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00년 된 종갓집의 설 맞이

입력 2010.02.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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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명절이면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 음식 만들고, 차례지내느라 무척 분주하죠.

그래도 전통 방식 그대로 철저하게 예를 갖추는 종갓집만큼 바쁜 곳도 없을 듯 싶은데요.

최서희 기자, 종갓집 설맞이 풍경, 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리포트>

네, 요즘은 차례를 생략하는 집도 많아졌고요, 인터넷으로 차례상 음식을 주문하기도 하는 시대인데요.

300년 동안 한곳에 머물며 전통 방식대로 차례를 지내는 종가가 있습니다.

또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차례상을 외국인 종부가 차리는 집안도 있는데요, 종갓집의 다양한 설맞이 현장, 함께 보시죠.

경북 칠곡. 이곳은 광주 이씨 일가가 13대째 살고 있는 종가집입니다.

집 안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인터뷰> 이영진(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부) : “대대로 내려오는 유기거든요. 제가 시집왔을 때 한 200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해질 무렵, 여섯 살 아이부터 여든 한 살의 문중 어른까지 100여 명의 식구들이 모이다 보니 마루까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설 전날 밤, 광주 이씨 종가에서는 사당에 묵은세배를 드립니다.

묵은세배는 조상님께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드리는 세배입니다.

<인터뷰> 이필주(광주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옛날에는 묵은세배가 어느 가문이든지 다 제도가 있었는데 근간에 내려오면서 많이 생략이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예를 행하고 있습니다.”

사당에 묵은세배를 마치면 이웃에 사는 친척 어른들께도 세배를 드립니다.

<현장음> "올 한 해 건강하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서로의 건강을 빌며 새해를 준비합니다.

다음 날. 종갓집은 차례를 지내기 위해 온 문중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씨의 손자인 6살 동균 군은 아직 어려서 종손이라는 의미가 뭔지 모르지만 기특하게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예를 갖춥니다.

<인터뷰> 이필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여기는 저로부터 13대조 문익공 할아버지의 위패고 다음은 4대조 위패가 있습니다.”

하나의 차례상에 한꺼번에 제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조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각각 따로 차례를 지냅니다.

<인터뷰> 이동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 "자랑스러워요. 자주 못보니까 이거 찍어서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나중에 다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이필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전통이라는 것은 인간의 예절이기 때문에 예절은 누가 고쳐서 되는 게 예절이 아니고 지켜 나오던 예절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는 게 그 자체가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북 청주. 주택들 사이에 조금 독특한 사연을 가진 종갓집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손 지원근씨가 살고 있습니다.

지씨의 부인이자 이 집의 종부인 장유보위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3세입니다.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처음에 신랑이 나는 큰 집의 아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집이 큰 줄 알았죠. 와보니까 집도 크지 않고. 나중에 보니까 그 뜻이 아니에요. 이제 (결혼했으니까) 갈 데가 없잖아요.”

결혼 8년차인 장유보위씨는 명절 때 어머니 심부름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혼자 명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어머님 없다고 조상이 화나면 안 되죠. 잘해야죠.”

시어머니가 일러준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합니다.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지원근씨가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지원근(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손) : “전에는 부엌 근처에 남자들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요. 요즘은 남자들 부엌에 안 오면 간 큰 남자라고 그러잖아.”

차례 준비로 분주한 설날 아침. 지원근씨 집안은 대대로 차례상에 닭을 올려왔습니다.

<인터뷰> 지원근(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손) : “닭이 새해를 밝히는 상징적인 동물이잖아요.”

처음에는 외국인 종부가 종갓집 살림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집안 어른들도 이제는 장유보위씨를 누구보다 기특해 합니다.

<인터뷰> 최숙희(지원근씨 작은 어머니) : “우리도 결혼해서 남의 집에 시집가면 힘든데 남의 나라에 와서 모르는 풍습 따라가려니까 힘들죠. 걱정했는데 해 놓은 거 보니까 너무 잘했어요.”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오늘 그래도 해냈다고 (생각해요) 조상에게 최선을 다했으니까 마음도 뿌듯하고.”

시대가 변하고 전통 문화와 예절이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지만, 종갓집의 차례는 여전히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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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300년 된 종갓집의 설 맞이
    • 입력 2010-02-15 08: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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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명절이면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 음식 만들고, 차례지내느라 무척 분주하죠. 그래도 전통 방식 그대로 철저하게 예를 갖추는 종갓집만큼 바쁜 곳도 없을 듯 싶은데요. 최서희 기자, 종갓집 설맞이 풍경, 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리포트> 네, 요즘은 차례를 생략하는 집도 많아졌고요, 인터넷으로 차례상 음식을 주문하기도 하는 시대인데요. 300년 동안 한곳에 머물며 전통 방식대로 차례를 지내는 종가가 있습니다. 또 다문화가정이 늘면서 차례상을 외국인 종부가 차리는 집안도 있는데요, 종갓집의 다양한 설맞이 현장, 함께 보시죠. 경북 칠곡. 이곳은 광주 이씨 일가가 13대째 살고 있는 종가집입니다. 집 안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인터뷰> 이영진(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부) : “대대로 내려오는 유기거든요. 제가 시집왔을 때 한 200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해질 무렵, 여섯 살 아이부터 여든 한 살의 문중 어른까지 100여 명의 식구들이 모이다 보니 마루까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설 전날 밤, 광주 이씨 종가에서는 사당에 묵은세배를 드립니다. 묵은세배는 조상님께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드리는 세배입니다. <인터뷰> 이필주(광주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옛날에는 묵은세배가 어느 가문이든지 다 제도가 있었는데 근간에 내려오면서 많이 생략이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속적으로 예를 행하고 있습니다.” 사당에 묵은세배를 마치면 이웃에 사는 친척 어른들께도 세배를 드립니다. <현장음> "올 한 해 건강하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서로의 건강을 빌며 새해를 준비합니다. 다음 날. 종갓집은 차례를 지내기 위해 온 문중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씨의 손자인 6살 동균 군은 아직 어려서 종손이라는 의미가 뭔지 모르지만 기특하게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예를 갖춥니다. <인터뷰> 이필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여기는 저로부터 13대조 문익공 할아버지의 위패고 다음은 4대조 위패가 있습니다.” 하나의 차례상에 한꺼번에 제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조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각각 따로 차례를 지냅니다. <인터뷰> 이동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 "자랑스러워요. 자주 못보니까 이거 찍어서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나중에 다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 이필주(광주 이씨 문익공파 13대 종손) : “전통이라는 것은 인간의 예절이기 때문에 예절은 누가 고쳐서 되는 게 예절이 아니고 지켜 나오던 예절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는 게 그 자체가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북 청주. 주택들 사이에 조금 독특한 사연을 가진 종갓집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손 지원근씨가 살고 있습니다. 지씨의 부인이자 이 집의 종부인 장유보위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3세입니다.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처음에 신랑이 나는 큰 집의 아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집이 큰 줄 알았죠. 와보니까 집도 크지 않고. 나중에 보니까 그 뜻이 아니에요. 이제 (결혼했으니까) 갈 데가 없잖아요.” 결혼 8년차인 장유보위씨는 명절 때 어머니 심부름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혼자 명절을 준비해야 합니다.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어머님 없다고 조상이 화나면 안 되죠. 잘해야죠.” 시어머니가 일러준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합니다.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지원근씨가 두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지원근(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손) : “전에는 부엌 근처에 남자들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요. 요즘은 남자들 부엌에 안 오면 간 큰 남자라고 그러잖아.” 차례 준비로 분주한 설날 아침. 지원근씨 집안은 대대로 차례상에 닭을 올려왔습니다. <인터뷰> 지원근(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손) : “닭이 새해를 밝히는 상징적인 동물이잖아요.” 처음에는 외국인 종부가 종갓집 살림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집안 어른들도 이제는 장유보위씨를 누구보다 기특해 합니다. <인터뷰> 최숙희(지원근씨 작은 어머니) : “우리도 결혼해서 남의 집에 시집가면 힘든데 남의 나라에 와서 모르는 풍습 따라가려니까 힘들죠. 걱정했는데 해 놓은 거 보니까 너무 잘했어요.” <인터뷰> 장유보위(충주 지씨 첨정공파 37대 종부) : “오늘 그래도 해냈다고 (생각해요) 조상에게 최선을 다했으니까 마음도 뿌듯하고.” 시대가 변하고 전통 문화와 예절이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지만, 종갓집의 차례는 여전히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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