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현장] 위구르 최악 유혈 사태

입력 2009.07.1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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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내 분리 독립 운동의 화약고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지난 일요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째 계속된 시위와 강경진압, 또 위그르족과 한족간의 충돌로 천 여 명의 사상자가 난 이번 사태는 20년 전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유혈 시위로 기록되고 있는데요.

위구르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차별과 경제적 소외감이 이번 시위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중국 정부는 소수의 분리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한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다시 터진 뇌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를 이경호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서북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 거리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한바탕 전투가 벌어진 듯 곳곳에서 건물과 차량이 불타고 부상자들은 도움을 호소합니다. 위구르인 시위대는 수 천명에 불과했지만 우루무치 시내 남부지역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격렬했습니다.

시위 이틀 뒤 중국 정부는 외신기자들에게 시위현장 취재를 허가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발생한 시위로 인해 시내 곳곳의 상점이 불에 탔습니다. 아직 이렇게 상점은 이렇게 치워지지 않은채 남아있습니다 주위로 경찰이 무장병력이 배치한 채 경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불에 탄 상점들은 대부분 한족들이 운영하거나 한족 종업원이 많은 상점들이었습니다.

<인터뷰>회족 주민 : “경찰이 있었지만 시위대가 곳곳에 너무 많아서 통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취재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시위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녹취> “연행된 가족들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위구르인 거주지역에서 순식간에 쏟아져나온 시위대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 이들은 경찰이 밤 사이 집까지 찾아와 위구르인 남자들을 잡아갔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인터뷰> 위구르족 주민 : “(아버지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남편이 어제 일하러 나간 다음에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로 인한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들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몰려나와 위구르인들을 공격하고 위구르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을 공격하는 등 민족간 갈등 상황이 첨예하게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한족 시위대 : “소규모의 힘(위구르족)이 우리를 억압(한족을 공격)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상점들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차량이나 행인의 통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주로 농업이나 소규모 상공업, 식당종업원, 건물청소 등에 종사하는 위구르인들이 외부로 나오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도시기능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5일 발생한 중국 우루무치 유혈시위로 인한 희생자가 156명에서 184명으로 늘었으며 한족이 137명 위구르족이 46명이고 회족도 1명 포함됐다고 AP통신이 우루무치 지방정부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한족 부상자 : “일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쪽 눈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둥성의 한 완구공장에서, 위구르인 노동자 2명이 한족 노동자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위구르인의 민족 감정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인터뷰> 리우 야오화(신장지역 경찰청장) : “지난달 26일에 광동지역에서 한족과 위구르족이 패싸움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이 번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번 유혈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훨씬 복잡하고 뿌리가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위구르인의 땅이던 신장 지역이 중국에 합병된 것은 1949년, 이 때부터 수 십년에 걸쳐 한족의 대규모 이주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90%를 넘던 위구르인 인구 비중은 지금은 절반 정도로 낮아졌고, 교육과 취업, 기업활동 등 전 분야에서 한족에 밀려 열악한 지위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10여년 전 시작된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이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개발의 이익은 대부분 한족에게 돌아갔습니다.

가난이 대물림 되다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고 그러다보니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위구르인도 드문 실정입니다.

<인터뷰> 위구르인 : “한족들이 이곳에 온 이후로 우리는 직업도 없고 땅도 없습니다. 건물도 모두 한족들 것이고 위구르 사람 것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한족들 것입니다”

위구르인은 중국내 55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이질적인 집단이기도 합니다.

터키계 인종으로서구형 생김새를 갖고 있는데다, 유교나 불교계통의 종교를 믿는 다른 소수 민족과 달리, 회교도입니다.

한족과는 인종부터 종교. 생활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중국에 합병된 이후 지금까지 끊임 없이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분리 독립 운동은 지난 1990년을 기점으로 폭탄 테러와 요인 암살 등 과격한 방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베이징 올림픽을 코 앞에 두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제2도시인 카스에서, 경찰서에 돌진한 차량에서 수류탄이 터지면서 경찰관 17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스더강(카스 시 공산당 서기) : “테러범들이 이 도시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강력하게 제지할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위구르인의 분리 독립 운동에 대해 일체의 협상이나 타협을 배제하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장 위구르 지역이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데다 석탄과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스인홍(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 “중국정부는 신장, 특히 우루무치의 치안 유지와 주권 보장 사회안정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억압이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중국 정부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신장 유혈 사태가 터지자마자 중국 정부는 해외에 본부를 둔 신장 분리주의 단체가 배후 조종을 한 것이라고 혐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지목하는 인물은 미국에 망명중인 위구르 여성 지도자 레비야 카디르.

그녀가 나라 밖에서 이번 유혈 시위를 조종했다는 것입니다.

<녹취> 친강(중국 외교부 대변인) : “카디르는 전세계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중국의 영토를 분열하고 신장주민들의 화합을 해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레비야 카디르는 중국 정부의 이같은 배후 조종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에 대해 테러주의자, 분리주의자, 종교 원리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워 국제 사회에 악선전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녹취> 레비야 카디르 : “지난 60년간 중국이 위구르 사람들을 통치했지만 어떤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자유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로인한 위구르인들의 분노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국제 사회는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와 위구르족간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소수 민족으로서 위구르인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면서도,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없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확고한 정책에 대해 어느 나라, 어느 지도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메르켈(독일 총리) :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다시 한반 강조합니다. 모든 일들이 이미 벌어진 불행한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집중돼야 합니다.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합니다”

G8 정상회의를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했던 후진타오 주석도 지난 8일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할 정도로, 중국은 이번 사태를 중대한 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단호한 대처에 따라, 시위 움직임은 차츰 가라앉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티베트에 이어 이번에 터진 위구르 사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 소수 민족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국제 사회에
각인시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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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현장] 위구르 최악 유혈 사태
    • 입력 2009-07-12 08:23:0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내 분리 독립 운동의 화약고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지난 일요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째 계속된 시위와 강경진압, 또 위그르족과 한족간의 충돌로 천 여 명의 사상자가 난 이번 사태는 20년 전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유혈 시위로 기록되고 있는데요. 위구르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차별과 경제적 소외감이 이번 시위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중국 정부는 소수의 분리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한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다시 터진 뇌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를 이경호 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서북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 거리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한바탕 전투가 벌어진 듯 곳곳에서 건물과 차량이 불타고 부상자들은 도움을 호소합니다. 위구르인 시위대는 수 천명에 불과했지만 우루무치 시내 남부지역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격렬했습니다. 시위 이틀 뒤 중국 정부는 외신기자들에게 시위현장 취재를 허가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발생한 시위로 인해 시내 곳곳의 상점이 불에 탔습니다. 아직 이렇게 상점은 이렇게 치워지지 않은채 남아있습니다 주위로 경찰이 무장병력이 배치한 채 경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불에 탄 상점들은 대부분 한족들이 운영하거나 한족 종업원이 많은 상점들이었습니다. <인터뷰>회족 주민 : “경찰이 있었지만 시위대가 곳곳에 너무 많아서 통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취재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시위대가 나타난 것입니다. <녹취> “연행된 가족들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위구르인 거주지역에서 순식간에 쏟아져나온 시위대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 이들은 경찰이 밤 사이 집까지 찾아와 위구르인 남자들을 잡아갔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인터뷰> 위구르족 주민 : “(아버지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남편이 어제 일하러 나간 다음에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로 인한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들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몰려나와 위구르인들을 공격하고 위구르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을 공격하는 등 민족간 갈등 상황이 첨예하게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한족 시위대 : “소규모의 힘(위구르족)이 우리를 억압(한족을 공격)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상점들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차량이나 행인의 통행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주로 농업이나 소규모 상공업, 식당종업원, 건물청소 등에 종사하는 위구르인들이 외부로 나오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도시기능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5일 발생한 중국 우루무치 유혈시위로 인한 희생자가 156명에서 184명으로 늘었으며 한족이 137명 위구르족이 46명이고 회족도 1명 포함됐다고 AP통신이 우루무치 지방정부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인터뷰> 한족 부상자 : “일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쪽 눈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둥성의 한 완구공장에서, 위구르인 노동자 2명이 한족 노동자들의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습니다. 위구르인의 민족 감정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인터뷰> 리우 야오화(신장지역 경찰청장) : “지난달 26일에 광동지역에서 한족과 위구르족이 패싸움을 했습니다. 일반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이 번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번 유혈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훨씬 복잡하고 뿌리가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위구르인의 땅이던 신장 지역이 중국에 합병된 것은 1949년, 이 때부터 수 십년에 걸쳐 한족의 대규모 이주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90%를 넘던 위구르인 인구 비중은 지금은 절반 정도로 낮아졌고, 교육과 취업, 기업활동 등 전 분야에서 한족에 밀려 열악한 지위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10여년 전 시작된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이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개발의 이익은 대부분 한족에게 돌아갔습니다. 가난이 대물림 되다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고 그러다보니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위구르인도 드문 실정입니다. <인터뷰> 위구르인 : “한족들이 이곳에 온 이후로 우리는 직업도 없고 땅도 없습니다. 건물도 모두 한족들 것이고 위구르 사람 것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한족들 것입니다” 위구르인은 중국내 55개 소수 민족 중 가장 이질적인 집단이기도 합니다. 터키계 인종으로서구형 생김새를 갖고 있는데다, 유교나 불교계통의 종교를 믿는 다른 소수 민족과 달리, 회교도입니다. 한족과는 인종부터 종교. 생활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중국에 합병된 이후 지금까지 끊임 없이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분리 독립 운동은 지난 1990년을 기점으로 폭탄 테러와 요인 암살 등 과격한 방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베이징 올림픽을 코 앞에 두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제2도시인 카스에서, 경찰서에 돌진한 차량에서 수류탄이 터지면서 경찰관 17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스더강(카스 시 공산당 서기) : “테러범들이 이 도시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강력하게 제지할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그러나 위구르인의 분리 독립 운동에 대해 일체의 협상이나 타협을 배제하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장 위구르 지역이 중국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데다 석탄과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스인홍(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 “중국정부는 신장, 특히 우루무치의 치안 유지와 주권 보장 사회안정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억압이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중국 정부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신장 유혈 사태가 터지자마자 중국 정부는 해외에 본부를 둔 신장 분리주의 단체가 배후 조종을 한 것이라고 혐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중국 외교부가 지목하는 인물은 미국에 망명중인 위구르 여성 지도자 레비야 카디르. 그녀가 나라 밖에서 이번 유혈 시위를 조종했다는 것입니다. <녹취> 친강(중국 외교부 대변인) : “카디르는 전세계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중국의 영토를 분열하고 신장주민들의 화합을 해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레비야 카디르는 중국 정부의 이같은 배후 조종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에 대해 테러주의자, 분리주의자, 종교 원리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워 국제 사회에 악선전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녹취> 레비야 카디르 : “지난 60년간 중국이 위구르 사람들을 통치했지만 어떤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자유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로인한 위구르인들의 분노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국제 사회는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 중국 정부와 위구르족간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소수 민족으로서 위구르인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면서도,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없습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 정부의 확고한 정책에 대해 어느 나라, 어느 지도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메르켈(독일 총리) :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다시 한반 강조합니다. 모든 일들이 이미 벌어진 불행한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집중돼야 합니다.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합니다” G8 정상회의를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했던 후진타오 주석도 지난 8일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할 정도로, 중국은 이번 사태를 중대한 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단호한 대처에 따라, 시위 움직임은 차츰 가라앉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티베트에 이어 이번에 터진 위구르 사태는, 중국의 아킬레스건, 소수 민족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국제 사회에 각인시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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