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 영화 주인공 되다!

입력 2010.05.04 (08:49) 수정 2010.05.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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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영화에선 화려한 스타가 주연을 맡게 마련이죠. 하지만 좀 색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연을 맡았다는데요.

정수영 기자,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이 주인공이라죠?

<리포트>

네, 아쉽게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극장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실제 사연이 담겨 있는데요.

언제나 말없이, 조용히 청소에만 몰두하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늘 맡은 일에만 열중하시죠. 하지만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바로 그런 생각을담은 영화입니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길 위에서’입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카메라는 한 대학교캠퍼스 교정을 비추는데요,

자신의 키만큼 큰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는 대학교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이 등장합니다.

<녹취>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 “바빠~ 담배를 비벼 놔갖고 난리야.”

영화 주인공은 이 학교 환경미화원 아주머니 십여 명, 지난해 4월부터 열 달 동안 이 학교 졸업반 학생이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30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온 62살 심호순 씨, 환갑을 넘긴 나이에 손자뻘인 학생들로부터 한글을 배우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습니다.

<녹취> “한글 다 떼시면 뭐하고 싶으세요? 한글만 다 알았으면 좋겠고 길이 멀어. 이것저것 생각 안하고 이것만 생각할 거예요.”

영화 속 만학도로 출연했던 심 씨. 궂은일인 청소 모습이 무슨 영화 촬영거리가 될까 싶어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 서기가 쑥스러웠다고 합니다.

<녹취> “파스 냄새가 많이 나. 대기실에서. 여기저기 많이 붙이셔가지고.

<녹취> “30년 너도 해봐라. 안 아픈가.”

하지만 영화 촬영을 통해, 스스로를 환경미화원뿐 아니라 영화배우로도 부를 수 있게 된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게 됐다는데요,

<인터뷰>심호순(환경미화원) : “처음에 들어왔을 때 보다는 좋아진 거 같고 앞으로 또 희망을 갖고 일을 해야죠. 힘들더라도.”

영화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을 옥죄는 열악한 현실도 가감 없이 그려냅니다.

<녹취> “서명을 좀 해달라고 하면 서명 좀 꼭 많이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저임금 천원 올리기 운동입니다. 힘 써주세요.”

정부 최저임금에 그대로 묶인 한 달 월급 83만 4천원, 버티다 버티다 못해 난생 처음 최저임금 올리기 운동에 나선 모습입니다.

<녹취> “학생, 서명 좀 해줘.”

영화 속에서 임금 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환경미화원 58살 이덕순 씨.

온화한 인상과 달리 4년 전 환경미화원 43명이 해고당할 처지에 놓였을 때 대학 건물 점거 농성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의 외로운 싸움에 힘을 보태준 학생들과 맺은 인연이 영화 출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녹취> 이덕순 : “해고를 당할 뻔한 걸 투쟁해서 15일간 투쟁해서 다 복직되었어요. 지금은. 다 지금은 그분들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을 렌즈에 담은 감독은 법학과 05학번 졸업생 25살 하샛별 씨입니다.

그 자신 어머니가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기에 더더욱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을 예사롭게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하샛별 감독 : “학교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영화였으면 합니다.”

젊은 감독 하샛별 씨의 뜻있는 작품을 눈여겨 본 대학 동아리연합회가 상영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영화 상영 객석을 찾아온 주인공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 오늘만큼은 말끔한 차림에 고운 화장으로 레드카펫을 밟는 여주인공 기분을 내 봅니다.

<현장음>“저희 학교에 계시는 미화원 노동자들의 얘기고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라든지 노동자들의 일상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이는 자신들의 모습이 어색한지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40여 분의 상영이 끝나자 객석 가득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관객들은 영화 주인공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과 허물없는 대화도 나눠 보는데요,

<인터뷰>왕의조(대학생) : “바로 주변의 얘기니까 더 와 닿는 것도 있고 원래 알고 있었던 건데 좀 더 깊게 와 닿는 것도 있고.”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느꼈는지를 쓴 메모지들도 유심히 살펴봅니다.

<인터뷰>이덕순(환경미화원) : “내가 주인공이 되리라곤 생각도 안 해봤고... 그래도 주인공이 됐다는 게 진짜 뿌듯하고 학생들이 알아주고 하는 것이 마음 좋아요.”

주목받지 않는 자리, 그리고 궂은일, 하지만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당당히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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