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대북사업

입력 2001.03.22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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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별세는 현대 대북사업의 향방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흥철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남북관계의 첫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지난 89년 1월 첫 방북에서 정 전 회장은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흐른 뒤인 98년 2차례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 실현이라는 결실을 맺습니다.
서해교전과 관광객 억류사건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이 사업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이 과정에서 세 차례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북 출신으로 남쪽에서 성공한 제1의 민족기업가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대북 경협사업에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현대로서는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정 전 회장의 별세로 중대한 분기점을 맞게 됐습니다.
⊙배종렬(수출입은행 남북지원부): 남북관계에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과 남과 북이 동시에 지속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 사업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순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 돌파구를 열었던 정 전 회장은 비록 제대로 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현대의 대북사업 성패는 이제 2세 경영인들이 정주영 전 회장이 보여줬던 뚝심과 저력에 얼마나 합리성을 더해 마무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KBS뉴스 이흥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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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대북사업
    • 입력 2001-03-22 21:00:00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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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해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별세는 현대 대북사업의 향방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흥철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남북관계의 첫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지난 89년 1월 첫 방북에서 정 전 회장은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흐른 뒤인 98년 2차례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 실현이라는 결실을 맺습니다. 서해교전과 관광객 억류사건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이 사업은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냈습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이 과정에서 세 차례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고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북 출신으로 남쪽에서 성공한 제1의 민족기업가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대북 경협사업에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해 온 현대로서는 구심점 역할을 해 왔던 정 전 회장의 별세로 중대한 분기점을 맞게 됐습니다. ⊙배종렬(수출입은행 남북지원부): 남북관계에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과 남과 북이 동시에 지속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 사업은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순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 돌파구를 열었던 정 전 회장은 비록 제대로 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현대의 대북사업 성패는 이제 2세 경영인들이 정주영 전 회장이 보여줬던 뚝심과 저력에 얼마나 합리성을 더해 마무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KBS뉴스 이흥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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