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얼굴없는 용의자

입력 2008.04.07 (06:59) 수정 2008.04.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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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삼 해설위원]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는 범죄자의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흉악사범이 잡혀도 누군지 모릅니다.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쓴 용의자가 있을 뿐입니다.

최근 어린이 상대 흉악 범죄를 계기로 피의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지켜줘야하는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장검증 때마다 마스크를 벗기라고 분노하는 피해자 가족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피의자의 초상권을 지키는 경찰의 직무규칙이 버티고 있습니다.

확정 판결까지는 무죄 추정이라는 원칙에 근거해 지난 2005년 제정된 훈령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경찰은 CCTV에 찍힌 일산 어린이 사건 용의자를 공개했다가 붙잡은 뒤에는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 씌웠습니다.

합당한 조처인지 아닌지 아리송합니다.

특히 그는 같은 죄로 10년형을 산 전과자였습니다.

용의자의 얼굴 공개 논란은 적법한 벌을 주되 인격권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갈등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인권 선진국들도 흉악범을 공개하는 마당에 범죄 예방을 위해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정섭니다.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사실 국민 모두입니다.

그런데도 용의자는 끝까지 얼굴을 가린 채 사라졌다가 제2, 제3의 피의자가 돼 나타납니다.

반면에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혹한 고통에 시달리고 주민들도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피의자 인권 보호는 과거 국가 형벌권의 남용에서 비롯됐습니다.

현대 형사사법제도가 피의자의 인권을 꾸준히 넓혀 오는 동안 피해자는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지난 60년대부터 다시 피해자의 인권에 눈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2년 전에야 피해자 보호법이 생겼고 올 초엔 대검에 피해자 인권과가 신설됐습니다.

흉악범의 신상공개 논란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원칙론에 밀려 흐지부지 됐습니다. 이번에도 그랬다가 또 같은 사건이 나 여론이 들끓는다면 우리 모두가 무책임하다는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해 일어난 어린이 성범죄는 천 건이 넘습니다.

절반이 재범이었습니다.

최소한 재범이라도 피할 수 있는 정보는 국민에게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의 안전을 피의자의 인권보다 소홀히 해도 좋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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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해설] 얼굴없는 용의자
    • 입력 2008-04-07 06:13:35
    • 수정2008-04-07 07:24:52
    뉴스광장 1부
[이준삼 해설위원]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는 범죄자의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흉악사범이 잡혀도 누군지 모릅니다.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쓴 용의자가 있을 뿐입니다. 최근 어린이 상대 흉악 범죄를 계기로 피의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지켜줘야하는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장검증 때마다 마스크를 벗기라고 분노하는 피해자 가족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피의자의 초상권을 지키는 경찰의 직무규칙이 버티고 있습니다. 확정 판결까지는 무죄 추정이라는 원칙에 근거해 지난 2005년 제정된 훈령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경찰은 CCTV에 찍힌 일산 어린이 사건 용의자를 공개했다가 붙잡은 뒤에는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 씌웠습니다. 합당한 조처인지 아닌지 아리송합니다. 특히 그는 같은 죄로 10년형을 산 전과자였습니다. 용의자의 얼굴 공개 논란은 적법한 벌을 주되 인격권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와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갈등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인권 선진국들도 흉악범을 공개하는 마당에 범죄 예방을 위해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정섭니다.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사실 국민 모두입니다. 그런데도 용의자는 끝까지 얼굴을 가린 채 사라졌다가 제2, 제3의 피의자가 돼 나타납니다. 반면에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혹한 고통에 시달리고 주민들도 불안에 떨어야 합니다. 피의자 인권 보호는 과거 국가 형벌권의 남용에서 비롯됐습니다. 현대 형사사법제도가 피의자의 인권을 꾸준히 넓혀 오는 동안 피해자는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지난 60년대부터 다시 피해자의 인권에 눈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2년 전에야 피해자 보호법이 생겼고 올 초엔 대검에 피해자 인권과가 신설됐습니다. 흉악범의 신상공개 논란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원칙론에 밀려 흐지부지 됐습니다. 이번에도 그랬다가 또 같은 사건이 나 여론이 들끓는다면 우리 모두가 무책임하다는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지난해 일어난 어린이 성범죄는 천 건이 넘습니다. 절반이 재범이었습니다. 최소한 재범이라도 피할 수 있는 정보는 국민에게 제공돼야 할 것입니다. 피해자의 안전을 피의자의 인권보다 소홀히 해도 좋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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