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존엄사 남용 막아야”

입력 2009.05.22 (07:01) 수정 2009.05.2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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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우 변호사/객원 해설위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그동안 논란이 돼 온 존엄사 허용 문제를 일단락 지었습니다.
대법원은 뇌사 상태에 빠진 76세 여성 환자 가족이 평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최근의 존엄사 허용 논쟁은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기계 장치를 부착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그동안의 관행이 과연 타당한지에 관한 숙고에서 제기됐습니다.
이 문제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환자 자신의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신뢰가 확고하지 못한 의료 윤리에 의존해 생명을 단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서울대병원은 더 이상 항암치료가 듣지 않는 말기 암환자들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같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하면 이를 받아 들여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자체 존엄사 제도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병원 측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 본인의 진지한 의사가 있을 때 의료진이 그 뜻을 존중하는 것이 더욱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자의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무게를 둔 취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존엄사의 판단을 회생가능성이라는 단순한 조건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 중단 의사가 추정돼야하고, 고통을 완화하는 일상적인 진료를 중단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치료중단 행위는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4가지 요건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에 관한 조건을 빠른 시일 내에 입법화해 존엄사가 남용되는 위험을 막는 일입니다. 입법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반영돼야 하고 생명윤리의 기준도 정해져야 합니다.
존엄사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와 판정 기준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남용에 대한 처벌과 대책을 마련하는 등 법과 제도를 세심하게 정비해야 합니다. 존엄사가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고, 윤리적 비난의 소지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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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해설] “존엄사 남용 막아야”
    • 입력 2009-05-22 06:24:40
    • 수정2009-05-22 11:27:54
    뉴스광장 1부
[하창우 변호사/객원 해설위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그동안 논란이 돼 온 존엄사 허용 문제를 일단락 지었습니다. 대법원은 뇌사 상태에 빠진 76세 여성 환자 가족이 평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최근의 존엄사 허용 논쟁은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기계 장치를 부착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도록 하는 그동안의 관행이 과연 타당한지에 관한 숙고에서 제기됐습니다. 이 문제는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환자에게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환자 자신의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신뢰가 확고하지 못한 의료 윤리에 의존해 생명을 단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서울대병원은 더 이상 항암치료가 듣지 않는 말기 암환자들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같은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의료지시서'에 서명하면 이를 받아 들여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자체 존엄사 제도를 마련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병원 측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 본인의 진지한 의사가 있을 때 의료진이 그 뜻을 존중하는 것이 더욱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환자의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무게를 둔 취지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존엄사의 판단을 회생가능성이라는 단순한 조건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 중단 의사가 추정돼야하고, 고통을 완화하는 일상적인 진료를 중단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치료중단 행위는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4가지 요건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에 관한 조건을 빠른 시일 내에 입법화해 존엄사가 남용되는 위험을 막는 일입니다. 입법화에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반영돼야 하고 생명윤리의 기준도 정해져야 합니다. 존엄사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와 판정 기준과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남용에 대한 처벌과 대책을 마련하는 등 법과 제도를 세심하게 정비해야 합니다. 존엄사가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고, 윤리적 비난의 소지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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