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신음하는 이탈리아 나폴리
입력 2008.02.17 (11:17)
수정 2008.02.1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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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나폴 리가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쓰레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때문에 관광객이 급감하고 특산품 판매도 줄어들면서 지역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데요.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당국과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시민들의 냉소주의가 뒤엉킨 결과여서 나폴리의 쓰레기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 나폴리...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폼페이 유적을 낳은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산타루치아와 소렌토항이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펼쳐놓습니다.
눈부신 햇살과 짚푸른 바다, 그리고 25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유산...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죽기 전에 나폴리를 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힐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쓰레기 방화와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중앙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해 쓰레기 청소에 나서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한때 말끔히 치워졌던 거리에는 다시 이렇게 쓰레기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는 이런 쓰레기 더미가 10여 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치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택가 골목도, 고층빌딩이 밀집한 큰 거리도 다시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버려진 음식물은 길거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고 시민들은 코를 찌르는 악취를 피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합니다.
<인터뷰>베네데토(시민) : "많은 것을 해치고 있죠. 공중위생도 나빠지고, 관광객도 줄고... 나폴리 뿐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있어요."
이제 막 출근이 시작된 평일 오전 이른 시각, 나폴리 시청 광장에선 벌써 지역주민들의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이지, 쓰레기가 아니다' 주민들은 격하게 당국을 성토합니다.
<인터뷰>에르미니아 암브로지노(주민) : "경찰센터 개발 예정지에 쓰레기를 매립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기다린 건 경찰센터지, 쓰레기가 아니었거든요."
<인터뷰>젠나로 데치고(주민) : "공무원들이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해요. 이 재난을 복구하는 비용을 그들이 내야 합니다. 공무원들은 정말 범죄자들입니다."
현재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는 추정치만 무려 10만 톤, 소각하지 않고 계속 매립하거나 쌓아두다 보니 이제 인근지역의 쓰레기 하치장까지 모두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살바토레 자르링고(나폴리 구의원) : "나흘마다 7천 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올텐데,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니까 여기저기 쓰레기만 쌓이는 겁니다.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에요."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있는 나폴리 당국의 안이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환경단체 WWF 캄파니아 지국 회장) : "새로운 매립지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분리되지 않은 젖은 물질을 소각할 기계도 없다는 거죠. 아직 합법적인 쓰레기 처리기계를 만들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중앙정부가 나폴리에 지원한 쓰레기 처리예산 20억 유로의 행방입니다.
소각장을 15개나 지을 수 있는 돈이 지원됐는데도 지난 14년간 쓰레기 소각장은 단 하나도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마피아 세력과 결탁돼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 : (쓰레기 사태가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나요?)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렇다."
이 지역 마피아인 '카모라'는 쓰레기 불법처리 사업으로 매년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카모라 세력이 자신의 돈줄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 정비사업을 막아왔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카모라의 심각성은 그들이 나폴리의 지하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카모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람은 무려 30만 명,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인터뷰>파비오 줄리아니(반마피아 단체) : "나폴리 젊은이의 실직률이 50%를 넘는데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카모라의 세계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치안불안은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와 함께 나폴리를 상징하는 말이 돼 버렸습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나폴리의 대표적 유적지 누오보 성, 하지만 최근들어선 하루종일 텅빈 시내관광 버스만 주차돼 있기 일쑵니다.
이제 나폴리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습니다.
<인터뷰>택시기사 : "관광객이 적어도 70%는 줄었어요.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나폴리는 치안이 불안한데 쓰레기까지 한몫을 하고 있는 거죠."
나폴리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과 서비스업은 이미 이처럼 심각한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루이기 이조(호텔 직원) : "큰 호텔들은 직원을 많이 퇴출시키고 문을 닫은 곳도 있습니다. 타격이 심각합니다."
공공시설 확충과 서비스 개선 등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시 당국의 정책도 역부족입니다.
<인터뷰>발레리아 발렌테(나폴리 관광국장) : "지금은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것보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레몬주와 모짜렐라 등 나폴리 특산품의 수출 계약도 무려 35% 정도가 취소됐습니다.
인근의 농밀들은 자신들의 농산품이 안전하다는 걸 알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노 비나치아(소렌토 레몬농민) : "보세요. 얼마나 즙이 많은지 짜기만 하면 계속 즙이 쏟아져 나옵니다. 소렌토는 나폴리와 분리돼 있어서 오염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농민단체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당국에 사태해결을 호소하고 있지만 농산품 오염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비또 아멘돌라나(농협 대표) : "모든 농촌이 오염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상품도 모두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이탈리아 정부는 전 경찰청장을 쓰레기 특사로 임명하고 군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해 사태해결에 나선 상탭니다.
그러나 나폴리의 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14년, 무능하고 부패한 행정 당국과 막후의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세력, 폭력과 불법에 둔감해진 시민사회의 냉소주의가 뒤엉켜 근본적인 사태해결을 막아온 셈입니다.
세계 3대 미항의 명성을 되찾기까지 나폴리가 풀어가야할 숙제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나폴 리가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쓰레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때문에 관광객이 급감하고 특산품 판매도 줄어들면서 지역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데요.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당국과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시민들의 냉소주의가 뒤엉킨 결과여서 나폴리의 쓰레기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 나폴리...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폼페이 유적을 낳은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산타루치아와 소렌토항이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펼쳐놓습니다.
눈부신 햇살과 짚푸른 바다, 그리고 25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유산...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죽기 전에 나폴리를 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힐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쓰레기 방화와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중앙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해 쓰레기 청소에 나서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한때 말끔히 치워졌던 거리에는 다시 이렇게 쓰레기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는 이런 쓰레기 더미가 10여 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치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택가 골목도, 고층빌딩이 밀집한 큰 거리도 다시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버려진 음식물은 길거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고 시민들은 코를 찌르는 악취를 피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합니다.
<인터뷰>베네데토(시민) : "많은 것을 해치고 있죠. 공중위생도 나빠지고, 관광객도 줄고... 나폴리 뿐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있어요."
이제 막 출근이 시작된 평일 오전 이른 시각, 나폴리 시청 광장에선 벌써 지역주민들의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이지, 쓰레기가 아니다' 주민들은 격하게 당국을 성토합니다.
<인터뷰>에르미니아 암브로지노(주민) : "경찰센터 개발 예정지에 쓰레기를 매립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기다린 건 경찰센터지, 쓰레기가 아니었거든요."
<인터뷰>젠나로 데치고(주민) : "공무원들이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해요. 이 재난을 복구하는 비용을 그들이 내야 합니다. 공무원들은 정말 범죄자들입니다."
현재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는 추정치만 무려 10만 톤, 소각하지 않고 계속 매립하거나 쌓아두다 보니 이제 인근지역의 쓰레기 하치장까지 모두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살바토레 자르링고(나폴리 구의원) : "나흘마다 7천 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올텐데,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니까 여기저기 쓰레기만 쌓이는 겁니다.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에요."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있는 나폴리 당국의 안이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환경단체 WWF 캄파니아 지국 회장) : "새로운 매립지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분리되지 않은 젖은 물질을 소각할 기계도 없다는 거죠. 아직 합법적인 쓰레기 처리기계를 만들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중앙정부가 나폴리에 지원한 쓰레기 처리예산 20억 유로의 행방입니다.
소각장을 15개나 지을 수 있는 돈이 지원됐는데도 지난 14년간 쓰레기 소각장은 단 하나도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마피아 세력과 결탁돼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 : (쓰레기 사태가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나요?)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렇다."
이 지역 마피아인 '카모라'는 쓰레기 불법처리 사업으로 매년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카모라 세력이 자신의 돈줄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 정비사업을 막아왔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카모라의 심각성은 그들이 나폴리의 지하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카모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람은 무려 30만 명,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인터뷰>파비오 줄리아니(반마피아 단체) : "나폴리 젊은이의 실직률이 50%를 넘는데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카모라의 세계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치안불안은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와 함께 나폴리를 상징하는 말이 돼 버렸습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나폴리의 대표적 유적지 누오보 성, 하지만 최근들어선 하루종일 텅빈 시내관광 버스만 주차돼 있기 일쑵니다.
이제 나폴리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습니다.
<인터뷰>택시기사 : "관광객이 적어도 70%는 줄었어요.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나폴리는 치안이 불안한데 쓰레기까지 한몫을 하고 있는 거죠."
나폴리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과 서비스업은 이미 이처럼 심각한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루이기 이조(호텔 직원) : "큰 호텔들은 직원을 많이 퇴출시키고 문을 닫은 곳도 있습니다. 타격이 심각합니다."
공공시설 확충과 서비스 개선 등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시 당국의 정책도 역부족입니다.
<인터뷰>발레리아 발렌테(나폴리 관광국장) : "지금은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것보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레몬주와 모짜렐라 등 나폴리 특산품의 수출 계약도 무려 35% 정도가 취소됐습니다.
인근의 농밀들은 자신들의 농산품이 안전하다는 걸 알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노 비나치아(소렌토 레몬농민) : "보세요. 얼마나 즙이 많은지 짜기만 하면 계속 즙이 쏟아져 나옵니다. 소렌토는 나폴리와 분리돼 있어서 오염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농민단체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당국에 사태해결을 호소하고 있지만 농산품 오염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비또 아멘돌라나(농협 대표) : "모든 농촌이 오염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상품도 모두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이탈리아 정부는 전 경찰청장을 쓰레기 특사로 임명하고 군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해 사태해결에 나선 상탭니다.
그러나 나폴리의 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14년, 무능하고 부패한 행정 당국과 막후의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세력, 폭력과 불법에 둔감해진 시민사회의 냉소주의가 뒤엉켜 근본적인 사태해결을 막아온 셈입니다.
세계 3대 미항의 명성을 되찾기까지 나폴리가 풀어가야할 숙제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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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로 신음하는 이탈리아 나폴리
-
- 입력 2008-02-17 08:23:04
- 수정2008-02-18 13:07:02

<앵커 멘트>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나폴 리가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 쓰레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때문에 관광객이 급감하고 특산품 판매도 줄어들면서 지역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는데요.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당국과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시민들의 냉소주의가 뒤엉킨 결과여서 나폴리의 쓰레기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욱 순회특파원이 밀착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 나폴리...
호주의 시드니,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명소입니다.
폼페이 유적을 낳은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산타루치아와 소렌토항이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펼쳐놓습니다.
눈부신 햇살과 짚푸른 바다, 그리고 25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유산...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죽기 전에 나폴리를 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성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힐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쓰레기 방화와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중앙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해 쓰레기 청소에 나서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습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
한때 말끔히 치워졌던 거리에는 다시 이렇게 쓰레기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거리에는 이런 쓰레기 더미가 10여 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치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택가 골목도, 고층빌딩이 밀집한 큰 거리도 다시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버려진 음식물은 길거리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고 시민들은 코를 찌르는 악취를 피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합니다.
<인터뷰>베네데토(시민) : "많은 것을 해치고 있죠. 공중위생도 나빠지고, 관광객도 줄고... 나폴리 뿐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있어요."
이제 막 출근이 시작된 평일 오전 이른 시각, 나폴리 시청 광장에선 벌써 지역주민들의 시위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이지, 쓰레기가 아니다' 주민들은 격하게 당국을 성토합니다.
<인터뷰>에르미니아 암브로지노(주민) : "경찰센터 개발 예정지에 쓰레기를 매립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기다린 건 경찰센터지, 쓰레기가 아니었거든요."
<인터뷰>젠나로 데치고(주민) : "공무원들이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해요. 이 재난을 복구하는 비용을 그들이 내야 합니다. 공무원들은 정말 범죄자들입니다."
현재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길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는 추정치만 무려 10만 톤, 소각하지 않고 계속 매립하거나 쌓아두다 보니 이제 인근지역의 쓰레기 하치장까지 모두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살바토레 자르링고(나폴리 구의원) : "나흘마다 7천 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올텐데,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니까 여기저기 쓰레기만 쌓이는 겁니다.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에요."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있는 나폴리 당국의 안이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환경단체 WWF 캄파니아 지국 회장) : "새로운 매립지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분리되지 않은 젖은 물질을 소각할 기계도 없다는 거죠. 아직 합법적인 쓰레기 처리기계를 만들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중앙정부가 나폴리에 지원한 쓰레기 처리예산 20억 유로의 행방입니다.
소각장을 15개나 지을 수 있는 돈이 지원됐는데도 지난 14년간 쓰레기 소각장은 단 하나도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마피아 세력과 결탁돼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오르넬라 까뻬쭈또 : (쓰레기 사태가 마피아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나요?)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렇다."
이 지역 마피아인 '카모라'는 쓰레기 불법처리 사업으로 매년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카모라 세력이 자신의 돈줄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 정비사업을 막아왔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카모라의 심각성은 그들이 나폴리의 지하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카모라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사람은 무려 30만 명, 나폴리가 속한 캄파니아주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인터뷰>파비오 줄리아니(반마피아 단체) : "나폴리 젊은이의 실직률이 50%를 넘는데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카모라의 세계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치안불안은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와 함께 나폴리를 상징하는 말이 돼 버렸습니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나폴리의 대표적 유적지 누오보 성, 하지만 최근들어선 하루종일 텅빈 시내관광 버스만 주차돼 있기 일쑵니다.
이제 나폴리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습니다.
<인터뷰>택시기사 : "관광객이 적어도 70%는 줄었어요. 사람들이 두려워 합니다. 나폴리는 치안이 불안한데 쓰레기까지 한몫을 하고 있는 거죠."
나폴리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과 서비스업은 이미 이처럼 심각한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인터뷰>루이기 이조(호텔 직원) : "큰 호텔들은 직원을 많이 퇴출시키고 문을 닫은 곳도 있습니다. 타격이 심각합니다."
공공시설 확충과 서비스 개선 등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시 당국의 정책도 역부족입니다.
<인터뷰>발레리아 발렌테(나폴리 관광국장) : "지금은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것보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알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쓰레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레몬주와 모짜렐라 등 나폴리 특산품의 수출 계약도 무려 35% 정도가 취소됐습니다.
인근의 농밀들은 자신들의 농산품이 안전하다는 걸 알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노 비나치아(소렌토 레몬농민) : "보세요. 얼마나 즙이 많은지 짜기만 하면 계속 즙이 쏟아져 나옵니다. 소렌토는 나폴리와 분리돼 있어서 오염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농민단체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당국에 사태해결을 호소하고 있지만 농산품 오염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비또 아멘돌라나(농협 대표) : "모든 농촌이 오염됐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농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상품도 모두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이탈리아 정부는 전 경찰청장을 쓰레기 특사로 임명하고 군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특권까지 부여해 사태해결에 나선 상탭니다.
그러나 나폴리의 쓰레기 문제가 불거진 지 벌써 14년, 무능하고 부패한 행정 당국과 막후의 지하경제를 장악한 마피아 세력, 폭력과 불법에 둔감해진 시민사회의 냉소주의가 뒤엉켜 근본적인 사태해결을 막아온 셈입니다.
세계 3대 미항의 명성을 되찾기까지 나폴리가 풀어가야할 숙제가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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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기자 tw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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