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차역 이름을 팝니다

입력 2009.03.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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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의 민간 철도회사들이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습니다. 역 이름은 물론 선로의 침목과 전차내의 손잡이를 상품화하고, 심지어 승차권까지 다른 용도로 팔고 있다고 하는데요. 경영난 타개를 위한 일본 철도회사들의 변신을 남종혁 특파원이 지켜봤습니다.

<리포트>

일본 남쪽 규슈의 치쿠호 지역을 달리는 간이 전찹니다.

<효과음> "곧 가미이타, 가미이타입니다"

이 차내 방송이 다음달부터는 이렇게 바뀝니다.

<효과음> "곧 '간다쇼우탱' 가미이타입니다"

이름이 바뀌는 가미이타 역, 간판도 '간다쇼우탱' 가미이타 역으로 바뀝니다. '간다쇼우탱'이란 회사가 1년에 20만 엔, 우리 돈 3백만 원을 내고 역 이름을 산 것입니다.

<인터뷰> 기모토 (간다쇼우탱 사장) : "우리의 콧대가 조금 높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재활용 업체인 이 회사는 철도회사로부터 상담을 받은 뒤, 역이름을 사는 최초의 기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기모토 (간다쇼우탱 사장) : "처음에 역 전체를 사는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왔었는데, 그 소문이 점점 커졌어요. 이런저런 의미로 간다쇼우탱이란 회사 이름을 알릴 수 있어 좋았어요"

역 이름을 판 철도회사는 '헤세 치쿠호'라는 지역철도. 20여 년 전, 국영철도로부터 49킬로미터 구간을 인수받아 운영중이지만 4년 전부터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궁리 끝에 회사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전차 내 손잡이도 광고판으로 판매했습니다.

5천 엔이면 원하는 문구를 1년간 게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선로의 침목도 철도회사 입장에선 커다란 돈벌입니다.

5천 엔을 내면 10년간 계약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매물로 나온 것이 33개 역이름의 사용권입니다. 값은 이용객 숫자로 결정돼, 환승역은 연간 250만 엔입니다. 120년 전통의 목조 역사가 있는 이 역은 이용객이 많지 않아 연간 40만 엔입니다.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인터뷰> 젊은 이용객 :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노인 이용객 : "역 이름이 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장자들은 기억한 상태 그대로가 좋아요"

하지만 모집 넉 달 동안 계약은 단 한 건. 결국, 역이름의 가격을 60-70%까지 대폭 인하했습니다. 40만엔 짜리 역은 15만 엔, 130만엔 짜리 역은 50만 엔, 250만엔 짜리 환승역은 100만 엔까지 내렸습니다.

<인터뷰> 마에다 (헤세치쿠호 철도 부장) : "어떤 회사든지 상관없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대기업이든, 후쿠오카에 있는 회사든, 도쿄에 있는 회사든...."

가격 인하 발표 이후 흥미가 있다는 기업이 생겼습니다. 후쿠오카에 본사가 있는 할인판매점입니다. 할인점 이름이 반복 방송되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터뷰> 마에다 (헤세치쿠호 철도 부장) : "열차 한량에서 4번 방송하니까, 다가와이다역에 대해 하루 328번 방송합니다"

33개 역 전체의 이름을 판매하면 연간 천만엔, 우리 돈 1억 5천만 원 정도를 벌게 됩니다.

도쿄에서 150여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전차 역. 조그만 시골 전차 역의 상점 앞에 이용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지역 철도회사가 판매하는 일본 전통과자를 사먹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무라카미 (철도 이용객) : "고추 맛이지만 그렇게 맵지 않고 딱 좋아요."

기자 질문; "딱 좋습니까?"
"베리 구또"

상점 한 모퉁이에서는 과자가 계속 만들어집니다. 한 봉지에 우리 돈 6천 원 정도나 하지만 찾는 이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인터뷰> 이와사키 (조시전기철도 직원)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많은 손님이 찾아와 하루 100-200명 정도가 사가요"

전차를 타기 위한 목적이 아닌 승차권도 이 시골 철도회사가 개발해낸 아이디어 상품입니다.

이 승차권은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합격의 전차를 타고 달리라는 뜻으로 고안해낸 특별 승차권입니다.

특판 10개월 만에 만 3천 장이나 팔려나갔습니다.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덕분입니다.

<인터뷰> 다나카 (일본 주부) : "딸이 간호사를 목표로 해 공부했는데, 이번주 일요일 시험이 있어 샀어요"

<기자질문>"첫째 아이입니까"
"그래요"

이 철도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붕어빵이나 전통술 등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돼 사용할 수 없는 녹슨 전차 부품까지 판매 대상입니다.

<인터뷰> 고고 (조시전기철도 차장) : "가끔 사가는 분들이 있어요. 최근엔 미국 여성이 사 갔어요"

끊임없는 변신으로 6킬로미터 짧은 구간의 이 철도회사는 이제 전차 이용객 수입보다 3배나 많은 부대수입을 챙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만년 적자이던 회사도 얼마전부터 흑자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고고 (조시전기철도 차장) : "앞으로도 시민들이 관심 가질 수 있는 것, 좀처럼 지금까지 철도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 그래서 흥미를 갖게하는 상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일본에는 이처럼 소규모로 운영되는 민간 철도회사가 수백개에 이릅니다. 대부분 영세 업체이어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역 이름을 팔거나 과자를 만드는 등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달릴 수 있는 기회를 막는 또 하나의 브레이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앵커 멘트>

한국인을 겨냥한 이번 예멘 테러를 계기로 우리의 대 테러 정책을 재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테러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선 필요하겠고, 또 국제 정치 상황을 보는 안목과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도 시급해 보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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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열차역 이름을 팝니다
    • 입력 2009-03-22 09:21:2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일본의 민간 철도회사들이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습니다. 역 이름은 물론 선로의 침목과 전차내의 손잡이를 상품화하고, 심지어 승차권까지 다른 용도로 팔고 있다고 하는데요. 경영난 타개를 위한 일본 철도회사들의 변신을 남종혁 특파원이 지켜봤습니다. <리포트> 일본 남쪽 규슈의 치쿠호 지역을 달리는 간이 전찹니다. <효과음> "곧 가미이타, 가미이타입니다" 이 차내 방송이 다음달부터는 이렇게 바뀝니다. <효과음> "곧 '간다쇼우탱' 가미이타입니다" 이름이 바뀌는 가미이타 역, 간판도 '간다쇼우탱' 가미이타 역으로 바뀝니다. '간다쇼우탱'이란 회사가 1년에 20만 엔, 우리 돈 3백만 원을 내고 역 이름을 산 것입니다. <인터뷰> 기모토 (간다쇼우탱 사장) : "우리의 콧대가 조금 높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재활용 업체인 이 회사는 철도회사로부터 상담을 받은 뒤, 역이름을 사는 최초의 기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기모토 (간다쇼우탱 사장) : "처음에 역 전체를 사는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왔었는데, 그 소문이 점점 커졌어요. 이런저런 의미로 간다쇼우탱이란 회사 이름을 알릴 수 있어 좋았어요" 역 이름을 판 철도회사는 '헤세 치쿠호'라는 지역철도. 20여 년 전, 국영철도로부터 49킬로미터 구간을 인수받아 운영중이지만 4년 전부터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궁리 끝에 회사는 경영난 타개를 위해 전차 내 손잡이도 광고판으로 판매했습니다. 5천 엔이면 원하는 문구를 1년간 게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선로의 침목도 철도회사 입장에선 커다란 돈벌입니다. 5천 엔을 내면 10년간 계약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매물로 나온 것이 33개 역이름의 사용권입니다. 값은 이용객 숫자로 결정돼, 환승역은 연간 250만 엔입니다. 120년 전통의 목조 역사가 있는 이 역은 이용객이 많지 않아 연간 40만 엔입니다.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인터뷰> 젊은 이용객 :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노인 이용객 : "역 이름이 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장자들은 기억한 상태 그대로가 좋아요" 하지만 모집 넉 달 동안 계약은 단 한 건. 결국, 역이름의 가격을 60-70%까지 대폭 인하했습니다. 40만엔 짜리 역은 15만 엔, 130만엔 짜리 역은 50만 엔, 250만엔 짜리 환승역은 100만 엔까지 내렸습니다. <인터뷰> 마에다 (헤세치쿠호 철도 부장) : "어떤 회사든지 상관없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대기업이든, 후쿠오카에 있는 회사든, 도쿄에 있는 회사든...." 가격 인하 발표 이후 흥미가 있다는 기업이 생겼습니다. 후쿠오카에 본사가 있는 할인판매점입니다. 할인점 이름이 반복 방송되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터뷰> 마에다 (헤세치쿠호 철도 부장) : "열차 한량에서 4번 방송하니까, 다가와이다역에 대해 하루 328번 방송합니다" 33개 역 전체의 이름을 판매하면 연간 천만엔, 우리 돈 1억 5천만 원 정도를 벌게 됩니다. 도쿄에서 150여 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전차 역. 조그만 시골 전차 역의 상점 앞에 이용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지역 철도회사가 판매하는 일본 전통과자를 사먹기 위해섭니다. <인터뷰> 무라카미 (철도 이용객) : "고추 맛이지만 그렇게 맵지 않고 딱 좋아요." 기자 질문; "딱 좋습니까?" "베리 구또" 상점 한 모퉁이에서는 과자가 계속 만들어집니다. 한 봉지에 우리 돈 6천 원 정도나 하지만 찾는 이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인터뷰> 이와사키 (조시전기철도 직원) :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많은 손님이 찾아와 하루 100-200명 정도가 사가요" 전차를 타기 위한 목적이 아닌 승차권도 이 시골 철도회사가 개발해낸 아이디어 상품입니다. 이 승차권은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합격의 전차를 타고 달리라는 뜻으로 고안해낸 특별 승차권입니다. 특판 10개월 만에 만 3천 장이나 팔려나갔습니다.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덕분입니다. <인터뷰> 다나카 (일본 주부) : "딸이 간호사를 목표로 해 공부했는데, 이번주 일요일 시험이 있어 샀어요" <기자질문>"첫째 아이입니까" "그래요" 이 철도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붕어빵이나 전통술 등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상품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오래돼 사용할 수 없는 녹슨 전차 부품까지 판매 대상입니다. <인터뷰> 고고 (조시전기철도 차장) : "가끔 사가는 분들이 있어요. 최근엔 미국 여성이 사 갔어요" 끊임없는 변신으로 6킬로미터 짧은 구간의 이 철도회사는 이제 전차 이용객 수입보다 3배나 많은 부대수입을 챙기고 있습니다. 덕분에 만년 적자이던 회사도 얼마전부터 흑자로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고고 (조시전기철도 차장) : "앞으로도 시민들이 관심 가질 수 있는 것, 좀처럼 지금까지 철도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 그래서 흥미를 갖게하는 상품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일본에는 이처럼 소규모로 운영되는 민간 철도회사가 수백개에 이릅니다. 대부분 영세 업체이어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역 이름을 팔거나 과자를 만드는 등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달릴 수 있는 기회를 막는 또 하나의 브레이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앵커 멘트> 한국인을 겨냥한 이번 예멘 테러를 계기로 우리의 대 테러 정책을 재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테러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선 필요하겠고, 또 국제 정치 상황을 보는 안목과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도 시급해 보입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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