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중화 민족주의

입력 2008.05.0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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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주 일요일 서울 한복판에서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물결 속에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를 지키려는 환영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티베트 독립운동 지지자나 탈북자 지원단체들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나 심지어 경찰관도 구타당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린 그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공존해야 하는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002년 월드컵 당시와 비슷했지만 사람도 달랐고 행동도 달랐습니다.

<녹취> “짜요 중궈~ 짜요 올림픽~”

대부분은 한판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중국인들은 성화를 들고 뛰는 주자와 나란히 달리며 방해 시위에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free Tibet! Free Tibet!”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맞이하는 마음이 모두 같은 수는 없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 독립 시위를 유혈 진압한 것에 항의하는 사람들부터 탈북자 정책을 수정하라는 요구까지...

성화 봉송 행사를 반 중국 운동을 벌일 좋은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도 아니고 한국의 수도 서울이었으니 중국의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은 짧았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거친 입씨름이 오가다가 들고 있던 물병이, 몸싸움이, 결국은 돌멩이에 공구까지 오갔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중국인들은 맞서던 한국인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해도 호텔 안까지 쫓아가서 주먹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급기야 경찰과 기자까지. 오성홍기를 두르지 않은 사람은 예외 없이 표적이 됐습니다.

<녹취> 한국인 피해자 : “이걸 던지다니 이럴 수가 있나. 이건 맞으면 죽는 거다.”

‘화합의 여행’이라던 올림픽 성화가 서울을 지나던 날의 풍경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경찰까지 폭행한 중국인, 이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떻게 전국에서 서울로 모여들었을까...

성화 봉송 당일 눈에 띄었던 이 티셔츠가 수수께끼를 풀 열쇠였습니다.

취재진은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가운데 지난주 서울에서 열렸던 성화 봉송 행사에 다녀온 학생만 130여 명.

아침 6시에 버스 편으로 부산을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으로 달려갔다가 행사가 끝나면 되돌아오는 힘겨운 여정인데도 무엇이 학생들을 움직였을까요.

<인터뷰> 00대학교 중국인 유학생 대표 : “베이징 올림픽과 성화 봉송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 갔고 성화 봉송을 지켜보고 조국을 위해 마음을 보태기 위해 갔습니다.”

이렇게 부산 전역에서 서울로 올라간 중국인 학생이 줄잡아 1400여 명.

총영사관이 학생들에게 비용 가운데 일부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중국인 유학생 : “영사관 측에서 전화로 일부 금액을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받지는 못했고요. 며칠 안에 저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고 그때 제가 교직원을 통해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시하면 그 영수증에 근거해 금액을 일부 정산받기로 했습니다.”

‘동원된 관제 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편의를 제공해 참가자를 늘렸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덜 여문 20대 중국인은 아예 이렇게 엇나가기도 합니다.

<인터뷰> 00대학교 중국인 유학생 대표 : “만약 한국인이 중국의 완전한 통일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것이고 만약 누군가 중국을 분열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소멸시켜버릴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지나친 행동을 유발하고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안은 물론 바깥 세상을 향해서도 다름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가 그날의 폭력 사태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어울린 저녁 식사 자리.

유학생들은 폭력 사태의 원인을 한국 쪽 시위대가 제공했을 수도 있다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중국인 유학생 :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돼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일 겁니다. 그런 학생들이 조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을 보고 그렇게 한 겁니다. 만약 한국인들이 중국 영토에서 어떤 사람이 공공연히 한국 정부나 기업을 반대하거나 욕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란스러운 현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서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녹취> 중국유학생 : (중국에서도 공안이 폭행당하는 경우도 있나?) “티베트에서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폭력 세력이 공안을 구타한 적이 있지요. 티베트 라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중국의 젊은 지성들도 결국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성화 봉송 당일의 상황에 대해서는 유학생들의 입장이 일부 이해도 됐지만 사고 방식의 장벽은 여전해 보였습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인들과 변화를 촉구하는 세계인들의 충돌은 성화의 불씨를 얻을 때부터 예고됐습니다.

성화는 말 그대로 ‘가는 곳마다’ 시위대와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시위대가 성화를 빼앗으려 해서 봉송이 중단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는 아예 세 차례나 성화가 꺼지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성화가 갈 길을 수천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가로막는 통에 봉송 구간을 급히 바꾸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탓에 중국인들이 민감해지면서 가까운 일본과 한국에서 잇따라 충돌이 일어났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벌인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불법행위를 한 젊은이들을 꾸짖기는 커녕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지난달 29일) : “다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선량한 중국 유학생들의 정의의 행동이었으며 그들의 본의는 좋은 것이었으나 과격해져서 빚어진 사고다.”

수도 한복판에서 외국인들이 불법 행위를 벌여도 속수무책이던 한국정부는 비자 심사 강화나 불법행위자 추방 등을 꺼내며 뒤늦게 으름장을 놨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붙잡은 중국인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면서 실제로 강경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인터넷에서는 반중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이트에 며칠 사이 수천 명이 가입하는 등 이상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중국인과 중국 정부를 성토하는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녹취> 묘장 스님(경제정의 실천 불교 시민연합 상임이사) : “중국 유학생들의 무모하고 거리낌없는 폭력행사는 중국 대사관의 적극적 묵인과 독려 없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

폭력 사태 자체가 우발적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원인은 뿌리 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 정부와 시민 사회 모두 다른 목소리를 물리적으로 억누르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떠받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인터뷰> 박인휘(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하나의 중국 원칙이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고수돼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국가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라고 본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 사회 앞에 놓여 있는 큰 걸림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 “경제적인 변화에 걸맞는 사회의식이라든지 정치의식의 성장,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교육 정도가 부족한 것이 앞으로 중국과 외부세계, 국제 사회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 커다란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반도의 평화를 좌우할 6자 회담의 의장국이자 한국의 가장 큰 교역국 가운데 하나로, 중국은 이미 한국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밖에 존재하는 다른 의견은 물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에마저 폭력과 강압으로 대응하는 중국, 그 독선적인 중화 민족주의가 불편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덩치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듯한 이웃과 우리가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숙제도 남깁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발전 정도와 내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국제적 시험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성화는 이 시각, 중국 하이난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막까지는 이제 96일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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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빗나간 중화 민족주의
    • 입력 2008-05-04 18:00:17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지난주 일요일 서울 한복판에서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물결 속에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행사를 지키려는 환영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티베트 독립운동 지지자나 탈북자 지원단체들과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나 심지어 경찰관도 구타당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린 그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공존해야 하는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002년 월드컵 당시와 비슷했지만 사람도 달랐고 행동도 달랐습니다. <녹취> “짜요 중궈~ 짜요 올림픽~” 대부분은 한판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중국인들은 성화를 들고 뛰는 주자와 나란히 달리며 방해 시위에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free Tibet! Free Tibet!” 베이징 올림픽 성화를 맞이하는 마음이 모두 같은 수는 없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 독립 시위를 유혈 진압한 것에 항의하는 사람들부터 탈북자 정책을 수정하라는 요구까지... 성화 봉송 행사를 반 중국 운동을 벌일 좋은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도 아니고 한국의 수도 서울이었으니 중국의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에 대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은 짧았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거친 입씨름이 오가다가 들고 있던 물병이, 몸싸움이, 결국은 돌멩이에 공구까지 오갔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중국인들은 맞서던 한국인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해도 호텔 안까지 쫓아가서 주먹세례를 퍼부었습니다. 급기야 경찰과 기자까지. 오성홍기를 두르지 않은 사람은 예외 없이 표적이 됐습니다. <녹취> 한국인 피해자 : “이걸 던지다니 이럴 수가 있나. 이건 맞으면 죽는 거다.” ‘화합의 여행’이라던 올림픽 성화가 서울을 지나던 날의 풍경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경찰까지 폭행한 중국인, 이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어떻게 전국에서 서울로 모여들었을까... 성화 봉송 당일 눈에 띄었던 이 티셔츠가 수수께끼를 풀 열쇠였습니다. 취재진은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가운데 지난주 서울에서 열렸던 성화 봉송 행사에 다녀온 학생만 130여 명. 아침 6시에 버스 편으로 부산을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으로 달려갔다가 행사가 끝나면 되돌아오는 힘겨운 여정인데도 무엇이 학생들을 움직였을까요. <인터뷰> 00대학교 중국인 유학생 대표 : “베이징 올림픽과 성화 봉송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 갔고 성화 봉송을 지켜보고 조국을 위해 마음을 보태기 위해 갔습니다.” 이렇게 부산 전역에서 서울로 올라간 중국인 학생이 줄잡아 1400여 명. 총영사관이 학생들에게 비용 가운데 일부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중국인 유학생 : “영사관 측에서 전화로 일부 금액을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아직 받지는 못했고요. 며칠 안에 저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고 그때 제가 교직원을 통해 영수증을 발급받아 제시하면 그 영수증에 근거해 금액을 일부 정산받기로 했습니다.” ‘동원된 관제 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편의를 제공해 참가자를 늘렸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덜 여문 20대 중국인은 아예 이렇게 엇나가기도 합니다. <인터뷰> 00대학교 중국인 유학생 대표 : “만약 한국인이 중국의 완전한 통일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것이고 만약 누군가 중국을 분열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소멸시켜버릴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지나친 행동을 유발하고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안은 물론 바깥 세상을 향해서도 다름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가 그날의 폭력 사태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어울린 저녁 식사 자리. 유학생들은 폭력 사태의 원인을 한국 쪽 시위대가 제공했을 수도 있다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중국인 유학생 :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돼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일 겁니다. 그런 학생들이 조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을 보고 그렇게 한 겁니다. 만약 한국인들이 중국 영토에서 어떤 사람이 공공연히 한국 정부나 기업을 반대하거나 욕을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란스러운 현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서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녹취> 중국유학생 : (중국에서도 공안이 폭행당하는 경우도 있나?) “티베트에서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폭력 세력이 공안을 구타한 적이 있지요. 티베트 라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중국의 젊은 지성들도 결국 자기 행동을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성화 봉송 당일의 상황에 대해서는 유학생들의 입장이 일부 이해도 됐지만 사고 방식의 장벽은 여전해 보였습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인들과 변화를 촉구하는 세계인들의 충돌은 성화의 불씨를 얻을 때부터 예고됐습니다. 성화는 말 그대로 ‘가는 곳마다’ 시위대와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시위대가 성화를 빼앗으려 해서 봉송이 중단되기도 했고 프랑스에서는 아예 세 차례나 성화가 꺼지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성화가 갈 길을 수천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가로막는 통에 봉송 구간을 급히 바꾸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탓에 중국인들이 민감해지면서 가까운 일본과 한국에서 잇따라 충돌이 일어났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벌인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불법행위를 한 젊은이들을 꾸짖기는 커녕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녹취>: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지난달 29일) : “다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선량한 중국 유학생들의 정의의 행동이었으며 그들의 본의는 좋은 것이었으나 과격해져서 빚어진 사고다.” 수도 한복판에서 외국인들이 불법 행위를 벌여도 속수무책이던 한국정부는 비자 심사 강화나 불법행위자 추방 등을 꺼내며 뒤늦게 으름장을 놨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붙잡은 중국인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마저 기각되면서 실제로 강경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인터넷에서는 반중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이트에 며칠 사이 수천 명이 가입하는 등 이상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중국 대사관 앞에서는 중국인과 중국 정부를 성토하는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녹취> 묘장 스님(경제정의 실천 불교 시민연합 상임이사) : “중국 유학생들의 무모하고 거리낌없는 폭력행사는 중국 대사관의 적극적 묵인과 독려 없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 폭력 사태 자체가 우발적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원인은 뿌리 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 정부와 시민 사회 모두 다른 목소리를 물리적으로 억누르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떠받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인터뷰> 박인휘(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 “하나의 중국 원칙이 어떤 경우에도 철저하게 고수돼야 한다는 시민사회와 국가간 합의가 이뤄진 것이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라고 본다.” 또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중화 민족주의는 중국 사회 앞에 놓여 있는 큰 걸림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터뷰>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 “경제적인 변화에 걸맞는 사회의식이라든지 정치의식의 성장,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세련되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교육 정도가 부족한 것이 앞으로 중국과 외부세계, 국제 사회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 커다란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반도의 평화를 좌우할 6자 회담의 의장국이자 한국의 가장 큰 교역국 가운데 하나로, 중국은 이미 한국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밖에 존재하는 다른 의견은 물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에마저 폭력과 강압으로 대응하는 중국, 그 독선적인 중화 민족주의가 불편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덩치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듯한 이웃과 우리가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숙제도 남깁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발전 정도와 내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국제적 시험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성화는 이 시각, 중국 하이난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막까지는 이제 96일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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