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좌충우돌 ‘아빠 주부’ 육아 일기

입력 2008.10.13 (08:49) 수정 2008.10.13 (09: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그동안 ‘육아’하면 보통 여성들의 몫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죠? 아예 직장에 휴직계까지 내고 아이 돌보기에 나선 남성들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남자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잖아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리포트>

모성보호법에 따라 남성들도 최대 1년간의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지만 지난 2007년, 전국에서 단 310명의 남성만이 실행에 옮겼을 만큼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데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쉬니까 좋겠다, 재충전 하려는 거냐 이런 얘기부터 듣는다고...

하지만 막상 아이 돌보기에 나서면 생각처럼 쉴 여유는 전혀 없다는데요, 대신 아이와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돈 주고도 사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 주부’ 들의 특별한 이야기, 현장에서 담았습니다.

한창 출근길에 바쁜 시각. 고성민씨 집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화장을 하며 출근준비에 바쁜 아내와, 쌀을 씻어 안치고, 반찬도 꺼내놓으며 식사 준비에 분주한 성민씨의 모습이 여느 다른 가정과는 다르죠.

성민 씨는 아내의 출산 휴가가 끝난 지난 7월, 6개월 육아휴직을 신청해,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 준형이를 돌보고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명희(안양시 만안구) : "처음엔 황당했죠. 저보고 육아 휴직을 하라고 했는데 상황이 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저보다 더 (아기를) 잘 봐요."

아침 9시, 시민단체에 다니는 엄마가 출근하고 난 뒤부터는 성민 씨와 준형이, 둘만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먼저 목욕부터 시키려는 성민씨...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도 제법 능숙하게 목욕을 시킬 수 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 고성민(6개월 육아 휴직) : "아기가 이렇게 연약한데 혹시 어디 부러지지는 않을까 겁이 많이 났었죠. 많이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준형이가 울며 보챌 때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가 고파 운다는 건 눈치를 챘지만 급한 나머지 냉장된 모유를 너무 뜨겁게 데우고 말았습니다.

하루 24시간 함께 지내며 부자간의 끈끈한 정을 느낀다는 성민씨. 하지만 시민단체에 다니며 활발히 직장생활을 했던 터라 한때 주부우울증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게 내가 뭐하는 건가……. 괜히 내가 했나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순간이 아니고 또 얘도 크고 그럴 텐데 내가 우리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경기도 김포의 한 마트. 대낮에 아기를 안고 장을 보러 온 한 남성이 눈에 띕니다.

서비스업 계통 대기업에 1년간 휴직계를 내고 아들 상민이를 돌보고 있는 김현우씨입니다.

학원 강사인 아내와 2년 전 결혼해 지난해 11월, 상민이가 태어났지만 마땅히 돌봐 줄 사람이 없자 육아휴직을 결정 했는데요 직장눈치도 보이고 한달 육아 지원금이 월 50만원 밖에 되지 않아 생활도 어려워졌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백수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었습니다.

<인터뷰> 김현우(1년간 육아휴직) : "친구들끼리 너 뭐해? 물어보잖아요. 나 육아휴직 중이야 하면 사지도 멀쩡한 사람이 노느냐 그런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네가 육아 휴직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 라고 말을 하죠."

젖병을 일일이 분해해 닦아 말리고, 아기를 업고도 능숙히 청소기를 돌리는 모습이 프로 주부 못지 않은데요 다음 달이면 복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터뷰> "1년 동안 공백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복직해서가 걱정이죠. 열심히 노력해서 너를 키웠으니까 나중에 아빠한테 고맙다고 한마디만 해줘라. 상민아 사랑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육아휴직을 실천으로 옮기는 남성은 많지 않은데요.

지난 6월, KBS 인간극장 ‘미스터 살림왕’ 편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박철윤씨.

6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지난 9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다시 복직한 그는 방송 후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철윤(육아 휴직 후 복) : "좋은 쪽으로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자기 의견에 따라 조금 다른 의견 제시하는 분도 계시고……. 저희 아버지 세대, 50대 쯤 되는 분들은 절대 이해를 안 하시려고 하는지 못 하시는 건지 안 좋은 쪽으로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철윤씨.

어느덧 훌쩍 자란 경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와 철윤 씨를 반기는데요.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더……. (둘째 때는) 전문적으로 첫째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가슴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는 남성 육아 휴직자들. 일각에선 남성들이 사회적인 편견 등을 신경 안쓰고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의무화 시키자는 주장도 있는데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는 것 같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현장] 좌충우돌 ‘아빠 주부’ 육아 일기
    • 입력 2008-10-13 08:31:28
    • 수정2008-10-13 09:05:15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그동안 ‘육아’하면 보통 여성들의 몫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죠? 아예 직장에 휴직계까지 내고 아이 돌보기에 나선 남성들도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남자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잖아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리포트> 모성보호법에 따라 남성들도 최대 1년간의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지만 지난 2007년, 전국에서 단 310명의 남성만이 실행에 옮겼을 만큼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데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쉬니까 좋겠다, 재충전 하려는 거냐 이런 얘기부터 듣는다고... 하지만 막상 아이 돌보기에 나서면 생각처럼 쉴 여유는 전혀 없다는데요, 대신 아이와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돈 주고도 사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육아 휴직을 내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 주부’ 들의 특별한 이야기, 현장에서 담았습니다. 한창 출근길에 바쁜 시각. 고성민씨 집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화장을 하며 출근준비에 바쁜 아내와, 쌀을 씻어 안치고, 반찬도 꺼내놓으며 식사 준비에 분주한 성민씨의 모습이 여느 다른 가정과는 다르죠. 성민 씨는 아내의 출산 휴가가 끝난 지난 7월, 6개월 육아휴직을 신청해, 직장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 준형이를 돌보고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명희(안양시 만안구) : "처음엔 황당했죠. 저보고 육아 휴직을 하라고 했는데 상황이 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저보다 더 (아기를) 잘 봐요." 아침 9시, 시민단체에 다니는 엄마가 출근하고 난 뒤부터는 성민 씨와 준형이, 둘만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먼저 목욕부터 시키려는 성민씨... 지금은 이렇게 혼자서도 제법 능숙하게 목욕을 시킬 수 있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 고성민(6개월 육아 휴직) : "아기가 이렇게 연약한데 혹시 어디 부러지지는 않을까 겁이 많이 났었죠. 많이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아직도 준형이가 울며 보챌 때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가 고파 운다는 건 눈치를 챘지만 급한 나머지 냉장된 모유를 너무 뜨겁게 데우고 말았습니다. 하루 24시간 함께 지내며 부자간의 끈끈한 정을 느낀다는 성민씨. 하지만 시민단체에 다니며 활발히 직장생활을 했던 터라 한때 주부우울증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이게 내가 뭐하는 건가……. 괜히 내가 했나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는데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순간이 아니고 또 얘도 크고 그럴 텐데 내가 우리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경기도 김포의 한 마트. 대낮에 아기를 안고 장을 보러 온 한 남성이 눈에 띕니다. 서비스업 계통 대기업에 1년간 휴직계를 내고 아들 상민이를 돌보고 있는 김현우씨입니다. 학원 강사인 아내와 2년 전 결혼해 지난해 11월, 상민이가 태어났지만 마땅히 돌봐 줄 사람이 없자 육아휴직을 결정 했는데요 직장눈치도 보이고 한달 육아 지원금이 월 50만원 밖에 되지 않아 생활도 어려워졌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백수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었습니다. <인터뷰> 김현우(1년간 육아휴직) : "친구들끼리 너 뭐해? 물어보잖아요. 나 육아휴직 중이야 하면 사지도 멀쩡한 사람이 노느냐 그런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네가 육아 휴직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 라고 말을 하죠." 젖병을 일일이 분해해 닦아 말리고, 아기를 업고도 능숙히 청소기를 돌리는 모습이 프로 주부 못지 않은데요 다음 달이면 복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터뷰> "1년 동안 공백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복직해서가 걱정이죠. 열심히 노력해서 너를 키웠으니까 나중에 아빠한테 고맙다고 한마디만 해줘라. 상민아 사랑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육아휴직을 실천으로 옮기는 남성은 많지 않은데요. 지난 6월, KBS 인간극장 ‘미스터 살림왕’ 편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박철윤씨. 6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지난 9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다시 복직한 그는 방송 후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철윤(육아 휴직 후 복) : "좋은 쪽으로 말씀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자기 의견에 따라 조금 다른 의견 제시하는 분도 계시고……. 저희 아버지 세대, 50대 쯤 되는 분들은 절대 이해를 안 하시려고 하는지 못 하시는 건지 안 좋은 쪽으로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철윤씨. 어느덧 훌쩍 자란 경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와 철윤 씨를 반기는데요. <인터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 더……. (둘째 때는) 전문적으로 첫째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가슴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는 남성 육아 휴직자들. 일각에선 남성들이 사회적인 편견 등을 신경 안쓰고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의무화 시키자는 주장도 있는데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를 돌보는 아빠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는 것 같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