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

입력 2009.08.0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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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시련과 굴곡도 많았지만,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 600년간 줄곧 서울의 중심이자 상징이었습니다.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김주한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395년, 조선 태조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큰 길을 내고, 여기에 당시 국가 최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육조를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들을 배치했습니다.

뒤편에 들어선 한옥들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육조거리가 지금의 세종로, 광화문의 기원입니다.

광화문은 그 때부터 줄곧 조선시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국가와 국민이 소통하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엔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까지, 수많은 역사적 순간이 광화문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굴곡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는 불길에 휩싸이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총독부 건물에 밀려 없어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서울역사박물관 : "광화문은 우리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광화문의 역사가 우리나라 미래와 직결됩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압축성장 속에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사람들과 멀어진 광화문 광장.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를 반영한 재창조 과정을 거쳐 수도 서울의 6백년 역사가 다시 살아 숨쉬는 시민들의 장소로 재탄생했습니다.

KBS 뉴스 김주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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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0년 역사’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
    • 입력 2009-08-01 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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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광화문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시련과 굴곡도 많았지만, 조선시대 이후 지금까지 600년간 줄곧 서울의 중심이자 상징이었습니다.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김주한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395년, 조선 태조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에 큰 길을 내고, 여기에 당시 국가 최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육조를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들을 배치했습니다. 뒤편에 들어선 한옥들은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육조거리가 지금의 세종로, 광화문의 기원입니다. 광화문은 그 때부터 줄곧 조선시대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자 국가와 국민이 소통하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엔 대한민국 정부수립부터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까지, 수많은 역사적 순간이 광화문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굴곡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는 불길에 휩싸이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총독부 건물에 밀려 없어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서울역사박물관 : "광화문은 우리 역사를 담고 있는 만큼 광화문의 역사가 우리나라 미래와 직결됩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압축성장 속에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사람들과 멀어진 광화문 광장. 역사를 복원하고 현재를 반영한 재창조 과정을 거쳐 수도 서울의 6백년 역사가 다시 살아 숨쉬는 시민들의 장소로 재탄생했습니다. KBS 뉴스 김주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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