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녹취> "딩동댕동. 전국, 전국, 전국 노래자랑!"
일요일 아침 12시, 서울역 대합실. 낯익은 딩동댕 소리에 사람들의 눈길이 TV로 향합니다.
<현장음> “신우도 저 춤 춰 봐.”
흥겨운 노래로 오천만을 웃고 울린 전국 노래자랑, 어느새 3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인터뷰> 곽연지(43세/부산광역시 범일동) : "할머니와도 같이 봤으니까, 제가 올해 40대 초반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족히 30년은 더 된 것 같아요."
<인터뷰> 홍수영(75세/충북 영동군 황남면) : "볼수록 재미있고 흥미롭고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할 때는 저희들도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온 국민의 무대인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1980년 11월 9일, MC 이한필의 진행으로 시작됐는데요.
그 뒤로 뽀빠이 이상용, 고광수, 그리고 최선규를 거쳐 1988년 국민 MC 송해의 등장까지.
2010년 현재, 30년 최장수 프로그램의 대장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30년 세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색적인 기록도 많은데요. 전국노래자랑 별별 기록 살펴볼까요.
남녀노소 노래를 사랑하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전국노래자랑! 최연소 3세 꼬마에서부터, 최고령 104세의 할아버지까지 무대에 섰습니다.
특히, 3세 꼬마아이가 80의 송해에게 '오빠'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죠.
전국노래자랑은 파라과이, 뉴욕, 일본 등의 해외에서도 동포들과 함께했는데요.
<현장음> "곧 도착할 테니까 만나서 우리 얼싸 안읍시다."
지난해 중국 선양 공연에서는 4만 5천여 명의 관객이 참여해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을 발판으로 스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개그맨 김신영에서부터 가수 별, 트로트계의 젊은 양대 산맥, 장윤정, 박상철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가수 박상철은 1993년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박상철(가수) : "전국노래자랑이 없으면 박상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국노래자랑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수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런 무대에 서서 굉장히 큰 힘이 됐었고, 이제 전국 노래자랑은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방송이죠."
이렇게 전국노래자랑 30년 세월의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 다름 아닌 참가자들이겠죠.
전북 남원지역 예심 현장에서 연습이 한창인 참가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오인용(남원시 예심 참가자) : "농촌총각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전국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현장음> "마음 주고 정을 준 게 바보였구나 <현장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참가 자격은 나이도 국경도 없지만 회당, 본선참가자는 단 16명!
평균 30대 1의 경쟁률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데요.
그렇다보니 노래와 춤 솜씨는 기본!
심사위원에게 주목받을 톡톡 튀는 의상은 필수입니다.
<인터뷰> 김미숙(남원시 예심 참가자) : "무조건 예심 통과하는 게 목적이어서 의상을 신경 써서 입었는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현장음> "김광기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우렁찬 각오와 함께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저마다 전국노래자랑 참가를 위해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보는데요.
긴장한 탓인지 실력 발휘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죠.
<현장음> “가사 잊었다!”
<현장음> “어쩔 수 없지만”
<현장음> “수고하셨습니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관객들 반응만은 최고입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한 회 예심 참가자 평균 300명, 1년이면 만 오천 명, 30년 세월동안 무려 4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사람들이 예심에 참가했는데요.
이렇게 치열한 예심 통과하는 비법, 과연 무엇일까요?
<인터뷰> 정한욱(제작진) : "노래자랑은 일단 관객과 같이 즐기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객석 호응이 좋아야죠. 혼자만 아무리 기분 내도, 객석이 반응이 없으면 이 분은 벌써 자격이 없는 거죠."
이 비법을 미리 터득했던 걸까요.
1. 2차의 예심을 거쳐, 본선무대에 오를 16명의 주인공이 탄생했습니다.
<인터뷰> 김혜진(남원시 본선 진출자) :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스무 살 때 한번 (예심을) 봤는데 가사를 잊어서 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2차 예심 붙어서 본선까지 나가게 돼서 정말 좋아요."
이렇게 예심을 거치면 드디어 전국노래자랑의 본선무대에 설 수 있는데요.
본선 무대에서 빼 놓을 수 있는 히로인이 있습니다.
맛깔 나는 진행으로 매주 일요일 오전을 책임지는 송해! 녹화 전 일찌감치 나와 큰 무대 서는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챙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현장음> “예심 하실 때 하던 대로 하세요."
그 푸근하고 맛깔 나는 진행에 모두의 오빠로 통하죠.
<인터뷰> 송해(진행자) : "누이동생이 나보다 많은 사람이 없어요. 물론 인사로 그리고 농담 삼아 그러겠지만 오누이같이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어요. 거리감이 가까워 졌다고 느끼니까 노래자랑을 통해서 참 많은 정이 생겨난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벌써 23년째.
국민오빠로서 변함없이 전국노래자랑을 지켰지만 꼭 한번, 큰일을 낸 적이 있다는데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전히 못 오지는 않았지만 늦은 적이 있죠.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가 안 떴어요. 그래서 부산으로 가서 내려가야 되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한 2시간 늦어서 녹화한 적이 있습니다."
지각은 있더라도 결석 없이 노래자랑과 함께한 송해, 그가 생각하는 전국노래자랑 30년의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노래자랑은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동등한 자격으로 나오니까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국노래자랑! 감초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로트부터 발라드, 최신 댄스곡까지 소화 못하는 노래가 없는 악단, 송해보다 더 오랜 세월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했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처음에 6개월은 제가 안했고, 가을개편부터 했으니까 29년 6개월이라고 보면 돼요. 30년이죠."
송해의 익살스런 진행에 녹화 때마다 출연자의 용돈 담당이 되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보람있는 일도 있었다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꼬마들 셋이 나와서 만 원씩을 줬는데, 10년이 지난 뒤에 내가 준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그대로 애들이 와서 큰절하고 돈을 도로 돌려주더라고, 그 돈을 기념으로 갖고 있어요."
딩동댕과 땡 소리로 참가자들을 웃고 울린 실로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실로폰을 치는 주인공, 심사위원들인데요. 이들도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실로폰을 잡으면 긴장상태예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순간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실수는 있는 법! 실수를 만회하는 이들만의 노하우도 있는데요.
<인터뷰> 박현진(작곡가/심사위원) : "조금 틀릴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땡’ 치기가 민망하니까, 거꾸로 칠 때도 있습니다."
무대 위 아니라 무대 밖에도 감초가 있습니다. 흥을 즐기는 관객들인데요.
그 중 눈에 띄는 이병철·박정자 부부. 빨간색 옷을 맞춰 차려입고 8년째, 약 200여 회의 전국 노래자랑에, 관객으로 참가해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 일정표까지 챙겨가며 그 누구보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맡는다는데요.
<인터뷰> 박정자(전북 익산시 오산면) : "일찍 와야 앞에 앉아서 리허설도 보고 춤도 추고 그러지, 우리 송해 선생님도 보고."
<현장음> “여러분들이 오셔서 앞에서 이렇게 흥겹게 해주니까 더 활발해...”
그 지극한 정성에 제작진도 언제나 그들을 가족처럼 반깁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두 분은 우리 노래자랑의 필수 요원이나 마찬가지에요. 아침에 리허설 할 때 8시 30분에 현장에 오거든요. 그때 벌써 와계세요. 정말 활동적이고 대단한 부부예요."
이렇게 제작진부터 참가자, 관객까지!
모두의 희로애락이 녹아있기에 전국노래자랑 30년이 가능한 거겠죠.
<인터뷰> 현숙(가수)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리 국민의 친구인 전국노래자랑 3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인터뷰> 박상철(가수) : "특히 우리 송해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야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여러분들이 보시고 즐기고 찾는 한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감사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오늘도,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30년을 지나 50주년 100주년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녹취> "딩동댕동. 전국, 전국, 전국 노래자랑!"
일요일 아침 12시, 서울역 대합실. 낯익은 딩동댕 소리에 사람들의 눈길이 TV로 향합니다.
<현장음> “신우도 저 춤 춰 봐.”
흥겨운 노래로 오천만을 웃고 울린 전국 노래자랑, 어느새 3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인터뷰> 곽연지(43세/부산광역시 범일동) : "할머니와도 같이 봤으니까, 제가 올해 40대 초반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족히 30년은 더 된 것 같아요."
<인터뷰> 홍수영(75세/충북 영동군 황남면) : "볼수록 재미있고 흥미롭고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할 때는 저희들도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온 국민의 무대인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1980년 11월 9일, MC 이한필의 진행으로 시작됐는데요.
그 뒤로 뽀빠이 이상용, 고광수, 그리고 최선규를 거쳐 1988년 국민 MC 송해의 등장까지.
2010년 현재, 30년 최장수 프로그램의 대장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30년 세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색적인 기록도 많은데요. 전국노래자랑 별별 기록 살펴볼까요.
남녀노소 노래를 사랑하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전국노래자랑! 최연소 3세 꼬마에서부터, 최고령 104세의 할아버지까지 무대에 섰습니다.
특히, 3세 꼬마아이가 80의 송해에게 '오빠'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죠.
전국노래자랑은 파라과이, 뉴욕, 일본 등의 해외에서도 동포들과 함께했는데요.
<현장음> "곧 도착할 테니까 만나서 우리 얼싸 안읍시다."
지난해 중국 선양 공연에서는 4만 5천여 명의 관객이 참여해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을 발판으로 스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개그맨 김신영에서부터 가수 별, 트로트계의 젊은 양대 산맥, 장윤정, 박상철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가수 박상철은 1993년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박상철(가수) : "전국노래자랑이 없으면 박상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국노래자랑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수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런 무대에 서서 굉장히 큰 힘이 됐었고, 이제 전국 노래자랑은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방송이죠."
이렇게 전국노래자랑 30년 세월의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 다름 아닌 참가자들이겠죠.
전북 남원지역 예심 현장에서 연습이 한창인 참가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오인용(남원시 예심 참가자) : "농촌총각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전국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현장음> "마음 주고 정을 준 게 바보였구나 <현장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참가 자격은 나이도 국경도 없지만 회당, 본선참가자는 단 16명!
평균 30대 1의 경쟁률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데요.
그렇다보니 노래와 춤 솜씨는 기본!
심사위원에게 주목받을 톡톡 튀는 의상은 필수입니다.
<인터뷰> 김미숙(남원시 예심 참가자) : "무조건 예심 통과하는 게 목적이어서 의상을 신경 써서 입었는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현장음> "김광기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우렁찬 각오와 함께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저마다 전국노래자랑 참가를 위해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보는데요.
긴장한 탓인지 실력 발휘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죠.
<현장음> “가사 잊었다!”
<현장음> “어쩔 수 없지만”
<현장음> “수고하셨습니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관객들 반응만은 최고입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한 회 예심 참가자 평균 300명, 1년이면 만 오천 명, 30년 세월동안 무려 4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사람들이 예심에 참가했는데요.
이렇게 치열한 예심 통과하는 비법, 과연 무엇일까요?
<인터뷰> 정한욱(제작진) : "노래자랑은 일단 관객과 같이 즐기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객석 호응이 좋아야죠. 혼자만 아무리 기분 내도, 객석이 반응이 없으면 이 분은 벌써 자격이 없는 거죠."
이 비법을 미리 터득했던 걸까요.
1. 2차의 예심을 거쳐, 본선무대에 오를 16명의 주인공이 탄생했습니다.
<인터뷰> 김혜진(남원시 본선 진출자) :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스무 살 때 한번 (예심을) 봤는데 가사를 잊어서 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2차 예심 붙어서 본선까지 나가게 돼서 정말 좋아요."
이렇게 예심을 거치면 드디어 전국노래자랑의 본선무대에 설 수 있는데요.
본선 무대에서 빼 놓을 수 있는 히로인이 있습니다.
맛깔 나는 진행으로 매주 일요일 오전을 책임지는 송해! 녹화 전 일찌감치 나와 큰 무대 서는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챙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현장음> “예심 하실 때 하던 대로 하세요."
그 푸근하고 맛깔 나는 진행에 모두의 오빠로 통하죠.
<인터뷰> 송해(진행자) : "누이동생이 나보다 많은 사람이 없어요. 물론 인사로 그리고 농담 삼아 그러겠지만 오누이같이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어요. 거리감이 가까워 졌다고 느끼니까 노래자랑을 통해서 참 많은 정이 생겨난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벌써 23년째.
국민오빠로서 변함없이 전국노래자랑을 지켰지만 꼭 한번, 큰일을 낸 적이 있다는데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전히 못 오지는 않았지만 늦은 적이 있죠.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가 안 떴어요. 그래서 부산으로 가서 내려가야 되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한 2시간 늦어서 녹화한 적이 있습니다."
지각은 있더라도 결석 없이 노래자랑과 함께한 송해, 그가 생각하는 전국노래자랑 30년의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노래자랑은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동등한 자격으로 나오니까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국노래자랑! 감초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로트부터 발라드, 최신 댄스곡까지 소화 못하는 노래가 없는 악단, 송해보다 더 오랜 세월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했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처음에 6개월은 제가 안했고, 가을개편부터 했으니까 29년 6개월이라고 보면 돼요. 30년이죠."
송해의 익살스런 진행에 녹화 때마다 출연자의 용돈 담당이 되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보람있는 일도 있었다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꼬마들 셋이 나와서 만 원씩을 줬는데, 10년이 지난 뒤에 내가 준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그대로 애들이 와서 큰절하고 돈을 도로 돌려주더라고, 그 돈을 기념으로 갖고 있어요."
딩동댕과 땡 소리로 참가자들을 웃고 울린 실로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실로폰을 치는 주인공, 심사위원들인데요. 이들도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실로폰을 잡으면 긴장상태예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순간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실수는 있는 법! 실수를 만회하는 이들만의 노하우도 있는데요.
<인터뷰> 박현진(작곡가/심사위원) : "조금 틀릴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땡’ 치기가 민망하니까, 거꾸로 칠 때도 있습니다."
무대 위 아니라 무대 밖에도 감초가 있습니다. 흥을 즐기는 관객들인데요.
그 중 눈에 띄는 이병철·박정자 부부. 빨간색 옷을 맞춰 차려입고 8년째, 약 200여 회의 전국 노래자랑에, 관객으로 참가해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 일정표까지 챙겨가며 그 누구보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맡는다는데요.
<인터뷰> 박정자(전북 익산시 오산면) : "일찍 와야 앞에 앉아서 리허설도 보고 춤도 추고 그러지, 우리 송해 선생님도 보고."
<현장음> “여러분들이 오셔서 앞에서 이렇게 흥겹게 해주니까 더 활발해...”
그 지극한 정성에 제작진도 언제나 그들을 가족처럼 반깁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두 분은 우리 노래자랑의 필수 요원이나 마찬가지에요. 아침에 리허설 할 때 8시 30분에 현장에 오거든요. 그때 벌써 와계세요. 정말 활동적이고 대단한 부부예요."
이렇게 제작진부터 참가자, 관객까지!
모두의 희로애락이 녹아있기에 전국노래자랑 30년이 가능한 거겠죠.
<인터뷰> 현숙(가수)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리 국민의 친구인 전국노래자랑 3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인터뷰> 박상철(가수) : "특히 우리 송해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야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여러분들이 보시고 즐기고 찾는 한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감사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오늘도,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30년을 지나 50주년 100주년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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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력충전] 30년! 전국 노래자랑의 숨은 이야기들
-
- 입력 2010-02-15 08:56:38

<리포트>
<녹취> "딩동댕동. 전국, 전국, 전국 노래자랑!"
일요일 아침 12시, 서울역 대합실. 낯익은 딩동댕 소리에 사람들의 눈길이 TV로 향합니다.
<현장음> “신우도 저 춤 춰 봐.”
흥겨운 노래로 오천만을 웃고 울린 전국 노래자랑, 어느새 3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인터뷰> 곽연지(43세/부산광역시 범일동) : "할머니와도 같이 봤으니까, 제가 올해 40대 초반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족히 30년은 더 된 것 같아요."
<인터뷰> 홍수영(75세/충북 영동군 황남면) : "볼수록 재미있고 흥미롭고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할 때는 저희들도 춤까지 덩실덩실 추면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온 국민의 무대인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1980년 11월 9일, MC 이한필의 진행으로 시작됐는데요.
그 뒤로 뽀빠이 이상용, 고광수, 그리고 최선규를 거쳐 1988년 국민 MC 송해의 등장까지.
2010년 현재, 30년 최장수 프로그램의 대장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30년 세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색적인 기록도 많은데요. 전국노래자랑 별별 기록 살펴볼까요.
남녀노소 노래를 사랑하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전국노래자랑! 최연소 3세 꼬마에서부터, 최고령 104세의 할아버지까지 무대에 섰습니다.
특히, 3세 꼬마아이가 80의 송해에게 '오빠'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죠.
전국노래자랑은 파라과이, 뉴욕, 일본 등의 해외에서도 동포들과 함께했는데요.
<현장음> "곧 도착할 테니까 만나서 우리 얼싸 안읍시다."
지난해 중국 선양 공연에서는 4만 5천여 명의 관객이 참여해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을 발판으로 스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개그맨 김신영에서부터 가수 별, 트로트계의 젊은 양대 산맥, 장윤정, 박상철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가수 박상철은 1993년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박상철(가수) : "전국노래자랑이 없으면 박상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국노래자랑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가수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런 무대에 서서 굉장히 큰 힘이 됐었고, 이제 전국 노래자랑은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방송이죠."
이렇게 전국노래자랑 30년 세월의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 다름 아닌 참가자들이겠죠.
전북 남원지역 예심 현장에서 연습이 한창인 참가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오인용(남원시 예심 참가자) : "농촌총각의 저력을 보여주고자 전국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현장음> "마음 주고 정을 준 게 바보였구나 <현장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참가 자격은 나이도 국경도 없지만 회당, 본선참가자는 단 16명!
평균 30대 1의 경쟁률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데요.
그렇다보니 노래와 춤 솜씨는 기본!
심사위원에게 주목받을 톡톡 튀는 의상은 필수입니다.
<인터뷰> 김미숙(남원시 예심 참가자) : "무조건 예심 통과하는 게 목적이어서 의상을 신경 써서 입었는데 잘 됐으면 좋겠어요."
<현장음> "김광기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우렁찬 각오와 함께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저마다 전국노래자랑 참가를 위해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보는데요.
긴장한 탓인지 실력 발휘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죠.
<현장음> “가사 잊었다!”
<현장음> “어쩔 수 없지만”
<현장음> “수고하셨습니다.”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관객들 반응만은 최고입니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한 회 예심 참가자 평균 300명, 1년이면 만 오천 명, 30년 세월동안 무려 40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사람들이 예심에 참가했는데요.
이렇게 치열한 예심 통과하는 비법, 과연 무엇일까요?
<인터뷰> 정한욱(제작진) : "노래자랑은 일단 관객과 같이 즐기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객석 호응이 좋아야죠. 혼자만 아무리 기분 내도, 객석이 반응이 없으면 이 분은 벌써 자격이 없는 거죠."
이 비법을 미리 터득했던 걸까요.
1. 2차의 예심을 거쳐, 본선무대에 오를 16명의 주인공이 탄생했습니다.
<인터뷰> 김혜진(남원시 본선 진출자) :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스무 살 때 한번 (예심을) 봤는데 가사를 잊어서 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2차 예심 붙어서 본선까지 나가게 돼서 정말 좋아요."
이렇게 예심을 거치면 드디어 전국노래자랑의 본선무대에 설 수 있는데요.
본선 무대에서 빼 놓을 수 있는 히로인이 있습니다.
맛깔 나는 진행으로 매주 일요일 오전을 책임지는 송해! 녹화 전 일찌감치 나와 큰 무대 서는 참가자들을 한 명 한 명 챙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데요.
<현장음> “예심 하실 때 하던 대로 하세요."
그 푸근하고 맛깔 나는 진행에 모두의 오빠로 통하죠.
<인터뷰> 송해(진행자) : "누이동생이 나보다 많은 사람이 없어요. 물론 인사로 그리고 농담 삼아 그러겠지만 오누이같이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어요. 거리감이 가까워 졌다고 느끼니까 노래자랑을 통해서 참 많은 정이 생겨난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벌써 23년째.
국민오빠로서 변함없이 전국노래자랑을 지켰지만 꼭 한번, 큰일을 낸 적이 있다는데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전히 못 오지는 않았지만 늦은 적이 있죠.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가 안 떴어요. 그래서 부산으로 가서 내려가야 되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한 2시간 늦어서 녹화한 적이 있습니다."
지각은 있더라도 결석 없이 노래자랑과 함께한 송해, 그가 생각하는 전국노래자랑 30년의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노래자랑은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동등한 자격으로 나오니까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국노래자랑! 감초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로트부터 발라드, 최신 댄스곡까지 소화 못하는 노래가 없는 악단, 송해보다 더 오랜 세월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했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처음에 6개월은 제가 안했고, 가을개편부터 했으니까 29년 6개월이라고 보면 돼요. 30년이죠."
송해의 익살스런 진행에 녹화 때마다 출연자의 용돈 담당이 되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보람있는 일도 있었다는데요.
<인터뷰> 김인협(악단장) : "꼬마들 셋이 나와서 만 원씩을 줬는데, 10년이 지난 뒤에 내가 준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그대로 애들이 와서 큰절하고 돈을 도로 돌려주더라고, 그 돈을 기념으로 갖고 있어요."
딩동댕과 땡 소리로 참가자들을 웃고 울린 실로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실로폰을 치는 주인공, 심사위원들인데요. 이들도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실로폰을 잡으면 긴장상태예요.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순간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실수는 있는 법! 실수를 만회하는 이들만의 노하우도 있는데요.
<인터뷰> 박현진(작곡가/심사위원) : "조금 틀릴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땡’ 치기가 민망하니까, 거꾸로 칠 때도 있습니다."
무대 위 아니라 무대 밖에도 감초가 있습니다. 흥을 즐기는 관객들인데요.
그 중 눈에 띄는 이병철·박정자 부부. 빨간색 옷을 맞춰 차려입고 8년째, 약 200여 회의 전국 노래자랑에, 관객으로 참가해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 일정표까지 챙겨가며 그 누구보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맡는다는데요.
<인터뷰> 박정자(전북 익산시 오산면) : "일찍 와야 앞에 앉아서 리허설도 보고 춤도 추고 그러지, 우리 송해 선생님도 보고."
<현장음> “여러분들이 오셔서 앞에서 이렇게 흥겹게 해주니까 더 활발해...”
그 지극한 정성에 제작진도 언제나 그들을 가족처럼 반깁니다.
<인터뷰> 신대성(작곡가/심사위원) : "두 분은 우리 노래자랑의 필수 요원이나 마찬가지에요. 아침에 리허설 할 때 8시 30분에 현장에 오거든요. 그때 벌써 와계세요. 정말 활동적이고 대단한 부부예요."
이렇게 제작진부터 참가자, 관객까지!
모두의 희로애락이 녹아있기에 전국노래자랑 30년이 가능한 거겠죠.
<인터뷰> 현숙(가수)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우리 국민의 친구인 전국노래자랑 30주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인터뷰> 박상철(가수) : "특히 우리 송해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야됩니다, 선생님 사랑해요!"
<인터뷰> 송해(진행자) : "여러분들이 보시고 즐기고 찾는 한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감사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오늘도,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30년을 지나 50주년 100주년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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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기자 laseu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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