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전 회장, 재계의 거목

입력 2001.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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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불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뚝심과 배짱으로 한국 재계의 거목으로 우뚝선 고인의 삶을 강석훈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급류가 바위까지 삼켜버리는 서산 간척지 사업의 최종 물막이공사.
폐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급류를 막은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회장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창조하며 전세계를 개악시킨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정주영 前명예회장(85년 중앙대 강연 중 '쌀가게 시절 회고'): 지금도 제가 담배를 안 핍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안 피우는 게 아니고 그때는 돈이 아까워서 담배를 안 피웠습니다.
배도 안 부르는데 연기 퍽퍽 피워서 돈 쓸 필요가 없어서...
⊙기자: 해방에 이어 터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가 그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 공사와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로 발판을 마련한 데 이어 60년대에는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 등 각종 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하며 고속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76년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인 포니의 생산은 또 한 번의 개가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출마한 14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혹독한 패자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1년 만에 정치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대북사업의 착수입니다.
소 판돈 70원을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습니다.
⊙정주영 前명예회장): 북한은 동포들이니까 나누어서 키우려고 가지고 가는 거죠.
북한도 소를 키우라고...
⊙기자: 왕회장 정주영, 후계자를 둘러싼 집안 싸움으로 세간의 눈총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준 맨주먹의 도전 정신은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습니다.
KBS뉴스 강석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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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 전 회장, 재계의 거목
    • 입력 2001-03-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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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불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뚝심과 배짱으로 한국 재계의 거목으로 우뚝선 고인의 삶을 강석훈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급류가 바위까지 삼켜버리는 서산 간척지 사업의 최종 물막이공사. 폐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급류를 막은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회장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을 창조하며 전세계를 개악시킨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정주영 前명예회장(85년 중앙대 강연 중 '쌀가게 시절 회고'): 지금도 제가 담배를 안 핍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안 피우는 게 아니고 그때는 돈이 아까워서 담배를 안 피웠습니다. 배도 안 부르는데 연기 퍽퍽 피워서 돈 쓸 필요가 없어서... ⊙기자: 해방에 이어 터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가 그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 공사와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로 발판을 마련한 데 이어 60년대에는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 등 각종 대형 공사를 잇따라 수주하며 고속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76년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인 포니의 생산은 또 한 번의 개가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출마한 14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혹독한 패자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1년 만에 정치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대북사업의 착수입니다. 소 판돈 70원을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습니다. ⊙정주영 前명예회장): 북한은 동포들이니까 나누어서 키우려고 가지고 가는 거죠. 북한도 소를 키우라고... ⊙기자: 왕회장 정주영, 후계자를 둘러싼 집안 싸움으로 세간의 눈총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준 맨주먹의 도전 정신은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습니다. KBS뉴스 강석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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