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향미·향심 자매의 추억이야기
네. 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생생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창작극을 열었습니다.
기획에서 연기까지 직접 참가했는데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만나보시죠.
<녹취>동생 : “에잇 겨우 이것 주나?”
<녹취>언니 : “안먹어” (다투는)
먹을 것이 없어 매일 다퉈야했던 북쪽에서의 처절한 일들.
이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에게는 추억이 됐습니다.
12년 전 겪었던 북쪽에서의 이야기들을 공연으로 풀어냅니다.
<인터뷰>허향심(새터민, 2007년 입국) : “뻥튀기라고 하나요? 그것 사가지고 언니가 딱하나 나한테 주면서 저기가서 먹어라 쪼개서 먹어라 막그래요.”
<인터뷰>허향미(새터민, 2003년 입국) : “진짜 많이 싸웠어요. 저희는 잘 때만 빼놓고 눈 뜨기만하면 싸웠어요.””
북쪽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제는 무대 위, 공연을 통해 만납니다.
<녹취> 언니 : “아버지 할말있습니다.” “뭔데?”
<녹취> 동생 : “우리가 개입니까?”
식량이 부족해 아버지는 딸들에게 뼈를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다 발라 먹은 생선뼈만 던져줍니다.
<인터뷰>언니 : "6살땐가 7살 때 있었던 일인데 잊어 안버리고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요."
이 연극은 재미있는 장면으로 엮어내긴 했지만 사실 자매가 직접 겪은 처절한 북쪽의 생활상입니다.
자매의 깊은 아픔이 담겨져 있는 이야깁니다.
6년 전 고질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식량난으로 어머니와 두 자매, 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배불리 먹고 싶어 탈북 한 당시 15살 남짓의 언니 향미양.
탈북 후 중국에 혼자 머물면서 인신매매의 위험까지 넘기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언니 : “토끼풀, 이건 말해도 되겠는지 모르지만 남의 개죽까지도 먹어 봤고....”
다행히 중국에 머물던 친척의 도움으로 2003년 먼저 남쪽으로 무사히 입국하게 됩니다.
그 사이 영문도 모르고 친언니와 헤어진 동생 향심양은 이듬해 무작정 언니를 찾아 탈북 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동생 : "진짜 다시 볼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고 언니 가니까 종일 하루 종일 울었어요."
중국에서 언니를 찾아 헤맸지만 행방을 찾지 못한 채 함께 탈북한 어머니를 따라 지난 해 남한에 입국했는데요.
동생 향심양은 포기하지 않고 남쪽에 들어오자마자 생이별한 언니를 찾기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미양을 돌봐주고 있던 친척과 연락이 닿아 지난 해 마침내 자매의 5년만의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서로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쳐 남쪽으로 오게 된 자매는 비록 식량난에 시달리는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들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남쪽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는데요.
자신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음>허향심(시낭독)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1년여의 준비과정에서 자매는 남한 입국 후 낯선 땅에서 위축됐던 자신감까지 회복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박상영 (총연출, 대안학교 교장) : “아이들한테는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힘이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 힘은 아이들 속에 있다고 보거든요. 그 힘은 결국 어렸을때 즐거웠던 추억, 아름다운 기억들이 이 아이들이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현재 생활도 행복하지만 허향미, 향심 자매는 하루 빨리 통일이 돼 무작정 떠나온 그리운 고향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인터뷰>향심 : “북한 노래 , 종달 지저귀는.. 이노래 부를 때 진짜 눈물이 쫙나요. 속으로 울어요."“기회가 오면은 진짜 달려갈거에요.”
이날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도 평소 가졌던 새터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깼다며 새터민 청소년들이 용기를 가지길 바랐습니다.
<인터뷰> 사쿠라이 케이코(일본인 관객) :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것 극복해가지고 아주 씩씩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온 새터민 청소년들.
이 들이 낯선 땅, 남쪽의 생활과 문화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이 자매처럼 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남쪽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용기로 승화시켜나갔으면 합니다.
조정연 리포터, 고맙습니다.
네. 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생생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창작극을 열었습니다.
기획에서 연기까지 직접 참가했는데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만나보시죠.
<녹취>동생 : “에잇 겨우 이것 주나?”
<녹취>언니 : “안먹어” (다투는)
먹을 것이 없어 매일 다퉈야했던 북쪽에서의 처절한 일들.
이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에게는 추억이 됐습니다.
12년 전 겪었던 북쪽에서의 이야기들을 공연으로 풀어냅니다.
<인터뷰>허향심(새터민, 2007년 입국) : “뻥튀기라고 하나요? 그것 사가지고 언니가 딱하나 나한테 주면서 저기가서 먹어라 쪼개서 먹어라 막그래요.”
<인터뷰>허향미(새터민, 2003년 입국) : “진짜 많이 싸웠어요. 저희는 잘 때만 빼놓고 눈 뜨기만하면 싸웠어요.””
북쪽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제는 무대 위, 공연을 통해 만납니다.
<녹취> 언니 : “아버지 할말있습니다.” “뭔데?”
<녹취> 동생 : “우리가 개입니까?”
식량이 부족해 아버지는 딸들에게 뼈를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다 발라 먹은 생선뼈만 던져줍니다.
<인터뷰>언니 : "6살땐가 7살 때 있었던 일인데 잊어 안버리고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요."
이 연극은 재미있는 장면으로 엮어내긴 했지만 사실 자매가 직접 겪은 처절한 북쪽의 생활상입니다.
자매의 깊은 아픔이 담겨져 있는 이야깁니다.
6년 전 고질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식량난으로 어머니와 두 자매, 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배불리 먹고 싶어 탈북 한 당시 15살 남짓의 언니 향미양.
탈북 후 중국에 혼자 머물면서 인신매매의 위험까지 넘기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언니 : “토끼풀, 이건 말해도 되겠는지 모르지만 남의 개죽까지도 먹어 봤고....”
다행히 중국에 머물던 친척의 도움으로 2003년 먼저 남쪽으로 무사히 입국하게 됩니다.
그 사이 영문도 모르고 친언니와 헤어진 동생 향심양은 이듬해 무작정 언니를 찾아 탈북 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동생 : "진짜 다시 볼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고 언니 가니까 종일 하루 종일 울었어요."
중국에서 언니를 찾아 헤맸지만 행방을 찾지 못한 채 함께 탈북한 어머니를 따라 지난 해 남한에 입국했는데요.
동생 향심양은 포기하지 않고 남쪽에 들어오자마자 생이별한 언니를 찾기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미양을 돌봐주고 있던 친척과 연락이 닿아 지난 해 마침내 자매의 5년만의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서로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쳐 남쪽으로 오게 된 자매는 비록 식량난에 시달리는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들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남쪽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는데요.
자신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음>허향심(시낭독)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1년여의 준비과정에서 자매는 남한 입국 후 낯선 땅에서 위축됐던 자신감까지 회복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박상영 (총연출, 대안학교 교장) : “아이들한테는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힘이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 힘은 아이들 속에 있다고 보거든요. 그 힘은 결국 어렸을때 즐거웠던 추억, 아름다운 기억들이 이 아이들이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현재 생활도 행복하지만 허향미, 향심 자매는 하루 빨리 통일이 돼 무작정 떠나온 그리운 고향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인터뷰>향심 : “북한 노래 , 종달 지저귀는.. 이노래 부를 때 진짜 눈물이 쫙나요. 속으로 울어요."“기회가 오면은 진짜 달려갈거에요.”
이날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도 평소 가졌던 새터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깼다며 새터민 청소년들이 용기를 가지길 바랐습니다.
<인터뷰> 사쿠라이 케이코(일본인 관객) :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것 극복해가지고 아주 씩씩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온 새터민 청소년들.
이 들이 낯선 땅, 남쪽의 생활과 문화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이 자매처럼 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남쪽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용기로 승화시켜나갔으면 합니다.
조정연 리포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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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08-11-03 09:58:59
- 수정2008-11-03 14:28:51
허향미·향심 자매의 추억이야기
네. 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가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생생한 몸짓으로 표현하는 창작극을 열었습니다.
기획에서 연기까지 직접 참가했는데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만나보시죠.
<녹취>동생 : “에잇 겨우 이것 주나?”
<녹취>언니 : “안먹어” (다투는)
먹을 것이 없어 매일 다퉈야했던 북쪽에서의 처절한 일들.
이제 새터민 허향미, 향심 자매에게는 추억이 됐습니다.
12년 전 겪었던 북쪽에서의 이야기들을 공연으로 풀어냅니다.
<인터뷰>허향심(새터민, 2007년 입국) : “뻥튀기라고 하나요? 그것 사가지고 언니가 딱하나 나한테 주면서 저기가서 먹어라 쪼개서 먹어라 막그래요.”
<인터뷰>허향미(새터민, 2003년 입국) : “진짜 많이 싸웠어요. 저희는 잘 때만 빼놓고 눈 뜨기만하면 싸웠어요.””
북쪽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제는 무대 위, 공연을 통해 만납니다.
<녹취> 언니 : “아버지 할말있습니다.” “뭔데?”
<녹취> 동생 : “우리가 개입니까?”
식량이 부족해 아버지는 딸들에게 뼈를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다 발라 먹은 생선뼈만 던져줍니다.
<인터뷰>언니 : "6살땐가 7살 때 있었던 일인데 잊어 안버리고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요."
이 연극은 재미있는 장면으로 엮어내긴 했지만 사실 자매가 직접 겪은 처절한 북쪽의 생활상입니다.
자매의 깊은 아픔이 담겨져 있는 이야깁니다.
6년 전 고질병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식량난으로 어머니와 두 자매, 세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배불리 먹고 싶어 탈북 한 당시 15살 남짓의 언니 향미양.
탈북 후 중국에 혼자 머물면서 인신매매의 위험까지 넘기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언니 : “토끼풀, 이건 말해도 되겠는지 모르지만 남의 개죽까지도 먹어 봤고....”
다행히 중국에 머물던 친척의 도움으로 2003년 먼저 남쪽으로 무사히 입국하게 됩니다.
그 사이 영문도 모르고 친언니와 헤어진 동생 향심양은 이듬해 무작정 언니를 찾아 탈북 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인터뷰> 동생 : "진짜 다시 볼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러고 언니 가니까 종일 하루 종일 울었어요."
중국에서 언니를 찾아 헤맸지만 행방을 찾지 못한 채 함께 탈북한 어머니를 따라 지난 해 남한에 입국했는데요.
동생 향심양은 포기하지 않고 남쪽에 들어오자마자 생이별한 언니를 찾기에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미양을 돌봐주고 있던 친척과 연락이 닿아 지난 해 마침내 자매의 5년만의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서로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쳐 남쪽으로 오게 된 자매는 비록 식량난에 시달리는 고된 삶이었지만 자신들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남쪽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는데요.
자신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음>허향심(시낭독)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1년여의 준비과정에서 자매는 남한 입국 후 낯선 땅에서 위축됐던 자신감까지 회복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박상영 (총연출, 대안학교 교장) : “아이들한테는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힘이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는 그 힘은 아이들 속에 있다고 보거든요. 그 힘은 결국 어렸을때 즐거웠던 추억, 아름다운 기억들이 이 아이들이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현재 생활도 행복하지만 허향미, 향심 자매는 하루 빨리 통일이 돼 무작정 떠나온 그리운 고향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인터뷰>향심 : “북한 노래 , 종달 지저귀는.. 이노래 부를 때 진짜 눈물이 쫙나요. 속으로 울어요."“기회가 오면은 진짜 달려갈거에요.”
이날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도 평소 가졌던 새터민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깼다며 새터민 청소년들이 용기를 가지길 바랐습니다.
<인터뷰> 사쿠라이 케이코(일본인 관객) :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것 극복해가지고 아주 씩씩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온 새터민 청소년들.
이 들이 낯선 땅, 남쪽의 생활과 문화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합니다.
네, 이 자매처럼 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남쪽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용기로 승화시켜나갔으면 합니다.
조정연 리포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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