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발생에서 타결까지

입력 2009.12.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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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던 용산 참사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참으로 곡절이 많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어서 홍석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용산 4지구 세입자 20여명이 철거를 거부하며 옥상 농성에 들어간지 이틀째인 지난 1월 20일 새벽.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농성장에 경찰이 투입됐습니다.

진압도중 옥상 망루에서 일어난 불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습니다.

유가족들과 세입자들은 과잉 진압이라며 책임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참사 20일 뒤 결국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했습니다.

<인터뷰> 김석기 (청장 내정자) : "용산 사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사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입했을 뿐이라며 보상과 책임자 처벌 등 유가족들의 요구는 거부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병원에 방치된 채 농성과 집회, 시위가 반복되길 6개월 여.

정운찬 총리가 사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 유가족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참사 발생 345일만에 마침내 양측은 보상 합의에 이르게 됐습니다.

<인터뷰>김영걸(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 : "막바지에 양쪽의 의견을 좁힐 수 있었던 게 여기 계신 3개 종교 대표자분들이 굉장히 큰 결정타를 날려주신 것 때문으로 생각."

그러나 농성자 7명에게 징역 5-6년 형이 선고된 1심 재판 이후 유가족들의 항소로 아직도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재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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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 발생에서 타결까지
    • 입력 2009-12-30 22:23:57
    뉴스 9
<앵커 멘트>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던 용산 참사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참으로 곡절이 많았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어서 홍석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용산 4지구 세입자 20여명이 철거를 거부하며 옥상 농성에 들어간지 이틀째인 지난 1월 20일 새벽.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농성장에 경찰이 투입됐습니다. 진압도중 옥상 망루에서 일어난 불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습니다. 유가족들과 세입자들은 과잉 진압이라며 책임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참사 20일 뒤 결국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했습니다. <인터뷰> 김석기 (청장 내정자) : "용산 사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사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경찰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입했을 뿐이라며 보상과 책임자 처벌 등 유가족들의 요구는 거부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병원에 방치된 채 농성과 집회, 시위가 반복되길 6개월 여. 정운찬 총리가 사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 유가족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참사 발생 345일만에 마침내 양측은 보상 합의에 이르게 됐습니다. <인터뷰>김영걸(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 : "막바지에 양쪽의 의견을 좁힐 수 있었던 게 여기 계신 3개 종교 대표자분들이 굉장히 큰 결정타를 날려주신 것 때문으로 생각." 그러나 농성자 7명에게 징역 5-6년 형이 선고된 1심 재판 이후 유가족들의 항소로 아직도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는 재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홍석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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