날씨 등 그 원인도 다양합니다. 재발 방지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엑손 발데즈호 사건을 비롯한 과거 사례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교훈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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